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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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육사 군사사학과 외래교수, 3사 초빙교수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육사 군사사학과 외래교수, 3사 초빙교수

나라가 어수선하다. 서울 상공이 뚫렸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시끄럽다. 놀라운 건 9·19 군사합의로 가짜 평화를 세일즈하며 표를 챙기던 정치인들이 그 분노의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5년 동안 정권을 잡았으면서 무인기(드론) 대책 하나 제대로 못 세웠던 이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용산이 아니라 청와대에 있었으면 드론을 잡을 수 있었다며 현상을 오도한다. 심지어 어떤 정치 집단은 북한으로 드론을 날린 우리의 보복 작전이 정전 협정 위반이라고 맹비난한다. 대한민국보다 북한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보일 법한 반응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2022년 말 북한 드론이 서울을 휘젓고 간 뒤의 풍경이다.

어수선한 풍경 속에서 소문만 무성하던 간첩단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국 규모의 제주 간첩단 ‘ㅎㄱㅎ’에 이어 창원과 전주 등에서도 간첩단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 공작조와 제3국에서 접촉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령문을 온라인으로 수령하는 등 간첩 행위의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해당 조직들은 자신들은 시민단체로서 고유의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적이 공개적으로 허용되는 사회

이렇듯 내 나라의 이익과 안전보다 북한이 중요하여 그들을 위해 움직이는 행위는 이적(利敵)이다. 만에 하나 북한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북핵 개발을 옹호한다거나 그에 따른 대북 제재를 반대하고 위반하거나 북한 독재 정권을 비호하는 행위는 모두 이적이다. 이를 넘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내 사정을 정탐하여 적에게 이로운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적에게 유리한 국면을 적극적으로 만든다면 이는 이적을 넘은 간첩 행위다. 문제는 이러한 자발적인 이적 행위와 간첩 행위가 정치적인 신념이나 성향이라는 핑계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허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군부 독재와 언론 통제라는 어두운 역사로 인해,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위해 다양한 의견이 허용돼야 한다는 강한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다양성이라는 틈을 이용하여 북한은 꾸준히 대남 공작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시민의식은 매우 높아졌으며, 체제 경쟁에서라면 이미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는 주장은 안보의 기본을 망각한 이야기다. 적국은 물론 심지어 우방국 간에도 간첩을 보내 정보를 수집한다. 그렇기에 간첩을 막는 방첩 활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가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안보 활동이다. 그렇기에 방첩 활동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간첩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며, 과거 관련자들은 처벌받았다. 한편 방첩 활동을 북풍으로 포장해 적의 간첩 행위를 허용하는 일은 국가 안보에 구멍을 내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이자 반역에 가까운 행위다. 특히 소위 민주화 세대는 북풍이니 종북몰이니 하면서 이적 행위를 지적하는 일 자체를 금기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틈새는 북한에는 최고의 첩보 활동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은 시민단체나 사회단체로 위장하여 북풍과 종북몰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방패삼아 간첩 활동을 벌이는 데 최적의 조건을 만들었다.


적의 인지전에 휘말린 이전 정권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진정한 안보 위기 원인은 드론이 아니라 바로 안보 불감증이다. 드론 사태의 본질도 결국 준비 태세의 문제다. 사실 전 세계 어디에도 소형 드론에 대해 철저한 대책을 세운 나라는 아직 없다. 헤즈볼라와 하마스 그리고 이란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는 이스라엘은 드론의 위협이 상당하다.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드론을 격추시킨 적이 있지만, 2022년 3월에는 소형 드론이 침범하자 요격하지 못했다.

우리 군은 이미 2014년부터 북한 드론 사태를 인지하고 심지어 적 기체의 샘플까지 확보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어 드론 탐지가 가능하다는 국지방공레이더가 배치되었고, 드론을 격추하기 위한 K재머나 레이저가 개발 중이다. 그러나 막상 적 드론 공격을 모의한 실전적인 대침투 연습은 그간 실시되지 않았다. 9·19 군사합의가 어느 정도 추동력을 갖던 시기는 그렇다손 쳐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합의가 사실상 깨어진 이후에도 지난 정권은 그 무엇 하나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안보관이 무너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응 당시 지휘 통제의 혼란이다. 최초 북한 드론이 침투하고 30분 만에 적 드론으로 판정을 내렸지만, 탐지한 1군단과 수도방위사령부 간에 서로 제대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드론 침투 경보인 ‘두루미’ 경보는 영공 침범 90분 만에 이미 적기가 수도권을 휘젓고 있을 때 발령됐다. 공군과 육군의 대응이 서로 혼재되는 가운데 KA-1 경공격기가 추락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무엇보다도 북한 드론의 서울비행금지구역 침범 사실은 즉각적으로 보고되지 못했다. 지난 정권 당시 안보 불감의 관성이 그대로 남은 결과다.

당연히 대통령은 분노했고, 대통령실에서는 대대적인 책임이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정권의 과오까지 현재 군 지휘부에 묻는 것은 타당치 않다. 또한 애초에 북한의 드론 공세는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군 수뇌부 교체는 오히려 대적 의지의 감소를 가져올 우려가 더 크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은 일단 군 지휘부에 신뢰를 보내고 철저한 대비를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핵무장 발언? 본질은 꺾임 없는 대적 태세

필자는 전문가 패널 자격으로 2023년 외교부·국방부 대통령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불과 7개월의 기간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윤석열 정부가 이뤄낸 성과는 상당하다. 특히 국방에서는 북한의 위협을 똑바로 인식하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의 뼈대를 세웠다.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야말로 정부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분야라고 평가하며 계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독려했다.

외교부·국방부 장관의 업무보고가 끝난 뒤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외교와 국방에서 각 현안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북한의 경제·인권·사이버 범죄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했다. 필자는 북핵에 관한 현안 토론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핵 공유를 넘어 핵무장론까지 나오는 것은 확장 억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담긴 것임을 지적했다. 또한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노(NO)’ 발언처럼 한·미 확장 억제의 신뢰성이 흔들리는 듯 보여서는 안 되며, 국민에게 정책 세부를 정확히 알려야 함을 상기했다. 국방부는 한·미 간 이견은 없으며 정책을 잘 알리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정리 발언에서 국방에 관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선 훈련도 훈련이지만 실전적인 연습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실전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전체 과정을 숙련하여 실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연습하라는 것이다. 또한 정신 무장을 강조했다. 지난 정권 동안 대적 태세가 취약해진 것도 결국 정신 전력이 약화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드론 사건 등의 실책에 대한 간접적 질책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주목했듯이 대통령은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 이후 최초로 핵무장론을 거론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의 맹비난과는 달리, 대통령의 발언은 당장 내일부터 핵무장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상식적이고도 지당한 발언이었다. 즉 북핵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하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어떤 정부에서도 꺼낼 수 없었던 발언이며, 특히 북한에 굴종하는 정치 집단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밝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국가 수호의 의지 표명이었다. 북한과 종북 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강 대 강 대결도, 호전적인 접근도 아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독재자의 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라는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에 대한 우렁찬 대답이다. 나라를 지키자는 우렁찬 목소리에 한 줌의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