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 곰장어
영업 시간 매일 07:00~21:00
대표 메뉴 곰장어 두루치기, 볼락 매운탕

통영중앙시장
영업 시간 매일 08:30~21:30
대표 메뉴 석화, 참숭어

풍화김밥
영업 시간 매일 05:00~21:00
대표 메뉴 충무김밥


‘한려 곰장어’에서 판매하는 ‘볼락 매운탕’. 속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사진 김하늘
‘한려 곰장어’에서 판매하는 ‘볼락 매운탕’. 속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사진 김하늘

통영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해가 검푸른 심해에서 붉은 수면 위로 헤엄쳐 말간 얼굴을 내민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협동하는 바람은 파도를 줄줄이 몰고 부두 끝에서 부서진다. 조각난 바닷물은 도로 바람이 돼 미륵산 남쪽 줄기를 따라 오른다. 미래사(彌來寺)를 바라보며 흩어진 마음을 불러 모아 합장한다. 편백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흔적을 쌓는다. 경쾌한 휘파람처럼 스미는 나무의 개운한 향에 발걸음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코 밑에 편백 한 그루를 심은 얄개의 날개가 어깻죽지를 뚫고 솟아오른다.

코가 부르다. 피톤치드 샤워를 마치니 녹음의 향이 온몸에 우거졌다. 배는 고프다. 부둣가 식당 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아점을 먹는 사람들로 이미 만석이다. 하얗고 널따란 전지가 펼쳐진 상 위는 바싹 구워지는 곰장어(갯장어)와 빨간 생선 매운탕으로 이미 만선이다. 꼬리가 줄어 냉큼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투벅투벅 썰어 담은 병어회, 무말랭이를 죽부인처럼 끼고 있는 호래기무침, 일찌감치 봄을 알리는 냉이무침 등 편백 못지않게 몸을 깨우는 반찬들이 상 한가득 깔린다. 돌판 위에 몸을 바싹 웅크리며 줄어드는 곰장어 냄새에 침을 꿀떡 삼킨다.

볼락 두 마리가 든 매운탕이 대접에 담겨 나온다. 미나리 고명을 국물에 푹 담가 향을 녹인다. 국물을 꿀떡 삼켜 위장의 늦잠을 깨운다. 젓가락 끝을 곤두세우고 볼락 눈을 콕 찔러 허연 눈깔을 야무지게 빼 먹는다. 선심 쓰듯 내게 생선 몸뚱이를 내주고 당신은 머리만 잡숫던 엄마는 짜장면보다 간짜장을 더 좋아하셨지. 입에 쩍쩍 붙는 반찬과 매운탕 국물을 우물물처럼 마시니 위장이 부르르 떨린다.

아침의 기운을 떨치고 정오를 맞는다. 간밤에 소주를 마시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금세 그릇을 바닥내고 일어난다. “와! 곰장어 맛있겠다!” 곰장어와 소주 몇 잔에 흥이 잔뜩 오른 아재들 앞에서 꼿꼿하고 높은 서울말로 구걸을 해본다. 보다 못한 아재가 내미는 곰장어 한 점과 술 한 잔을 넙죽 받아 삼키고 가게를 나선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다.

통영 바다를 그대로 퍼 올린 중앙시장은 사람들과 활어로 활기에 차 있다. 광어는 넓적한 몸뚱이를 퍼드덕거리다 수조 안을 뛰쳐나오고, 주인 아지매는 발광하는 광어의 몸뚱이를 두 손으로 덤덤하게 낚아채 귀가 조처하고는 작고 낮은 간이의자로 돌아와 바지런히 석화의 속살을 캐낸다. 돌에 핀 꽃, 석화. 어느새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 꽃잎들이 무덤처럼 쌓인다. 단단한 요람 속에서 통통하게 살을 불린 굴은 바지런히 채취돼 작은 고무대야 안에 담긴다. 스텐 밥공기로 푸지게 계량되어 싼값에 팔린다. 굴을 한가득 손에 든 사람들의 표정은 금붕어 한 마리를 사든 아이처럼 들떠 있다.

“밀치(참숭어), 도다리, 우럭 고마 삼만원!” 여기저기 호객과 흥정이 오간다. 기름이 잔뜩 오른 참숭어와 이제 막 새 살이 오르기 시작한 도다리, 짠득짠득한 주꾸미, 빠지면 서운한 우럭, 빠져서는 안 되는 석화 한 바구니와 거대한 바위굴을 한아름 산다. 배춧잎 몇 장 안 되는 값으로 푸짐한 주전부리를 얻었다. 바로 앞 초장집에 들어가 앉아 상이 차려지기만을 기다린다. 켜켜이 쌓아 올려진 석화 접시 한쪽에는 서비스로 개불이 앙증맞게 담겼다. 숟가락 끝으로 관자를 끊고, 광활한 바다를 한껏 품은 보드라운 속살과 주스를 입안으로 당겨 입안에 가둔다. 바다의 푸른 짠 기운이 혈관을 타고 퍼져 나간다. 봄동 배춧잎에 꼬시래기와 초장을 얹어 한 입 가득 넣고 씹는다. 바다를 반죽해 뽑아 올린 꼬시래기 면발의 짭조름함이 입 천장에 스민다. 갓 데쳐온 주꾸미의 머리엔 밥풀 같은 주꾸미 알이 꽉 차 있다. 굴, 해초, 주꾸미까지 입에 욱여 넣고 나니, 이제야 통영에 온 것 같다.


통영 바다가 보이는 곳에 간이 식탁을 만들었다. 회, 어묵, 소주 페트병이 놓여 있다. 사진 김하늘
통영 바다가 보이는 곳에 간이 식탁을 만들었다. 회, 어묵, 소주 페트병이 놓여 있다. 사진 김하늘

소주 한 잔, 회 한 점, 일몰 풍경은 덤

“회는 바다를 보며 먹어야지!” 스티로폼 상자에 남은 생선회와 초장을 담고 어묵 2000원어치를 사서 시장을 빠져나온다. 바다 것들을 입에 물리도록 먹었으니 쌀밥 생각이 난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친구가 귀띔해준 ‘풍화김밥’에 곧장 찾아 가 충무김밥까지 샀다. 부둣가를 가로질러 건너편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향한다. 남망산 언덕 아래 오래된 수퍼로 기어들어가 19도짜리 화이트 소주 한 병을 계산대에 내민다. 노주인이 소주병 꼭지에 종이컵을 꽂아 얹고서 5분만 올라가면 명당이 있다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 아닌가.

걸음을 차츰 옮길수록 통영항을 감싸는 마을 풍경이 조금씩 폭을 넓히며 눈에 들어온다. 더 높이 오를수록 더 멀리 보인다. 더 기울수록 더 넓게 들어온다. 몸통을 관통하는 바람이 머리끝에 올라 머리채를 흔든다.

편평한 언덕 중턱에 자리를 잡았다. 스티로폼 상자를 탁자 삼아 위에 안줏거리를 늘어놓는다. 돌돌 말린 꼬마김밥과 매콤함이 똑 떨어지는 오징어무침, 땅에 꼭꼭 묻어 묵힌 것처럼 시원시원한 무김치를 이쑤시개에 차곡차곡 꽂아 한입에 넣고 구수한 시락국 한 모금을 마시니 이제야 끼니를 마친 것 같다. 입김으로 종이컵을 후후 불어 씻고 소주를 콸콸 따라 담는다. 나무젓가락을 양 갈래로 짝 쪼개 서로 맞부딪쳐 대패질하고 젓가락을 눕혀 회를 쓸어 담아 초장에 찍어 날름 삼킨다. 그리고 소주 한 잔, 어묵 국물 한 모금. 남망산 한 조각을 뚝 떼어 등 뒤에 두고 동쪽 벼랑에 기대앉아 통영 바다를 안주 삼아 마신다. 어느새 중천에 태양도 바다에 몸을 녹여 제 모습을 흩트린다. 해가 저문다. 통영의 하루가 저문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