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11월 6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서울 개포동의 래미안개포포레스트. 2020년 9월 준공돼 입주 2년 차를 맞은 이 아파트 전용면적 59㎡의 전세 가격은 최근 7억9000만원까지 하락했다. 8억원대 전세 물건도 여럿있다. 준공이 떨어지고 한꺼번에 전세 물건이 쏟아졌던 2년 전 전세 가격이 9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년 전보다 전셋값이 오히려 떨어졌다. 세입자에게 돈을 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집주인(임대인)들은 다급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있다. 한 임대인은 “사실 몇천만원씩 내줄 돈이 없어서 고민”이라며 “여러 방법을 논의 중이지만 답을 못 찾고 있다”고 했다.

올해 8월 말을 기점으로 전세난이 우려된다는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해 신규 입주 물량이 많지 않고, 임대차 2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권) 도입 2년 차를 맞이해 전셋값이 크게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실상은 집주인 입장에서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다. 전셋값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이자를 지원해주는 방식 등 궁여지책을 마련할 정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이 부담스러운 상황에 이른 임차인들이 월세로 계약을 바꾸거나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 등지로 이사하는 방식으로 고금리 시대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비싼 전셋값을 감당할 수요 자체가 줄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내년엔 역전세난이 더 심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금리 하락, 기대하기 어렵다

전셋값에 대한 전망은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의 전망이 모두 빗나갔다고 봐야 한다. 올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하반기 전셋값에 대해 강세나 강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약세 전환할 것이란 취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이는 기준금리가 급속도로 오를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지난해 8월부터 여덟 차례나 금리를 올렸다. 이로써 한국의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연 3.0% 시대를 맞았다.

기준금리 상승에 따라 전세대출 금리도 올랐다.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신한·우리)의 전세대출 금리는 최근 연 7.0%까지 상승했다. 지난해만 해도 전세대출 금리는 연 2.3~3.8% 수준이었다. 불과 1년 새 이자 부담이 두세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연 3% 금리로 2억원의 전세 자금을 빌린 사람은 한 달에 은행에 50만원 정도만 내면 됐지만 연 6%로 전세대출 이율이 오르면 한 달 이자는 100만원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당분간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크다는 점이다. 전세 수요가 급감한 것은 금리 부담이 크기 때문에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지 않는 한 전세 수요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대출 부담에 전세 수요보다는 반전세, 월세 수요가 늘었다”면서 “기준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작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신규 주택 공급 올해보다 내년이 많다

신규 주택 공급이 적었던 올해도 역전세난이 났는데 내년엔 오히려 신규 주택 공급이 늘어난다는 점도 임대인의 역전세난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가 공개한 ‘공동주택 입주예정물량 정보’에 따르면, 2023년 서울 입주 물량은 3만8886가구다. 올해 입주 물량 1만8840가구의 두 배 수준이다. 통상 전셋값은 주택의 실사용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수요·공급 원칙을 잘 반영한다고 본다. 1만8840가구 공급이 있던 해에도 전셋값이 하락세를 보였는데, 두 배 수준으로 신규 주택이 공급되고 이 분위기가 지속하면 역전세난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R114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19년 4만5940가구를 기점으로 △2020년 4만4019가구 △2021년 2만9315가구 △2022년 1만8840가구로 하락세를 보이다가 2023년부터는 다시 공급이 늘어난다.

대단지 아파트가 많은 편이다. 내년 2월 서울 개포동의 개포프레지던스자이(3375가구)를 시작으로 5월엔 서울 용두동의 청량리역한양수자인192(1152가구), 7월엔 서울 전농동의 청량리역롯데캐슬SKY-L65(1425가구)와 서울 수색동의 DMC SK뷰 아이파크포레(1464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8월엔 서울 반포동 원베일리(2990가구)도 예정돼 있다.

대단지 입주가 시작되면 일시에 임차 물량이 나오면서 전세 가격은 약세를 보인다. 전국적으로 전세난이 심했던 2020년 8월 이후로도 경기도 과천시엔 순차로 1만 가구의 신규 주택이 공급되면서 전셋값 상승이 크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신축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면 인근 구축 아파트 전셋값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서울 가락동의 헬리오시티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9510가구 대단지인 헬리오시티가 2019년 1월에 입주를 시작하자 전용면적 84㎡짜리 전셋값이 5억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2018년 가을에 인근 아파트에서 체결됐던 전셋값과 비교하면 2억원 이상 싼값이다.

부동산R114 윤지해 연구원은 “최근 역전세 분위기와 겹치면서 2년 전보다 낮은 전세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만큼 집주인들도 이에 대한 대비책은 미리 마련해놔야 한다”고 했다. 단기간에 급격하게 부동산 시장이 달아올랐던 때를 감안해서 전세 보증금으로 신축 아파트의 중도금과 잔금을 전부 치르겠다는 계산은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 “전세 가격엔 투자 수요가 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거품이 없다는 평가가 대다수였지만, 실제로는 저금리로 인해 전세대출이 손쉬워지면서 거품이 꼈었던 상황”이라면서 “금리가 주춤해지지 않으면 한동안 전셋값은 약세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