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이날 정부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대한 예정 공시가격을 공개했다. 사진 연합뉴스
3월 14일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이날 정부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대한 예정 공시가격을 공개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대한 예정 공시가격을 3월 14일 발표하면서 인상 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울의 공동주택 예정 공시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국민이 보유한 주택과 토지 등 부동산 가치를 평가해서 산정하며, 세금과 각종 복지 정책 수혜자를 정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정부에 따르면 서울의 올해 공동주택 예정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14.17% 상승한다. 이는 12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서울은 2018년에도 공동주택 예정 공시가격이 전년보다 10.19% 올랐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공개된 공동주택 예정 공시가격을 토대로 공동주택 소유자의 의견 청취 등 조정기간을 거쳐 4월 30일에 최종 확정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한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4월 30일에 함께 발표되고, 토지의 공시가격은 5월 31일에 발표한다.

주택과 토지의 공시가격이 인상되면 각종 세금도 함께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국가장학금을 받던 대학생이 장학금 대상에서 누락될 수 있고 기초연금을 받던 기초생활수급자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건강보험료도 주택 공시가격이 상승하면 더 내야 한다. 공시가격 급등이 불러올 문제점과 대응책을 알아봤다.


1│다주택자 잡으려다 서민까지 피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공시가격 급등의 문제점은 일부 투기꾼을 잡기 위해 모든 주택 소유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올리는 이유는 은행 대출과 전세를 끼고 여러 채의 주택을 산 다주택자들에게 더 많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물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거주하는 1주택자들도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보유세 인상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주택 한 채만 가지고 은퇴한 후 근로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시가격 상승은 징벌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집을 팔고 이사하려고 해도 양도세 등 거래세 때문에 힘들고, 집을 보유하려니 공시가격 상승으로 보유세가 계속 올라 (1주택 소유 은퇴자들은) 너무 힘든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고 했다.

청와대 온라인 청원 게시판에도 “올해 공시가격이 35% 오르고, 2년간 53% 올랐는데 은퇴한 1주택자는 어떻게 하느냐. 정말 개탄스럽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강남, 마포 등 일부 지역 아파트 공시가격은 20% 이상 올라갈 텐데 단독주택은 이보다 공시가격이 더 많이 뛸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투기와는 관련 없는 실거주 단독주택 보유자들에게도 공시가격 인상의 불똥이 튀는 셈이다.


2│국가장학금도 못 받을 수 있어

공시가격 상승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증여‧상속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뿐이 아니다. 공시가격이 건강보험료, 국가장학금, 기초연금 등을 부과하거나 줄 때 소득 산정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공시가격이 올라가면 국가장학금을 받던 대학생이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기초생활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을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또 건강보험료가 올라가는 경우도 다수 발생할 수 있다.

실제 국토교통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의 A아파트는 공시가격이 4억1700만원에서 올해 4억5900만원으로 10.1% 오르는데 이 영향으로 이 아파트 보유자들은 건강보험료를 종전보다 4000원 더 내야 한다. 2016년(25%)과 2017년(20%)에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급등한 제주도에선 2017년 기초노령연금을 신청한 9593명 가운데 4138명(43%)이 심사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탈락률(29%)보다 크게 높다. 공시가격이 상승해 소득이 늘지도 않았는데 소득산정액만 늘어난 노인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국가장학금을 받던 제주대학교 재학생은 지역신문 기고 글에서 “4년간 살고 있는 아파트 공시가격이 2013년 6200만원에서 2017년 1억800만원으로 74% 늘어나는 바람에 매번 받던 국가장학금을 이번에 받지 못했다”고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시가격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의 증세인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과 같은 때는 감세를 해도 경제가 나아질까 말까 한데 역으로 증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3│주택 4월 말까지, 토지 5월 말까지 증여 유리

한편 일단 정부가 공시가격 인상을 예고한 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면 조금이라도 세금을 줄일 방법이 있다. 정부가 최근 공개한 것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대한 예정 공시가격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예정 공시가격을 토대로 모든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등 주택에 대해서 4월 30일 확정된 공시가격을 공개한다. 또 토지에 대해서는 이보다 1개월 늦은 5월 31일에 공시가격을 공개한다.

일단 주택과 토지 공시가격이 확정되면 이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증여세,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이 부과된다. 이 때문에 올해처럼 공시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주택은 4월 말 이전, 토지는 5월 말 이전에 증여하거나 매각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시가 24억원인 토지(현재 공시가격 5억원)를 5월 말 전에 자녀에게 증여하면 증여세 8000만원과 취득세 2000만원 등 1억원의 세금을 내면 된다. 하지만 5월 말 이후 공시지가가 10억원으로 오르면 증여세 2억2500만원과 취득세 4000만원 등 2억6500만원을 내야 한다. 두달 사이에 세금이 1억6500만원(2.65배) 늘어나는 셈이다. 정원준 한화생명 세무전문가는 “현재 시세와 공시가격이 크게 차이 나는 단독주택이나 토지는 공시가격이 확정되기 전에 증여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에도 공시가격과 시세의 차이를 살펴 미리 증여하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지난 8일 개각 발표 전에 딸과 사위에게 경기도 분당의 아파트를 절반씩 증여한 최정호(61)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공시가격 산정 이전에 증여해 세금을 줄인 사례다.


Plus Point

항의 의견서 내고 이의신청도 가능

정부가 3월 14일 공동주택에 대한 예정 공시가격을 공개하면서 최종 공시가격 공표를 4월 30일에 하는 것은 이 기간에 주택 보유자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조치다. 주택 보유자들은 예정 공시가격을 확인한 후 공시가격이 너무 높다는 의견서를 각 시·군·구청을 방문해 제출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 사이트에 인터넷으로 제출할 수도 있다. 단 의견서는 4월 4일까지 접수해야 한다. 의견서가 접수되면 제출된 의견서를 검토해서 정부는 최종 공시가격 산정에 반영한다.   

또 4월 30일 최종 공시가격이 공개된 이후에도 이 가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공시가격 이의신청은 5월 한 달간 의견서 제출과 같은 절차로 시·군·구청이나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할 수 있다. 토지에 대해서도 같은 절차로 이의신청이 가능하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 390건이던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이 2018년에는 1117건으로 2.86배 급증했다.

원종문 국토교통부 전문위원은 “이의신청이 접수되면 기존에 공시가격을 평가했던 담당자가 아닌 다른 담당자가 재평가 작업을 하고 6월 말 조정공시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의신청 건수에 대한 공시가격 조정 건수의 비율인 조정률은 매년 40~50%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