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환 신부는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 대학에서 8년간 철학을 공부했다. 신의 부르심에 순종한 신부는 그 열심으로 ‘인간이란 무엇 인가’를 탐구했다. 사진 이태경 객원기자
최대환 신부는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 대학에서 8년간 철학을 공부했다. 신의 부르심에 순종한 신부는 그 열심으로 ‘인간이란 무엇 인가’를 탐구했다. 사진 이태경 객원기자

최대환 신부가 쓴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을 처음 받아들고 은하수처럼 펼쳐지는 인문과 예술, 사유의 광대함에 놀랐다. 세상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어 힐링을 파는 여느 베스트셀러 종교 서적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컨대 그는 영화 ‘그래비티’를 통해 ‘우리가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곧 나를 살게 하는 비밀이었다’는 통찰을 끌어내고, ‘리틀 포레스트’ ‘비정성시’ ‘화양연화’를 보며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고 권고한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에서 ‘매일 밤 다시는 내일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다짐으로 잠자리에 들었다’는 천재적인 작곡가의 편지를 찾아서 읽어준다.

플라톤부터 한나 아렌트까지, 수잔 손탁부터 발터 벤야민까지, 체호프부터 페소아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세기의 예술가와 사상가가 아크로바틱하듯 우아하게 책갈피를 넘나드는 장면은 일일이 거론하는 게 불가능하다. 모든 문장엔 친절함이 밑간처럼 배어있었다. 행간의 배후엔 오직 주어가 지닌 겸손함이 튼튼하게 자리를 지킨다. 그가 신부라는 사실이 이 책에 제한적 프레임을 가하지 못한다. 공허와 부활이 평화롭게 만나고 여행과 산책이 자아의 삼투압을 일으키는 광경은 가히 신학과 인문학의 핵융합 반응을 보는 것처럼 황홀하다. 그렇게 쉽고도 깊게, 세상의 질서와 은총의 질서가 만나는 지점을 섬세하게 짚어온, 세례자 요한 신부를 만났다. 한겨울 칼바람이 사정없이 휘몰아쳐 최 신부의 두 볼이 명동성당 벽돌처럼 붉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나.
“수도원과 유사한 혜화동 대신학교의 생활지도 신부다.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놀러도 가고 영화도 보고 면담도 한다.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신학과 겸임교수로 철학도 가르친다. 독일에서 중세 철학, 근대 철학, 윤리학 등을 전공해 그 지식을 나누고 있다.”

왜 신부가 됐나.
“돌이켜보면 심리적 예민함 때문인 듯하다. 중학교 때부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을 읽었다. ‘편하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신학생들은 대개 그렇게 고난을 자처하며 신부가 되나.
“요즘 신학생들은 행복하기 위해 이 길로 온다. 봉사가 곧 행복인 거다. 당시 나는 행복보다 소명을 택했지만, 나이 들고 나서야 신부로 사는 행복을 알게 됐다.”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이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이다. 당신이란 존재가 과거와 미래에 걸쳐져 있어 더 아련하다.
“미국의 가수 돈 매클레인의 노래 ‘빈센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제 나는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는 것들을’로 끝이 난다. 그 노래를 종종 함께 불렀던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 지내다 이른 나이에 저세상으로 간) 고 전승규 신부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일지 모른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친구가 찍어준 흑백 사진 속의 나도 그런 종류의 당신이다.”

그는 독일의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8년간 철학을 공부했다. 신의 부르심에 순종한 신부는 그 열심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했다. 신부인 그는 성경이 아닌 인문학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대의 인간을 보았다. 영화 ‘그래비티’부터 ‘더 포스트’까지, 바흐의 코랄 ‘G 장조’부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까지, 플라톤의 ‘파이돈’부터 페터 비에리의 ‘리스본행 야간열차’까지, 예술 작품에서 통찰한 인간 존재의 죽음과 고통, 희망과 사랑의 문장들이 그의 첫 에세이에 갈피마다 은하수처럼 흩뿌려졌다.

신부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신학교에는 철학과 교수가 많고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철학을 배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신학은 철학 위에서 더욱 탄탄해졌다.”

혼란을 느끼지는 않나.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철학을 완성했고. 신학은 진리를 추구한다. 성경도 중요하지만, 맹목적 광신론에 빠지지 않으려면 명철한 이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근대 이후 무신론 철학이 많아 홍역을 치르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 과정을 겪어야 신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

독일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뮌헨은 문화적으로 풍부한 곳이다. 신문 문화면만 읽어도 좋았다. 유학생 시절 사진을 보면 고민 속에서도 웃고 있다. 독일에서 철학이 단지 지식이 아니라 삶이라는 걸 알았다. 어느 날 뮌헨의 영국공원에서 달리기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달리다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굉장히 허무했다.”

허무, 신부에겐 당황스러운 감정일 텐데.
“큰 체험이었다. 그때부터 글을 쓸 때 머리에 떠오르는 건 인간이 가진 우연성이었다. 우연히 태어났고 내일 죽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이 허무한 마음을 어떻게 대면하는가가 모든 학문의 출발이다. 철학은 결국 운명과의 대화다. 그런 면에서 종교와 연결돼 있고.”


최대환 신부는 혜화동 대신학교에서 생활지도 신부로 일하고 있다. 사진 이태경 객원기자
최대환 신부는 혜화동 대신학교에서 생활지도 신부로 일하고 있다. 사진 이태경 객원기자

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는 그 문제를 부활과 천국으로 풀고 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있어도 절망을 느끼고 허무할 수 있다. 그걸 인정하는 게 정직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위에 서 있는 느낌, 그게 불안이다. 서양의 문학과 철학, 예술은 결국 인간 존재의 우연과 불안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사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우연성이 덧없는 건 아니라고 확인시켜주는 게 부활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삶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착각을 하고 싶어 한다.
“필연성은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부여받을 뿐. 부활도 은행에 맡겨 둔 돈을 찾는 게 아니지 않나. 신앙인으로서 부활을 믿으면서 동시에 내가 내일이라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자각을 한다는 게 부적절한 감정은 아니다. 자신이 헛됨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면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

우연과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미래란 무엇인가.
“미래는 그냥 선물이다. 약속을 머금은 선물이고, 시간의 덤이다. 미래는 권리도 아니고 착취할 만한 대상도 아니다. 자원처럼 소비해서도 안 되고.”

신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어떤 길을 가든 그 길에서 미래를 열어주시는 분,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

신학자이면서도 과학책을 많이 읽는데, 눈을 들어 우주를 볼 땐 무슨 생각을 하나.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다’라는 천문학자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는가.
“참으로 신비롭고 시적인 진술이다. 별을 보면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던가? 독일의 밤하늘엔 별이 많다. 하이델베르크 수도원에서 별을 보고 그 숭고함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에 선명하다. 보통 인간의 뇌는 의무와 계획으로 꽉 차 있다. 자연을 가까이해야 뇌를 비울 수 있는데, 별이 그 원초적인 빈터다. 별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인간이 미세먼지처럼 작다면, 이 우주에서 내가 좀 잘못해도 큰일 나진 않을 것 같다(웃음). 과학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위안을 준다.”

과학의 언어와 성경의 언어는 출발이 다르다. 비유를 주로 쓴 예수의 말을 ‘닦달하지 않는 언어’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을 보라. 120% 정보를 심거나 뽑아내려 한다. 예수의 비유는 여백이 많다. 곱씹어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말이다. 해석학이라는 학문에 ‘자비의 원리’라는 게 있다. 어떤 말을 이해하려면 그 말에 호의를 갖고 들어야 한다는 거다. 듣는 이의 호의가 진의를 완성한다는 뜻이다.”

인생의 비밀을 목격하려면 반드시 여행과 산책을 해야 한다는 대목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산책하다가 크리스마스에 얼어 죽은 산책자 발저를 소개하며 산책은 도락이자 행군이라고도 했는데. 실제로 산책을 자주 하나.
“비가 와도 진눈깨비가 떨어져도 산책을 한다. 여유가 되면 하루에 4시간도 한다. 신학교가 있는 혜화동에서 경복궁 뒤편을 지나 청계천, 동대문을 거쳐 다시 혜화동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산책하다 지치면 카페에 들어가서 밀린 글을 쓴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나.
“대체로 평온하지만 멜랑콜리에 대해 동경과 관심은 있다. 알랭 드 보통은 한국 사람이 ‘멋진 멜랑콜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슬퍼할 줄 안다는 거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슬픔은 슬픔이다. 정의할 수 없다. 본당신부 생활을 하다 보면 병고와 사별의 고통을 겪는 신자들의 슬픔과 자주 만난다. 어린아이나 한 집안의 가장이 떠날 때는 말할 수 없이 슬프다. 내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9년 동안 누워계실 때도 그랬고. 모든 게 잘되어 가고 모두가 잘해 줘도 우연과 사멸의 예감 앞에서는 슬프다. 슬픔과 기쁨이 붙어서 가는 게 인생이다.”

그는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신음하는 그대로 감지한다는 것, 슬픔을 비껴가지 않고 한복판으로 내려가 애도할 수 있다는 건 좋은 능력이라고 했다.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그 슬픔의 중력이 결국 인간을 다시 살게 한다. 딸을 잃은 엄마가 그 슬픔을 피해 우주 공간을 미아처럼 배회하다 기어이 지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말이다.
“사는 게 무거운 짐이지만, 짐 없이는 또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웃음). 철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통을 덜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인정하고 거기에 선을 더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나는 후자를 권한다(웃음).”

늘 사람들 곁에서 봉사하며 살지만, 외로움이 찾아올 때도 있을 텐데.
“신부는 자기 집이 없다. 평생 떠돌며 사택 생활을 한다. 그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덜 외롭다(웃음). 가족과 살아도 소외감이 드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나는 가족처럼 친밀하진 않지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유사 가족이 많다. 교구 신부는 우정을 맺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웃음). 현대인들은 외롭긴 싫은데, 우정 능력은 더 떨어져서 안타깝다.”

우정을 잘 맺는 비결이 뭔가.
“한 번은 속더라도 신뢰를 보여야 우정이 시작된다. 진의를 알려고 애쓰지 말고 보이는 그대로 대하는 거다. 판단은 유보하고.”

마지막으로 신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혼란의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은 막연한 기대와는 다르다. 바람을 잘 정화하고 조형해야 희망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지켜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