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각)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각)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산(産) 원유·가스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대한 동참 여부를 두고 미국과 유럽 우방국 간 견해차가 나타났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경제 타격을 우려하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월 8일(이하 현지시각) 대(對)러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조치가 러시아의 전쟁 자금 확보에 강한 타격이 될 거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수입 금지 대상에는 러시아산 원유, 가스, 석탄이 포함됐다. 외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에너지 생산을 위해 투자하는 데 미국인이 자금을 대는 것도 금지된다. 미국 에너지 업계도 이번 제재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엑손 모빌, 셰브론, BP, 셸 등이 회원사인 미국석유연구소의 마이크 소머스 회장은 “석유 업계는 (러시아산) 수입 금지를 준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번 조처는 미국의 독자 제재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동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면서 “(현실적 이유로) 많은 동맹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며, 러시아 압박이라는 목표에는 다들 뜻을 같이한다”고 했다. 그는 ‘푸틴의 전쟁’으로 휘발유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며 “자유를 지키는 데는 비용이 든다”고 했다. 이어 (에너지) 가격 상승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며, 석유회사들이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간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대러 제재에 발을 맞춰왔지만, 에너지 제재에 대해서는 온도 차를 보였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다르기 때문.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은 약 3%, 석유제품을 포함하면 8% 정도다. 가스는 수입하지 않는다. 반면 유럽은 수입 원유의 25%, 가스의 40%가 러시아산이다.

유럽 국가 간 입장도 갈리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3월 7일 “(대러 에너지 제재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논의 대상”이라며 “러시아산이라 하더라도 석유와 가스 수입을 하룻밤 만에 중단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영국은 올해 말까지 러시아 석유 및 석유 제품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같은 날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을 일부러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며 “유럽에 난방, 이동, 전력, 산업을 위한 에너지 공급은 현재로서 (러시아산 외)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제재에 맞서 자국 특정 물품 및 원자재 수입·수출 금지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3월 8일 ‘러시아의 안보 보장을 위한 특별대외경제조치 칙령’을 내렸다. 이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적용되며, 구체적인 적용 물품 및 국가 등 목록은 이달 중 발표될 전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셰브론 주유소. 사진 블룸버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셰브론 주유소.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1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 등 영향으로 국제원유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원유 금수 조치를 발표한 3월 8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3.6% 상승한 배럴당 123.70달러를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종가 기준 2008년 8월 이후 최고가다. 앞서 지난 6일에는 브렌트유가 장중 한때 18% 폭등해 139.13달러에 거래됐으며, WTI는 130.50달러까지 올랐다. 둘 다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다. 이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 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경제불황 속 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대표적이며, 최근 뉴욕 증시와 유럽, 아시아까지 글로벌 증시가 하락한 이유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 확산에 달러화로 돈이 몰리면서 원·달러 환율은 1230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1230원을 넘은 것은 202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들. 사진 각 사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한 글로벌 기업들. 사진 각 사

연결 포인트 2
넷플릭스·벤츠·샤넬·비자도…글로벌 기업 ‘러시아 보이콧’ 바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글로벌 기업이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최근 공식 성명을 통해 “현지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넷플릭스 가입자는 약 100만 명 규모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도 “러시아의 새로운 ‘가짜뉴스법’ 도입에 따른 영향을 검토하는 동안 러시아 비디오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3월 4일 러시아군에 대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경우 최고 15년 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에 서명했다. 이 밖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정보기술(IT) 기업과 비자, 마스터카드 등 카드 업체들은 러시아 내 서비스를 중단했으며, 월트디즈니컴퍼니,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 등 영화사들도 보이콧을 선언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등을 소유한 케링 그룹, 샤넬 등 명품과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러시아 내 영업을 중단했다.

2월 27일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들. 사진 뉴스1
2월 27일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들. 사진 뉴스1

연결 포인트 3
러시아, 이란 제치고 세계 최다 제재 대상국으로

러시아가 세계 1위 제재 대상국이 됐다. 글로벌 제재 추적 데이터베이스 카스텔룸이 3월 7일 기준 집계한 러시아에 대한 각국 제재는 5532여 건에 달했다. 카스텔룸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성향 2개 주(도네츠크, 루간스크) 독립을 승인한 2월 21일 이전과 서방 국가가 첫 제재를 가한 2월 22일 이후 제재 건수를 비교했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2월 22일 이후 대러 제재 2778건을 추가했다. 국가별로 스위스(568건)가 가장 많았으며, 유럽연합(EU) 518건, 프랑스 512건, 미국 243건 순이었다. 유형별로 개인 제재 2427건, 기관 제재 343건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기존 제재 건수 1위였던 이란(3616건)을 제치고 세계 최다 제재 대상국이 됐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는 “대러 제재는 러시아 침공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 간 비상한 단합이자, 경제력으로 압박하려는 결의를 보여준다”며 “(다만) 이는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군대 배치를 하는 데는 주저한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