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달러(약 779억원)에 낙찰된 비플(Beeple)의 디지털 아트 ‘매일: 첫 5000일(Everydays : The First 5000 Days)’.
3월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달러(약 779억원)에 낙찰된 비플(Beeple)의 디지털 아트 ‘매일: 첫 5000일(Everydays : The First 5000 Days)’.

지난해 11월, 움직이는 유령 캐릭터가 묘사된 동영상 한 점이 가상화폐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10초 분량의 이 짧은 영상은 미국 그라피티 작가 트레버 앤드루(Trevor Andrew)가 만든 디지털 파일로, 20점만 한정 제작됐다.

‘구찌 고스트 아쿠아 핑크(Gucci Ghost Aqua Pink)’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최초 판매 가격이 250달러(약 28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발매 당일 20점이 완판됐을 뿐 아니라, 즉시 세컨더리마켓(2차 시장)에 나와 525달러(약 58만원)에 되팔리기까지 했다. 지난달 초에는 1만9999달러(약 2200만원)에 재판매된 사례도 나왔다. 처음 시장에 나온지 석 달만에 가격이 80배나 급등한 것이다.

트레버 앤드루의 이 작품에는 암호화폐에 디지털 파일을 연결하는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 기술이 적용됐다. NFT는 현금으로도 사고팔 수 있지만 보통 암호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으로 거래된다. 이미지나 음악, 동영상 등 특정 디지털 파일과 일대일로 연결돼있어 고유성과 희소성을 지닌다. 즉, 평범한 동전에 그림을 새겨 넣어 기념주화로 만들면 희소가치가 높아져 값이 비싸지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애초에 컴퓨터로 제작한 디지털 회화나 동영상과 연결할 수도 있지만, 실물 회화나 조각을 디지털 파일로 제작한 뒤 암호화폐를 연결할 수도 있다.

NFT가 미술품 시장에서 특히 각광 받는 이유는 작품의 진위를 보증해주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아트는 복제가 쉬워 위작 논란의 여지가 많은 편인데, 작품에 가상화폐를 연결하면 화폐가 해당 작품의 진위성을 증명하는 고유번호가 된다.

NFT를 통한 미술품 거래량은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크립토아트(Crypto Art)에 따르면, 지난 3월 니프티게이트웨이·슈퍼레어 등 5개 거래소에서 집계된 NFT 미술품 거래 금액은 총 2억515만달러(약 2307억원)였다. 9154만달러(약 1040억원)에 그쳤던 2월 거래액보다 124%나 늘었다. 지난 2018년부터 올해 4월 14일까지 거래된 NFT 미술품의 누적 총액은 5억3700만달러(약 6000억원)에 달한다.

NFT 미술품 시장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가 된 인물은 미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본명 마이크 윈켈만)이다. 비플이 NFT 기술을 접목해 만든 이미지 파일 한 점은 3월 1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달러(약 779억원)에 낙찰됐다.

디지털 아티스트 팩(Pak) 역시 NFT 미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메타리프트(Metarift)’는 3월 20일 거래소 메이커스플레이스에서 110만달러(약 12억원)에 판매됐다. 팩은 세계적인 경매 업체 소더비와도 협업하고 있다. 소더비는 4월 12일(현지시각)부터 팩의 ‘더 스위치(The Switch)’ 등의 작품을 판매해 사흘 간 1700만달러(약 190억원) 이상을 벌었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도 종이 위에 제작한 1만 점의 실물 작품을 모은 뒤 암호화폐에 연결해, ‘팜(Palm) NFT스튜디오’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팜NFT스튜디오는 이더리움 개발자 조셉 루빈 등이 공동 창업한 NFT 거래소다.


‘거품론’도 있지만…NFT 성장 전망 우세

NFT 미술품에 투자하는 방법에는 수십억원의 경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매를 위해 단 한 점만 제작·판매하는 경우에는 낙찰가가 수십·수백억원까지 오르기 쉽지만, 작품 한 점을 판화처럼 여러개 제작해 각기 다른 고유번호를 매겨 판매하는 경우에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다.

여러 점의 판이 제작되더라도 세컨더리마켓에서는 최초가보다 수십, 수백 배 비싼 값에 되팔 수 있다. 세계적인 디제이(DJ) 디플로와 그래픽 아티스트 프렌즈위드유가 공동 제작한 동영상 ‘해피 코인(Happy Coin)’은 최초가가 1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컨더리마켓에서의 평균 호가는 286달러(약 32만원)에 달한다. 발매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300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NFT 미술품 가격이 급등하는 사례가 늘자 금융투자 업계 일각에서는 ‘거품론’도 제기된다. NFT 투자 열기가 일시적인 광풍에 불과하며, 가격에 낀 거품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4월 3일 NFT 기술을 접목한 자산의 평균 가격이 1400달러로, 지난 2월 최고치인 4300달러보다 70%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NFT 시장은 향후 점진적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방증하듯, NFT 발행 사례가 국내외에서 앞다퉈 나오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지난 12일 쿠팡과 로블록스, 스포티파이 등 6개 기업의 상장을 기념하는 NFT를 발행했다. 피자헛·프링글스·타코벨·맥도널드 등 글로벌 식품 업체들도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연결한 NFT를 발행했다.


Plus Point

[Interview] 송자호 피카프로젝트 대표
“NFT 미술은 새 예술 장르, 작가와 협업 계속한다”

송자호 피카프로젝트 대표 월넛힐예술학교 파인아트 수료, 현 한국공유경제진흥원 예술분과위원장 / 사진 피카프로젝트
송자호
피카프로젝트 대표 월넛힐예술학교 파인아트 수료, 현 한국공유경제진흥원 예술분과위원장 / 사진 피카프로젝트

피카프로젝트는 국내 최초로 NFT 미술품 거래를 중개한 업체다. 3월 17일 팝아티스트 마리킴의 ‘미싱 앤드 파운드(Missing and Found)’를 경매에 올려 6억원에 낙찰시켰다. 경매 업체 서울옥션 역시 NFT 미술품을 판매하겠다고 밝힌 만큼, 피카프로젝트의 사례는 국내 NFT 미술 시장을 본격적으로 연 최초의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4월 12일 서울 청담동 갤러리에서 송자호 대표와 만나 NFT 미술 시장의 현주소와 의의를 논했다.

NFT 미술품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오래 전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암호화폐가 여러 산업군에서 쓰이고 있는 것을 봤다. 미술계에서도 제대로 상용화한다면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년 여름부터 암호화폐 개발 인력을 채용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했다. 10월에 자체 암호화폐인 ‘피카아트머니’를 발행했고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업비트에 상장했다. 우리 회사에서 판매하는 NFT 미술품은 피카아트머니나 이더리움으로 살 수 있다.”

NFT 미술품은 진정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마찬가지로 앤디 워홀이 팝아트를 처음 선보였을 때도 ‘실크스크린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무슨 예술이냐’는 반응이 많았다. 현재는 팝아트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됐듯이, NFT도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새 예술 장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성이 있고 사회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물 작품을 복제해 만든 디지털 파일도 ‘원작’이라고 볼 수 있는지.
“실물 작품의 디지털화는 단순히 작품의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캔버스에 그린 회화는 작가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다시 그리고, 조각은 3차원 360도 영상으로 제작해 가상현실(VR) 기기로 관람할 수 있도록 재창조한다. 이 경우 디지털 파일은 실물 작품과는 별개의 ‘원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디지털 파일을 연결한 NFT도 고유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은 NFT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제로 작가가 NFT 미술품 제작을 희망해 먼저 연락해오는 사례가 많다. 특히 무단 복제 때문에 작품의 고유성을 보장받기 어려웠던 그래픽·미디어 아티스트들은 NFT 기술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여기기도 한다. 향후 마리킴 작가의 후속작은 물론이고 김봉수 조각가, 이진용 작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사라이바의 작품들에 NFT를 접목할 계획이다. 단일 작품에 대한 경매뿐 아니라 여러 점의 판(에디션) 제작·판매도 병행해 진입 장벽을 낮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