더 뉴 그랜저는 3년 전 출시된 그랜저 6세대의 성능을 강화하고 디자인을 변경한 모델이다. 사진 현대차
더 뉴 그랜저는 3년 전 출시된 그랜저 6세대의 성능을 강화하고 디자인을 변경한 모델이다. 사진 현대차

10월 24일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그랜저 디자인 프리뷰 행사가 열렸다. 현대·기아차는 중요한 신차가 출시되기 전, 기자를 대상으로 디자인 프리뷰 행사를 한다. 미리 차를 보고 다양한 의견을 들려달란 뜻에서다. ‘모터트렌드’에서 현대·기아차 행사는 보통 담당 기자가 간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꼭 가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다음 차로 그랜저를 고려하고 있던 터라 새로운 그랜저가 몹시 궁금했다. 비록 디자인 프리뷰가 열리기 며칠 전 작업장에서 찍힌 듯한 그랜저 사진이 온라인에 퍼졌지만, 정면에서 찍은 얼굴 사진은 없었기에 새로운 얼굴이 더욱 궁금했다.

아직 출시되기 전이라 행사 날 보안은 철저했다. 행사 관계자는 기자가 가져온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의 렌즈에 보안 스티커를 꼼꼼히 붙였다. 디자인센터에 마련된 행사장 앞에는 공항에서 볼 법한 금속탐지기 터널이 마련됐다. 카메라는 행사장에 들고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삼엄한 보안을 거쳐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에 커다란 베일에 덮인 그랜저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무대 뒤쪽에 마련된 스크린에 그랜저 티저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새로운 그랜저의 베일이 벗겨졌다. 순간 5초 남짓 침묵이 흘렀다. 보통 이럴 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신 터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카메라는커녕 스마트폰으로도 아무것도 찍을 수 없는 기자들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로운 그랜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너무나 파격적인 얼굴에 잠시 말을 잃었다.

‘센슈어스 스포티니스(Sensuous Sportiness)’. 현대는 새로운 그랜저의 디자인 방향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감각적인 스포티함이란 말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결국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디자인에 스포티한 디자인 요소를 녹여낸다는 뜻이다. 감각을 자극하는 게 주 목적이라면, 일단 새로운 그랜저는 그 목적을 이뤘다. 프런트 그릴에 달린 수많은 마름모가 내 눈을 강하게 자극했으니까. 범퍼에 매끈하게 녹아든 마름모 모양 그릴을 보고 몇몇 기자는 환호했고, 몇몇 기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현대차 디자이너들은 쏘나타에서 보여준 히든 램프를 새로운 그랜저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쏘나타에서처럼 선이 아니라 면이다. 그릴을 이루는 마름모 가운데 양쪽 꺾쇠 모양(><)이 주간주행등인데, 평소엔 그릴 속에 숨어 있다가 주간주행등을 켜면 빛을 낸다.

얼굴에선 기자들의 의견이 갈렸지만 실내에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새로운 그랜저의 변신은 훌륭했다. 아날로그 계기판이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바뀌고, 아날로그 시계가 어색하게 달린 자리를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메웠다. 그 아래 온도 조절 버튼은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기어레버도 버튼으로 바뀌었다. 그 옆에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스템이 놓였는데, 덮개를 열고 비스듬하게 놓인 자리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으면 바로 충전이 시작된다. 패드를 비스듬하게 만든 건 신의 한 수다. 바닥에 평평하게 놓으면 화면을 볼 수 없지만 비스듬하게 놓으면 어느 정도 화면을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무선충전패드에 놓고 시동을 끄면 ‘스마트폰이 무선충전패드에 있습니다’라는 안내도 뜬다(이건 요즘 현대·기아차에 다 있는 기능이다).

새로운 그랜저는 지금 그랜저보다 길이가 60㎜, 휠베이스가 40㎜ 늘었다. 손가락 두세 마디쯤 되는 길이지만 그래도 그 덕에 실내가 좀 더 여유롭다. 특히 뒷자리는 무척 넉넉하다. 시트도 푸근해 엉덩이를 밀어 넣고 등받이를 기대면 몸을 푹 감싼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폭신한 헤드레스트 쿠션이다. 이날 공개한 그랜저 뒷자리에는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의 헤드레스트처럼 말랑말랑한 헤드레스트 쿠션이 달려 있었다. 머리를 기대면 라텍스 베개를 벤 것처럼 머리가 푹 파묻힌다. S 클래스처럼 헤드레스트가 말랑한 게 아니라 헤드레스트에 말랑한 쿠션을 붙인 거라 폭신한 게 싫으면 뗄 수도 있다.


지난 6월 출시된 기아차의 준대형 세단 ‘K7 프리미어’. 사진 기아차
지난 6월 출시된 기아차의 준대형 세단 ‘K7 프리미어’. 사진 기아차
최근 출시된 2020년형 ‘제네시스 G70’. 지능형 주행 안전 기술이 기본으로 장착됐다. 사진 현대차
최근 출시된 2020년형 ‘제네시스 G70’. 지능형 주행 안전 기술이 기본으로 장착됐다. 사진 현대차

그랜저 기록 넘은 새 그랜저 파워

솔직히 새로운 그랜저의 얼굴은 아직 잘 모르겠다. 눈에 익으면 괜찮을까? 도로에서 보면 멋져 보일까? 하지만 실내는 100% 아니 200% 만족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그랜저를 정말 사도 될까? 그러다 어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새로운 그랜저의 사전 계약 대수가 첫날 하루 동안 1만7294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이건 2016년 11월 출시한 지금의 그랜저가 세운 첫날 사전 계약 대수 1만5973대를 1321대나 넘어서는 수치다. 그랜저의 역대 최다 사전 계약 대수를 새로운 그랜저가 깼다. 차를 타지도 않고, 심지어 보지도 않고 계약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 소식을 듣고 다시 그랜저 사진을 보니 멋져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랜저 디자인이 알쏭달쏭해 다른 차를 기웃거렸다. 국산 세단에서 찾으면 옵션을 가득 넣은 그랜저값으로 제네시스 G70이나 기아 K7 프리미어를 살 수 있다. G70은 일단 얼굴이 마음에 든다. 실루엣도 근사하다. 미국판 ‘모터트렌드’에서 2019년 ‘올해의 차’에 올랐으니 주행 실력도 나쁘지 않다. 마침 지능형 주행 안전 기술이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적용된 2020년형 G70이 출시됐다. 하지만 비좁은 뒷자리가 마음에 걸린다. 키 큰 남편이 운전석에 앉으면 그 뒤에 어른이 앉기 어려울 정도다.

K7 프리미어는 그랜저보다 무난한(?) 얼굴에 마음이 놓인다. 실내 공간도 여유롭고,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도 풍성하다. 하지만 내가 타기엔 디자인이 너무 아저씨스럽다. 커다란 그릴도 자꾸 보니 조금 무섭다. 결국 3000만~4000만원대 국산 세단에서는 그랜저가 최선인 걸까? 그러고 보니 새로운 그랜저는 아직 출시도 안 됐는데 벌써 시끌시끌하다. 이게 그랜저 파워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