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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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다’는 푸념을 최근 자주 듣고 있다. 주가는 연일 신저가를 경신하고 있으며 미국의 금리 인상 소식은 거의 분기마다 기대치를 넘는 수준으로 들리고 있다. 하지만 하락장에서도 큰 수익을 낸 투자자들은 늘 있었고, 불황기에 새롭게 탄생한 거대 기업도 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유니클로, 다이소, 자라 같은 기업이다. 남들이 다 어렵다고 하는 불황 속에서 고성장을 달성해온 기업들이다. 지금 시장 상황이 아무리 안 좋다고 하지만 분명히 투자할 기업들은 어딘가에서 고성장을 달리고 있다.

증권 시장의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은 증시가 부진할 때 경기 방어주를 투자 대안으로 주목한다. 경기 방어주란 경기 변화에 기업 실적이나 주가가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식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경기 방어주로 유통, 통신, 식음료, 제약, 보험, 유틸리티 등이 꼽힌다. 

그러나 전통적인 경기 방어주도 선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유틸리티 업종은 연료비 조정단가가 인상되지 않으면 실적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고, 보험 업종은 올해 폭우 피해 영향으로 손해율 상승이 예상되고 있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경기 침체기에도 수혜주는 있다. 실제로 경기 불황기를 거치며 유니클로와 자라가 현재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듯이 불황형 소비는 어떤 업종 또는 어떤 기업에는 기회일 수 있다. 물론 과거 경기 사이클이 특정한 패턴을 보였다고 해서 미래에도 시장의 움직임이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산업 패러다임과 소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은 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소비 트렌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소비 트렌드는 조금 더 복잡해진 양상이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신조어로 저가에 고품질까지 갖춤을 표현함)’만을 중요시하기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등 예전보다 더 많은 걸 원한다. 실제로 이커머스의 꾸준한 매출 신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시장이 이커머스 업종에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일 것이다.


불황형 소비의 시작

우선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황형 소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유통가에서는 고가 브랜드의 땡처리 행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도시락 같은 편의점 제품 및 PB(자체 브랜드) 제품이 인기다. 외식비 부담이 커지면서 편의점 제품, 도시락을 이용하는 트렌드가 많아졌고, 냉동식품과 밀키트 등의 성장도 견조하다. 신선식품에서도 냉동 식품에 대한 수요가 생물을 앞서고 있으며, 신선 과일보다는 냉동 과일의 인기가 높아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냉동식품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크게 성장해온 밀키트 및 신선 제품 배달 업종에서도 소비자 수요가 세분되며 조금씩 옥석 가리기가 되는 양상이다.

IT 업종에서는 대형가전이 맥을 못 추고 통신 업종에서는 자급제 휴대전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급제 휴대전화란 통신사를 통하지 않고 공기계 형태로 구매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의미한다. 통신사에서 구매하면 고가의 5G 요금제에 가입해야 하나, 자급제폰을 사면 가장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하는 통신사를 고를 수 있는게 특징이다. 고물가 시대에 특히 고가의 휴대전화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자급제 휴대전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에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된 소비 트렌드다.


스몰 럭셔리 트렌드는 지속

불황형 소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것은 스몰 럭셔리 관련 소비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작년의 식문화 핵심 키워드는 ‘홀로 만찬’이라고 한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라는 의미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신조어)’과 ‘스몰 럭셔리’ 트렌드와 일맥상통한다. 외식 업계에서는 ‘오마카세’가 유행하며 고급화를 선도하고 있고, 고급 호텔 및 파인 다이닝 식당에서는 2030 세대가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고급 스포츠였던 골프는 이제 대중화돼 코로나19 이후에도 2년 넘게 인기를 지속해오며 골프 의류, 골프장 및 골프용품 관련 업종 매출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입문자용 제품보다 중급자 이상이 구매하는 제품군 인기가 늘어나는 추세로 골프 시장의 확대를 실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퍼터는 골프에 입문한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업그레이드하는 제품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아이언, 드라이버, 퍼터순으로 제품을 구입하는데 마지막 단계인 퍼터는 골프 열풍이 시작되던 2020년보다 2021년부터 빠르게 매출이 성장했고,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골프를 치기 시작한 이들의 구력이 늘면서 골프용품 전반적으로 구매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코로나19 시대에 반짝인기로만 끝날 줄 알았던 스몰 럭셔리 업종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다.


리오프닝 소비, 새로운 시장의 탄생

코로나19로 중단됐던 경제 활동이 재개된다는 의미의 리오프닝과 관련한 소비도 새로운 소비의 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시 대면 활동과 야외 활동이 많아지며 리오프닝이 되고 있는 환경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여행, 의류, 외식에 대한 소비가 재개됐는데 이미 성숙한 시장이었던 분야에서도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엿보인다.

최근 국내 중소 제약사가 대대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며 히트를 친 압박스타킹이 대표적이다. 오래 서 있거나 야외 활동이 빈번하다 보면 다리의 부기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하체 부종이 반복적으로 심해지면 하지정맥류, 만성 부종, 하체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작년부터 의료용 압박스타킹이 골프용, 수면용 등 다양한 신제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없던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업계 전망에 따르면 압박스타킹 관련 시장 규모는 올해 1000억원을 웃돌 수 있다. 

화장품 업종에서도 이 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염색 샴푸다. 염색 샴푸는 집에서 머리만 감아도 염색이 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는 코로나19 시대의 소비와 맞아떨어지며 크게 히트를 쳤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토니모리 등이 염색 샴푸를 출시했다. 염색 샴푸 매출은 1조3000억원 수준의 전체 국내 모발 제품 시장에서 약 1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확실한 시기에도 새로운 투자 기회는 있고 그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투자자의 유연한 자세일 것이다. 시장은 상승과 하락을 계속 반복하고 있으나 투자자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사이클의 흐름을 가늠하며 대응해야 한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불황에도 유니클로와 다이소 같은 큰 기업들은 계속 탄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