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2019년 4월 27일 중국 절강이공대의 특임부교수 궈빙(郭兵)은 항주야생동물세계(이하 동물원)에서 한 장에 1360위안(약 24만원) 하는 2인용 연회원 카드를 샀다. 유효 기간은 2019년 4월 27일부터 2020년 4월 26일까지. 카드와 함께 지문을 인식하면 유효 기간 내에 횟수의 제한 없이 동물원을 이용하는 게 가능하다. 궈빙은 연회원 카드를 살 때 이름·사진·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시스템에 지문을 등록했다.

그는 2019년 10월 17일 동물원으로부터 ‘동물원 입장 방식이 안면인식으로 변경됐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기존 지문인식은 적용되지 않을 예정이고, 안면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사람은 동물원 입장이 불가능하니 빨리 연회원 카드를 들고 동물원에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해 10월 28일 궈빙은 동물원의 일방적인 안면 정보 요구에 대해 관할 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동물원이 궈빙에게 계약 이익의 손실과 교통비 명목으로 1038위안(약 18만원)을 배상하고, 궈빙이 연회원 카드를 신청할 때 제출한 사진 등 안면 특징 정보와 지문 정보를 삭제하도록 했다. 생물 식별 정보인 안면 정보는 법에 따라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민감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동물원 출입 방식 변경을 이유로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제공을 요구하는 걸 법원은 계약 위반 행위로 본 것이다. 이 사건은 중국에서 이른바 ‘중국 인검식별 제1호 사건(中國人臉識別第一案)’으로 불린다.

현재 중국은 개인정보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하고 있다. 중국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2차 회의는 중화인민공화국 개인정보보호법(中華人民共和國個人信息保護法) 초안(草案)을 일반에 공포하고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4월 22일 전인대 상무위원회 법제업무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개인정보보호법 심의 과정을 설명했는데, 민감 개인정보를 특별히 보호하고 개인정보 처리 과정에서의 정보 주체 권리를 강화해 알 권리와 결정권, 조사권, 수정권, 삭제권 등을 철저히 보장할 계획임을 밝혔다. 개인정보보호법 초안(제2차 심의안)은 4월 26일 제13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8차 회의에 제2차 심의가 제청됐다.

제2차 심의안에 따르면 민감 개인정보는 일단 누설되거나 불법적으로 사용되면 개인에게 차별이나 신체·재산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정보다. 인종, 민족, 종교·신앙, 개인의 생물적 특징, 의료·건강, 금융 계좌, 개인 행적 등의 정보를 포함한다(제29조). 민감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개인정보 처리자는 개인의 개별 동의를 얻어야 하고, 법률이나 행정 법규의 민감 개인정보 처리에 서면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라야 한다(제30조).

이미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안면인식 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안면 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제공이 일상화돼 있다 보니 그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궈빙 같은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 의식이 제고되고 법원이 그 손을 들어주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