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 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 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

세계 7위 수출 강국인 우리나라 무역 업계에 꿈이 하나 있다. 우리 화폐인 원화를 국제화시켜 수출입 거래를 원화로 결제하는 것이다. 매번 달러화나 유로화로 환전하면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한 푼도 지불하지 않거나 대폭 낮출 수 있고 수시로 출렁이는 환리스크도 제거할 수 있다. 무역 업체는 일반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거래 금액을 확정하고 실제로 돈을 회수하는 데 3∼6개월이 소요돼 태생적으로 환율 변화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원화로 결제하면 또 다른 이점이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외환 관리 전담 인력이나 환전을 위한 서류 준비 등이 불필요해 국내 거래 업무와 통합되면서 특별한 사후관리가 필요 없어진다. 그러나 원화의 국제화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해 보고 흐지부지됐다. 상대가 있는 수출입 거래에서 결제 통화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국제적인 신인도와 유통량 그리고 그 거래(보관) 비용 등에 대한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자국 통화의 국제화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상품 무역 1위 국가로 올라선 중국이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화의 위상 제고를 최고의 국가 어젠다로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은 2004년부터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 내 금융기관을 통해 개인 예금 및 송금, 신용카드 등의 업무에 초점을 맞춰 위안화 국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다음 해부터 홍콩에서 위안화 예금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변경했고 2007년에는 국가개발은행(China Development Bank)을 통해 홍콩에서 역외 위안화 채권(일명 딤섬본드) 발행을 시작했다.

중국은 이런 조치에 만족하지 않고 무역 결제에 단계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 베이징, 톈진 등 18개 지역(성급)을 시범 도시로 선정하면서 거래 대상국도 전 세계로 확대했다. 2011년 7월에는 중국 전역에서 위안화 무역 결제가 가능하도록 범위 제한을 폐지했다. 더불어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해서도 위안화 투자를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디지털 화폐가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디지털 화폐가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 디지털 화폐 도입 나서

최근 중국은 중앙은행에 의한 디지털 화폐 도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주요 경제권 국가 중 처음으로 디지털 화폐 시범 사용에 들어갔다. 올해 들어서는 20만 명에게 디지털 화폐(총 4000만위안·약 72억원)를 뿌리면서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본격적인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위안화 위상이 달러화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기축통화국으로서 통화 정책의 폭이 확대되고 무엇보다 미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금융 제재에서 보다 자유롭게 되는 엄청난(?) 성과도 중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특정 화폐로서 국제화 로드맵은 위안화보다 유로화가 먼저 깃발을 높이 들었다. 2002년부터 유로화가 본격적으로 국제 결제 시장에 얼굴을 내밀면서 국제 통화 다원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연합해 통화장벽을 없애고 비용 절감을 통한 대외 경쟁력 제고 외에 달러화 의존도 탈피라는 성과도 드높였다. 역내 국가들끼리 교역하는 경우 자국 통화를 이용하는 것과 같아 거래 비용을 낮추어 교역을 촉진하고 환리스크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그러나 가치 측면에서 유로화의 위상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출범 시 유로화 환율이 1달러당 0.8유로에서 0.9유로 수준에서 움직였는데 거의 20여 년이 흐른 최근에도 0.85유로로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로화의 국제 결제 비중이 40%에 육박해 국제화에 대한 우려 단계는 완전히 벗어났다.

이제 미국 달러화에 대한 도전자는 위안화나 유로화가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변방에 머물던 디지털 화폐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는 구도가 그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상품 및 서비스의 국제 거래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면서 디지털 화폐의 영토 확장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화폐는 민간이 만든 것과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인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간의 대결로 구도가 짜여지고 있다. 발권력을 쥐고 있는 중앙은행의 민간 디지털 화폐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최근 민간 디지털 화폐의 대명사인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3000달러(약 339만원) 안팎이던 수준에서 벗어나 6만달러(약 6780만원)를 넘나들면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각국은 CBDC로 디지털 지불시대를 주도하겠다면서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민간 화폐를 공격하고 있다. 첫째로 민간 화폐는 신뢰성이 없고 가치를 보장하는 주체가 없어 가격이 널뛰기한다고 혹평한다. 실제로 미국 통화 당국자들의 입에 의해 비트코인 가격은 투기적 흐름을 보인다. 공급량이 한정적이고 거래 수수료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인다.

그러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 시대에 민간의 디지털 화폐가 기존 금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공급량이 제한돼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올라가고 국경을 넘어 사용하기 힘든 CBDC의 최대 약점인 특정국 통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CBDC는 중앙은행의 지급 보증을 받았다는 강점이 있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민간의 결제 시스템이나 카드와 차별성을 체감하기 힘들다. 상당 기간 민간 화폐와 CBDC 공존 가능성도 점쳐진다. 온라인 거래의 특성상 디지털 화폐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신뢰성을 확보한 CBDC와 효율성의 민간 화폐가 시너지를 내면서 디지털 결제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환율 조정 메커니즘 붕괴 우려

국적 개념이 없는 디지털 화폐를 마냥 반길 수도 없다. 특정 디지털 화폐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면 환율에 따른 국가 간 상품가격 조정 기능이 없어져 국제수지(수출-수입) 양극화가 고착화할 수 있다. 현재는 특정 국가의 무역 적자(수출액<수입액)가 지속되면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가 하락해 수출품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대외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조정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이를 통해 시간이 흐르면서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무역수지를 개선시킨다. 수출 증대를 통해 경기를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유혹에 빠져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디지털 화폐를 통한 단일 통화 체제로 가면 경쟁력이 탄탄한 국가는 수출이 늘어도 환율 조정 기능이 없어 계속 흑자만 보게 되고 반대인 국가는 계속 적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독일이 유로화권으로 편입되면서 수출을 쉽게 늘리는 이익을 보고 있다. 2000년대에 독일은 높은 자체 기술력에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동유럽의 생산 기지를 적절하게 활용해 경쟁력을 급격히 제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통화체제로 무역수지 불균형이 조정되지 않아 지속적인 흑자누적(상대적 수출 증가)을 향유했다. 여타 국가는 적자누적(상대적 수입 증가)으로 재정위기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00년 당시 독일 수출은 5435억달러(약 614조1550억원), 한국 수출은 1723억달러(약 194조6990억원)로 양국 간에 수출 규모가 세 배 이상 차이가 났음에도 2001~2008년에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높았다(독일 12.8%, 한국 11.9%)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또한 디지털 통화의 팽창은 기존 화폐보다 유통 속도가 더 빠르고 국경 제한이 없어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서 화폐의 효용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요즘처럼 재난지원금을 마음대로 늘리는 데 한계가 있고 물가 상승 시 통화량 고삐를 죄는 것도 힘들 수 있다. 디지털 화폐 시대의 도래는 혁신의 발판이기도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어둠의 그림자를 초래하기도 한다. 부국과 빈국의 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