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유가를 잡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유럽과 이스라엘 출장 일정에 덧붙여서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순방 일정을 추가했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의 유력 반체제 인사 암살에 대응해 사우디를 ‘왕따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최근 유가 급등을 좌시할 수 없었고 러시아 제재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마저 커지며 사우디와 관계 재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해 “(이번 방문은) 도덕적 분노에 대한 현실 정치의 승리를 의미한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모스크바의 석유를 대체하고 세계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른 에너지 생산국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로부터 유가 억제를 위한 원유 증산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을 해야 했다. ‘제2의 오일쇼크’ 재현 가능성 공포에 바이든은 인권이라는 명분을 버렸지만, 실익을 얻지 못한 것이다. 바이든뿐 아니라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해온 유럽의 딜레마도 지속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에서 벗어나려 금수조치를 추진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지속 불가능한 수준까지 계속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고, 이에 따른 공급 부족은 유럽에서 배급제를 포함한 극단적인 정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필자는 “오늘날의 위기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그치지 않기에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면서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현재의 위기는 석유에만 국한되지 않고 에너지 전반에 걸쳐 공포가 엄습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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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예긴S&P 글로벌 부회장 전 IHS Markit 부회장,퓰리처상 수상작 ‘황금의 샘(The PRIZE, 1992)’ 저자
대니얼 예긴S&P 글로벌 부회장 전 IHS Markit 부회장,퓰리처상 수상작 ‘황금의 샘(The PRIZE, 1992)’ 저자

오늘날의 에너지 충격은 1970년대 ① 오일쇼크 위기의 단순 재현일까, 그 이상일까. 소비자 체감의 에너지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고, 에너지 수급 불안감까지 겹치며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과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야기하는 크고 작은 문제 해결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오늘날의 에너지 충격은 50여 년 전 ‘오일쇼크’보다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본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위기는 석유에만 국한되지 않고 에너지 전반에 걸쳐 공포가 엄습할 수 있다. 당시엔 석유만 관련된 문제였지만, 지금은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까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것 외에도 오늘날의 에너지 위기는 글로벌 시장의 패권 분열을 일으키고 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어 경제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더해지면서 수급 불안정까지 겹쳐 세계 강대국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경기 회복이 시작되면서 예상보다 빨리 에너지 수요가 늘어난 반면 중국발 석탄 부족으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시작됐고,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의 수급마저 불안정해지자 기타 에너지 가격도 연쇄적으로 급등했다. 에너지 가격이 올랐을 때 러시아 등 에너지 수출국은 유럽 같은 주요 수입국에 계약한 최소 물량 이상을 팔아 이윤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당시에 우리는 러시아가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도록 조장한다고 봤지만, 사실상 크렘린 궁(러시아)은 미리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럽이 전체 원유와 천연가스의 35~40%를 러시아산에 의존하기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유럽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암담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 5가지 요인이 현재의 에너지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로는 러시아가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통해 독일에 공급하는 가스를 평소 전체 공급능력(1억6000만㎥)의 40% 수준으로 줄인 데 이어 다시 절반인 20%(3300만㎥)로 감축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 조처는 7월 27일 오전 4시(현지시각)부터 시행됐다. 푸틴은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의 목을 조였다 놓았다 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유럽 국가들이 돌아올 겨울에 쓸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을 막고,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경제적 고난과 정치적 불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현 상황에서 독일은 ② 가스 배급제를 고민 중이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유럽이 현재 에너지 위기로 유발된 경제적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2008년 금융위기 때 발생한 리먼 사태식의 연쇄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에너지 이외에도 희소 가스 수출 제한을 통해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희소 가스는 아르곤·헬륨·네온 등 자연 상태에 극미량만 존재하는 원소로 이뤄진 가스를 뜻한다. 이 중 네온 가스는 반도체 제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네온 가스 공급량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란과 새로운 핵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는 뜻은 이란산 원유가 국제 시장에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와 같다. 세 번째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으로 사우디산 원유 생산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추가 생산할 수 있는 원유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필자가 기고한 이후 이뤄진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에서 원유 증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네 번째, 중국의 강력한 ③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의 원유 수요가 상당히 줄어들었으나 중국이 점차 이 제한을 풀면서 원유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유 시장뿐 아니라 가솔린, 디젤, 비행기 연료(원유 정제) 부문의 수급도 불안정하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 정제 시설은 이미 생산능력의 95%를 가동 중이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갈 수는 없다. 중국 정제 시설은 생산능력의 70%만 가동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요인은 없을까. 아직 원유 생산을 늘릴 수 있는 국가들이 있다고 본다. 캐나다는 미국, 사우디, 러시아 다음으로 큰 원유 생산국으로, 미국과 협력해 원유를 추가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성장세 둔화도 에너지 수요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미국의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가 절정에 달했던 2020년 7월 이후 24개월 만에 최저치인 52.3으로 잠정 집계됐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이상이면 확장을, 이하면 위축을 각각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경제 성장률도 16개월 만에 최저치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런 경제 성장 둔화는 오히려 수요를 줄여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향후 6개월이 유럽에는 다가올 겨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시험할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하벡 독일 부총리가 “쓰지만 필요한 결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유럽은 석탄을 더 태워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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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973년 아랍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 정책이 만든 1차 오일쇼크와 1978년 이란 혁명 이후 발생한 2차 오일쇼크를 일컫는다. 모두 석유 공급 부족에 따른 국제 유가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다. 1차 오일쇼크의 경우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이집트와 사우디를 중심으로 리비아, 이라크, 이란 제국, 시리아, 튀니지가 손잡고 석유를 감산하는 동시에 원유 가격을 인상하면서 발생했다.

독일 규제기관인 BNetzA는 정부가 전국적인 가스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배급제를 시행하게 된다. 레저 시설의 가스 사용에 제한이 가해지고 기업들에 대한 가스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겠지만 일반 소비자와 병원 등 필수 공공 서비스는 최대한 보호를 받는다. 가스 공급의 3분의 1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독일은 연대 의식을 발휘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것을 국민에게 촉구하고 있다. 

델타,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에 이례적인 초강력 대응으로 중국이 취하고 있는 제로 코로나(Zero Corona) 정책은 단 한 건의 감염이라도 나오면 그 지역을 봉쇄하고 격리한다. 중국의 허약한 의료 인프라 탓에 코로나19 확산이 자칫 의료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대응책이지만 단기적인 경제 충격을 가져오고 있다.

대니얼 예긴

정리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보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