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들. 사진 김진영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들. 사진 김진영

여행 갈 때 필수적으로 챙기는 물건 중 하나가 카메라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덕분에 카메라 자체를 놓고 가기도 하지만, 날이 갈수록 발전을 거듭하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 덕분이니 카메라를 가져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스마트폰인데 카메라가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인데 전화도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통화 기능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강조하며 광고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라이카나 핫셀블라드 같은 역사 깊은 카메라 회사의 렌즈를 장착한 스마트폰의 출시 소식이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게 됐다.

늘 휴대하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이렇게 출중하다 보니 세계 인구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진, 나아가 동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공연장에서 내 앞에 선 수많은 인파가 든 빛을 뿜어내는 스마트폰과 함께 무대를 바라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 가려 무대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이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받아들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영국 사진가 마틴 파의 ‘작은 세상(Small World)’의 표지는 공연장에서의 이 같은 경험을 미술관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루브르를 찾은 관람객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아침 일찍 루브르가 문을 열자마자 모나리자 앞으로 달려가지 않는 한, 조용히 나 홀로 모나리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12년에 찍은 마틴 파의 사진에서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앞 사람의 머리와 손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 속의 또 다른 스마트폰에 담긴 모나리자 그림이다.

마틴 파의 ‘작은 세상’은 그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로 그가 거의 30년간에 걸쳐 관심을 기울여 온 관광객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국제적인 관광 산업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상당히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며, 따라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관광객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은 세상’은 1995년에 첫 번째 에디션이 발표됐고 2007년에 두 번째 에디션이 발간됐다. 그는 2007년 당시 앞으로 세 번째 에디션이 나오겠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 적이 있다. “가능할 것이다. 관광 산업은 내가 계속해서 되돌아오게 되는 주제다. 관광 산업은 작아지지 않는다. 오로지 거대해질 뿐이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고 카메라는 더욱 보편적이 됐다. 그는 새로운 사진 40여 장을 추가해 2018년 ‘작은 세상’ 세 번째 에디션을 출간했다. 두 번째 에디션까지만 해도 필름 카메라나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 등이 눈에 띄었다면, 세 번째 에디션의 표지에 스마트폰이 등장하는 사진을 채택한 것은 동시대의 큰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진집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만들어 놓은 가짜 에펠탑, 스위스 설산에 놓여 있는 엽서 판매대, 몰아치는 비에도 우비를 입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관광하는 사람들 등 관광 명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그런데 가장 주된 모습은 사진과 관련돼 있다. 마틴 파가 담은 관광객들은 사진 찍고 찍히기를 반복한다. 페루 마추픽추에서 라마를 흉내 내며 사진 찍는 여자,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한 무리의 관광객, 산 정상에서 점프하며 사진 찍는 사람들 등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7년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 피사에 갔을 때, 사람들은 기울어져 있는 피사를 지탱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나도 그에 동참해 사진을 남겼던 적이 있다. 이 사진집에 실린 피사 사진을 보자 그때가 떠올랐다. 1990년 피사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내가 물려받았을 그 포즈를 하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보다 거슬러 이 포즈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포즈는 사진을 매개체로 확산돼 현재에까지 당도했다. 그 결과 피사에 도착한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동일한 포즈를 취하게 됐다.

마틴 파는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이들의 모습 자체를 즐기며 사진을 찍는다. 한 인터뷰에서 재미있거나 별난 순간을 찾아다니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마틴 파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유머를 찾아나설 필요가 없다. 당신 주위 모든 사람은 재미있다. 그저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 마틴 파에 따르면, 사람은 본래 재미있는 존재다.

하지만 관광 사진을 위해 누군가 취한 포즈를 만국 사람이 동일하게 취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점점 사람들은 경험 자체를 위해서보다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즉 사진을 찍기 위해 어딘가로 향한다. 알려진 곳을 중심으로 여정을 정하고, 이미 찾아봐서 어떤 외관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음식점에 가고, 다시 들춰볼 확률이 낮은 사진을 찍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어설프게 스마트폰에 담긴 모나리자를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아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인터넷에서 고화질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표지에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사진이 담긴 ‘스몰 월드’ 세 번째 에디션. 사진 김진영
표지에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사진이 담긴 ‘스몰 월드’ 세 번째 에디션. 사진 김진영

여행은 사진으로 본 이미지 재확인하는 일

물론 여행 가서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사진 역사 초기부터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850년 무렵 프랑스의 막심 뒤 캉(Maxime du Camp)은 자료 조사를 위한 정부의 지원으로 이집트와 근방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피라미드와 그 앞에 선 낙타를 함께 찍음으로써 피라미드 크기를 가늠케 하는 방식으로 유적지를 촬영한 사진 가운데 152장을 모아 그는 1952년에 ‘이집트, 누비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프랑스어 원제목 Egypte, Nubie, Palestine et Syrie)’라는 책을 출간했다. 어떤 모습일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지역을 사진으로 담은 이 책은 그를 단숨에 프랑스에서 유명해지게 만들었다. 관광 산업이 없던 시절, 세상은 크고 넓고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였다.

오늘날 우리는 분명 더 많은 곳을 쉽고 빠르게 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한편으로 우리는 ‘관광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여행의 많은 부분을 경이로운 경험보다는 이미 사진으로 본 이미지를 실제로 재확인하고 오는 것이 차지한다. 관광 산업이 확대될수록 세계가 경험적으로 작아진다는 역설을 마틴 파는 보여주고 있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