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일본 효고현 고베 나라 지역에 있는 니혼슈 대표 브랜드 ‘하쿠쓰루’의 사카구라(양조장)와 내부. 3. 니혼슈 ‘기쿠마사무네’의 사카구라 박물관 내부. 사진 최인한
1. 2. 일본 효고현 고베 나라 지역에 있는 니혼슈 대표 브랜드 ‘하쿠쓰루’의 사카구라(양조장)와 내부.
3. 니혼슈 ‘기쿠마사무네’의 사카구라 박물관 내부. 사진 최인한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일본의 수도 도쿄는 7월 12일부터 8월 22일까지 긴급 사태가 발령된 상태다. 올림픽은 1년 연기돼 7월 23일 개막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부분 시합은 무관중으로 진행된다. 기대했던 ‘올림픽 특수’가 사라지면서 여러 업종과 제품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주류업체와 이자카야(居酒屋) 등 주점들이 특히 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술’은 2년 전부터 수난을 겪고 있다. 한·일관계가 냉랭해지고,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진 탓이다. 저도주 열풍을 타고 201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일본 맥주와 청주인 ‘니혼슈’를 찾는 주당이 많았다.


‘일본 술’과 ‘니혼슈’

우리나라와 일본은 한자 문화권이다. 한자를 뿌리로 하는 어휘가 많아 상대국 언어를 배우기가 아주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같은 한자를 놓고 쓰임새가 달라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일본 술(日本の酒)과 니혼슈(日本酒)도 그런 대표적 사례. 일본어 사전을 보면 보통명사 ‘술(酒·일본 발음은 사케 또는 슈)’의 첫 번째 의미는 ‘일본 고유의 술 니혼슈’로 표기돼 있다. 넓은 의미의 酒는 모든 종류의 술을 포함한다고 설명돼 있다. 그래서 술(酒)을 놓고 종종 오역이 생기기도 한다.

2019년 여름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술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우리 국민의 감정이 악화된 당시 여당 대표가 ‘정종(正宗)’을 마신 것이 알려져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일부 언론은 ‘정종(사케)’이라고 표기했다. ‘正宗(일본명 마사무네)’은 수천 종의 니혼슈(淸酒) 가운데 하나다. 정종은 ‘일본 청주 브랜드 중 하나’로 설명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 

일본 술(日本の酒)은 일본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종류의 술을 지칭한다. 일본산 소주, 맥주, 청주, 위스키, 막걸리 등이다. 반면 니혼슈(日本酒)는 고유 명사로 청주를 뜻한다. 일본에선 한자로 표기하며, 현지 발음이 니혼슈다. 니혼슈는 쌀을 발효해 만들었기 때문에 주세법 기준 청주로 분류된다. 일본인이 예로부터 가장 즐기는 전통주가 니혼슈여서 일본의 주점에서 사케(酒)를 달라고 하면, 니혼슈를 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니혼슈는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에 걸쳐 일본 전국에서 만들어진다. 일본인 사이에선 예전부터 ‘쌀이 좋은 고장=名酒 생산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2021년 현재 일본 전국에서 니혼슈를 생산하는 사카구라(양조장)는 1500여 개에 달한다. 이들 양조장마다 독자적인 전통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니혼슈의 원재료가 되는 쌀과 물맛이 다르기 때문에 니혼슈 맛의 차이가 난다. 니혼슈는 섭씨 5도부터 55도까지 폭넓은 온도대에서 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계절마다 제철 요리에 어울리는 니혼슈를 고를 수 있다.


일본의 다양한 니혼슈. 사진 최인한
일본의 다양한 니혼슈. 사진 최인한

일본 대표 니혼슈

일본 주세법에 따라 ‘청주’로 판매될 수 있는 니혼슈의 알코올 도수는 22도 미만(합성 청주는 16도 미만)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니혼슈는 품질에 따라 보통주와 고급주로 분류된다. 보통주는 쌀, 누룩 외에 양조용 알코올, 당류, 산미료, 사케가스 등을 부속 원료로 첨가해 양조한다. 고급주로 꼽히는 니혼슈는 준마이주(純米酒)와 긴조(吟釀), 다이긴조(大吟釀)처럼 특정 명칭이 붙어 있다. 준마이주는 술을 발효할 때 인공 첨가물을 쓰지 않고, 쌀과 누룩만을 사용한다. 긴조는 청주의 원료가 되는 쌀의 정미 비율이 60%, 다이긴조는 50% 이하를 지칭한다. 다이긴조는 현미에서 50% 이상을 깎아낸 쌀을 재료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고급주로 분류되고, 가격이 올라간다. 최고급주의 경우 20% 이하인 경우도 있다.

니혼슈 시장은 2000년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고품질 술이 만들어지면서 군웅할거 시대를 맞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니혼슈는 어떤 것들일까. 먼저 ‘순수일본술협회’가 꼽은 지역별 명주인 ‘환상의 술’이 있다. 순수일본술협회는 준마이주 생산 사카구라만을 회원사로 받아들인다. 이 협회가 꼽은 최고 ‘니혼슈’는 다음과 같다.

① 米鶴(요네쓰루) 야마가타현 다카하타 소재. 처음부터 긴조주에 힘을 쏟아왔다. 레이싱 경주인 ‘F-1’ 이름의 니혼슈를 만들고 있다. ② 東力士(아즈마리키시) 가라스야마 소재(아즈마는 일본 동쪽을 뜻하는 옛 일본어). 긴조주 수상 실적이 많으며, 오래된 사카구라로 유명하다. ③ 澤乃井(사와노이) 도쿄 오우메 소재. 술을 빚을 때 중경수를 사용해 술맛이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④ 七賢(시치켄) 야마나시현 하쿠슈 소재. 술을 양조할 때는 사람이 진실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켜온 유서 깊은 사카구라. 가이고마산에서 흘러내리는 복류수를 사용하며, 좋은 자연환경 속에 있다. ⑤ 手取川(테도리가와) 이시카와현 하쿠야마 소재. ‘자연스러운 맛을 추구한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술맛과 감촉이 특징이다. ⑥ 招德(쇼토쿠) 교토 후시미 소재. 교토의 술은 매우 부드러워 흔히 ‘여자의 술’로 불린다. 풍부한 산미가 살아 있어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⑦ 桃の滴(모모노시즈쿠) 교토 후시미 소재. 부드러운 후시미 지역의 술맛을 보여주는 정통 니혼슈. 유명한 걸작 영화 ‘장례식’에서 ‘日出盛(히노데자카리)’ 이름으로 인용된 술이다.

니혼슈 전문 사이트 ‘SAKE TIME’이 소비자 만족도로 평가한 ‘2021 니혼슈 인기 랭킹’이 있다. 이 조사에서 1위는 야마가타현의 쥬욘다이(十四代)가 차지했다. 이어 나가노현의 신규키레이(信州亀齢), 사이타마현의 하나아비(花陽浴)가 뒤를 이었다. 미에현 지콘, 아키타현 히노토리, 아키타현 No.6, 아먀구치현 킨스스메, 사가현 소가페르에피스, 나가노현 가와나카지마겐부 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경제와 함께 성장한 니혼슈 시장

니혼슈는 강소 장수기업들이 주로 생산한다. 창업 100년이 넘고, 3·4대 대를 이어 술을 만드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효고현에서 나오는 고급 니혼슈 ‘겐비시’는 1505년 문을 열었다. 청주 애호가들 사이에 유명한 니가타현의 코시노칸바이(越乃寒梅), 핫카이산 등이 대표 브랜드다. 명품 니혼슈가 탄생하려면 좋은 쌀과 맑은 물이 필수다. 이러한 원료에다 ‘장인정신(모노즈쿠리)’이 들어가야 명주가 탄생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만 해도 니혼슈는 동네에서 주민들이 주로 소비하는 상품이었다. 사카구라에서 대량으로 술을 생산해 전국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니혼슈 시장은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본격화된 1950년대 후반 형성됐다. 경제 성장과 함께 가계 소득이 늘어나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술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에 맥주도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인 사이에선 ‘술을 마신다’고 하면, 여전히 ‘니혼슈를 마신다’는 의미였다.

니혼슈 시장은 1970년대 이후 급팽창했다. 새로운 양조 기술과 마케팅 기법으로 무장한 장수기업의 신세대 경영자들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덕분이다. 1980년대 경제 호황기를 거치면서 지역 명주를 뜻하는 ‘지자케(地酒) 붐’이 불었다. 지자케 붐을 견인한 술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니가타현의 코시노칸바이. 도쿄에는 지자케를 전문으로 하는 술 판매점과 이자카야가 크게 늘어났다.

니혼슈 시장 규모는 4350억엔(약 4조3500억원·2019년 기준) 정도로 10여 년 전부터 큰 변동이 없는 상태다. 2010년께를 정점으로 일본 국내 술 시장은 정체되고 있다. 2009년부터 일본의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데다 개인 술 소비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일식(和食) 붐’이 불면서 해외 수출과 현지 생산은 늘고 있다. 신세대 경영인들은 세련된 디자인과 맛을 고급화한 신제품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코로나 사태도 진정돼 술 시장이 정상화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