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보틀 1호점. 가로수길 젠틀몬스터 앞 팝업 카페 ‘더 가든’. 삼성물산 패션 브랜드 ‘준지’ 팝업스토어 외관(왼쪽부터). 사진 이미혜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보틀 1호점. 가로수길 젠틀몬스터 앞 팝업 카페 ‘더 가든’. 삼성물산 패션 브랜드 ‘준지’ 팝업스토어 외관(왼쪽부터). 사진 이미혜

카페 붐이다. 5월 한 달 내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고 연이어 입소문을 탔다. 시작은 역시 블루보틀이다. 5월 3일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에 한국 1호점을 오픈한 블루보틀은 요즘도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할 만큼 인기다. ‘맛있는 커피로 전 세계를 연결한다’는 슬로건처럼 맛 좋기로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의 맛만큼이나 매장의 위치와 인테리어도 화제였다. 일본 건축가 조 나가사카(Jo Nagasaka)가 미니멀한 감성으로 완성한 빨간 벽돌 건물의 주인은 따로 있다. 지춘희 패션디자이너가 이끄는 미스지콜렉션이 해당 건물의 실제 소유주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는 블루보틀이 로스터리(원두를 볶는 시설)와 카페, 사무실로 사용한다. 그 위층은 미스지콜렉션이 사용한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카페가 한국의 관록 있는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와 만난 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카페와 패션 브랜드의 만남은 최근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삼성물산의 패션 브랜드 준지(JUUN.J)는 5월 10일 도산공원에 문을 연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에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펠트 커피 3호점을 입점시켰다. 2014년 마포구 창전동에서 첫선을 보인 펠트는 지난해 광화문 D타워에 2호점을 오픈한 데 이어 약 6개월 만에 세 번째 매장을 열었다. 건물의 외관도 끝내준다. ‘다크 매터(Dark Matter)’를 콘셉트로 한 검은색의 기하학적인 건축물은 마치 SF 영화 속 우주선 같다. 우주에서 툭 떨어진 거대한 운석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 안팎은 모두 새까맣다.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 블랙은 준지를 상징하는 컬러다. 또한 블랙은 커피를 연상시킨다. 이곳은 올해 굿스피릿 챔피언십에서 3위에 입상한 한정은 바리스타가 운영한다. 펠트 특유의 클래식 블렌드 커피를 즐기며 쇼핑도 할 수 있다.

패션과 커피 두 브랜드 모두 취향을 중요시하는 트렌드세터들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공교롭게도 준지 플래그십 스토어 바로 맞은편에는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로 꾸준한 인기를 끌어온 복합문화공간 퀸마마마켓이 있다. 인테리어 편집숍과 서점, 카페가 한 건물 안에 있는 퀸마마마켓 대표 역시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다. 퀸마마마켓 대표인 강진영·윤한희 부부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여성 패션 브랜드 오브제와 오즈세컨을 탄생시켰다. 퀸마마마켓에는 2015년, 매뉴팩트커피가 입점했다. 펠트가 시즈널 블렌드로 제철 커피를 강조한다면 매뉴팩트커피는 독특한 콜드브루 시스템을 통해 커피를 싱글 오리진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5월 7일 신사동 가로수길 젠틀몬스터 매장 건너편에는 팝업 카페 ‘더 가든’이 신기루처럼 등장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 펜디와 젠틀몬스터가 협업한다는 소식은 국내 패션계의 핫이슈였다. ‘젠틀 펜디’ 컬렉션이 공개된 후 선글라스보다 인스타그래머(인스타그램 사용자를 부르는 말)들에게 더 뜨거운 반응을 얻은 건 바로 이 카페다. 더 가든은 젠틀 펜디 론칭을 기념해 약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카페는 남미의 바닷가 고급 주택 한 채를 뚝 떼어 정원째 옮겨놓은 것처럼 이국적이다. 야자수와 선인장이 가득한 핑크빛 정원과 선베드 그리고 새하얀 건물부터 아기자기한 메뉴까지 모든 게 그야말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좋을 만큼 시각적으로 매력적이라는 신조어)’하다. 펜디의 고향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산 젤라토 아이스바에는 펜디 로고가 새겨져 있고, 젠틀몬스터 소속 파티시에가 디자인한 디저트들은 브란쿠시(Brancusi)의 조각품처럼 둥글고 아름답다. 젠틀몬스터 소속 바리스타가 개발한 커피 메뉴들은 펜디와 젠틀몬스터의 로고가 새겨진 예쁜 컵에 담겨 나온다.

해외에서 먼저 카페 문을 연 후 국내로 들여온 경우도 있다. 가방 브랜드 메트로시티의 콜렉트 카페 ‘미미미’가 그렇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대의 젊은 나이에 엠티콜렉션 사장 자리에 오른 양지해 대표는 밀라노의 패션 거리 브레라 23번지에 소규모 카페를 오픈했다. 밀라노에 본점을 세운 미미미는 이탈리아 원두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미미미는 전국에 10개의 지점을 냈다. 사실 디올, 구찌, 프라다, 마르니, 비비안웨스트우드 등 글로벌 패션 하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카페를 운영한다. 동화 같은 파스텔톤 감성으로 국내 마니아층을 확보한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설계한 폰다치오네 프라다의 ‘바 루체’는 밀라노 대성당만큼이나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티파니는 지난해 뉴욕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4층에 블루박스 카페를 오픈했다. 패션 브랜드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체로 브랜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패션 하우스 직영 카페를 보기 힘들었다. 2015년 청담하우스오브디올 건물 5층에 문을 연 디올 카페 정도가 전부다. 참고로 도산공원 에르메스 카페 마당은 신라호텔에서 운영하고 있다.

최근 패션 브랜드의 카페 붐은 확실히 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적극적으로 유명 카페를 자신의 매장 내에 입점시키고 직접 운영에 나서기도 한다. 굳이 해외의 커피 브랜드가 아니라도 경쟁력은 충분하다. 한국 지점 론칭을 앞두고 블루보틀이 보낸 자료를 보면, 전 세계 프리미엄 생두(생커피콩) 구매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커피 스페셜리스트인 큐-그레이더(Q-grader)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그 뜨거운 커피 사랑 덕분에 서울에는 연일 감각적인 패션 카페들이 탄생하고 있다. 올여름, ‘카캉스(Café+Vacance·주말에 먼 곳으로 떠나지 않고 도심 속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휴식)’ 리스트는 지금도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