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하고 노동법도 진화한 만큼, 직장 내 조직문화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시대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이 변하고 노동법도 진화한 만큼, 직장 내 조직문화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시대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뭐 그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드나. 나는 더 한 것도 참고 견뎠다.”

20세기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해서 산전수전 겪어온 분들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에 와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이 언론에서 비중 있게 보도되고 거기에 언급된 회사들이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과거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없거나 덜했을까? 결코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노동법도 진화한 만큼, 직장 내 조직문화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시대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근로기준법에 들어와 시행된 것은 2019년 7월부터인데, 법 개정으로 2021년 10월부터는 사용자 및 친족의 직장 내 괴롭힘이나 사용자의 조치 의무(조사 의무, 피해 근로자에 대한 조치, 비밀 누설 금지) 위반에 대해 과태료가 신설되는 등 법적 규율이 강화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회사로서는 단지 과태료와 같은 행정벌 외에도 언론 보도에 따른 기업 이미지 실추, 특별근로감독의 대상이 될 가능성, 일정한 경우 형사처벌에 이를 수 있는 점 등도 염두에 두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신중히 다뤄야 한다.


무엇이 ‘직장 내 괴롭힘’인가

그런데 무엇이 직장 내 괴롭힘인지를 구분하기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법에 정의된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개념 요소별로 나눠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야 한다는 ‘우위성’ 요건이 필요하다. 즉, 피해 근로자가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운 개연성이 높은 상태가 인정돼야 하며, 행위자가 이러한 상태를 이용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지휘 명령 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경우를 말하나, 직접적인 지휘 명령 관계에 놓여있지 않더라도 회사 내 직위 직급 체계상 상위에 있음을 이용한다면 지위의 우위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감사·인사부서 등 업무의 직장 내 영향력, 정규직 여부 등의 요소 등을 고려해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 만약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둘째, ‘업무 관련성’이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사용자가 모든 직장 내 인간관계의 갈등상황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행위자가 피해자보다 우위성이 인정되더라도 문제 된 행위가 업무 관련성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필요하다. 다만, 여기에서 업무 관련성은 ‘포괄적인 업무 관련성’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므로, 직접적인 업무수행 중에서 발생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업무수행에 편승해 이뤄졌거나 업무수행을 빙자해 발생한 경우 업무 관련성이 인정 가능하다고 본다.

셋째,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문제 된 행위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① 그 행위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②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위 양태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하지 않다고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업무상 지시, 주의 명령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라도 그 행위가 사회 통념상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이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회 통념’이라는 것은 ‘사회 일반에 널리 퍼져 있는 공통된 사고방식’ 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념’ 정도로 정의된다. 신체적 폭행이나 협박, 폭언·욕설·험담 등 언어적 행위, 인간관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부탁의 수준을 넘어 행해지는 사적 용무 지시, 집단 따돌림 등 다양한 형태가 적정 범위를 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용자의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법에 따라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신고가 있는 경우 사용자가 해야 할 조치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실 확인을 위한 객관적인 조사가 요구된다. 보통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나 피해자를 먼저 상담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사건의 처리 방향을 정한다. 피해자가 행위자의 사과, 재발 방지 약속 등 당사자 간 합의를 원할 때는 약식 조사로 족한 예도 있지만, 상담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식 조사를 통해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요청한 경우 신속하게 조사 방향, 조사 범위, 조사 대상 등을 결정한다.

조사 순서는 ‘피해자→ 참고인→ 행위자’순으로 진행하고, 조사자는 공정성 등을 위해 2명 정도가 참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조사가 끝나면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사업주에게 보고하게 되는데, 행위자에 대한 조치와 관련해서는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 그 결과를 첨부하는 것이 좋다. 행위자가 고위 임원이거나 여타 사유로 객관적 조사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거나 로펌 등의 외부기관에 조사 자체를 의뢰하는 것도 공정성과 전문성을 보완하는 방법이다.

둘째, 피해 근로자 등에 대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조사 과정 중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의 요청 사항을 확인해 근무 장소 변경, 휴가 부여 등 조치를 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필요해 보이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 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 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 밖에도 피해자의 고충 완화를 지원하는 조치(심리상담 등)를 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셋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 행위자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됐으나 피해자가 행위자의 사과, 재발 방지 약속 등 당사자 간 합의를 원하는 경우, 사용자는 피해자의 요구안을 정리해 행위자에게 전달하고 행위자가 요구안을 받아들이면 요구안을 이행하고 사건을 종결할 수도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된 사안에서 피해자가 정식 조사를 통한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원하는 경우에는 사용자는 행위자에 대해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해 피해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넷째,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신고했거나 피해를 주장했음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근로자에 대해 해고처분을 한 사업주가 1심 재판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언론에 보도된 사례가 있다.

마지막으로, 비밀 누설 금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보통 조사자(위원)는 물론이고 피조사자로부터도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받는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조사한 사람, 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사람 및 그 밖에 조사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해당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 근로자 등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조사와 관련한 내용을 사용자에게 보고하거나 관계 기관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비단 노동법에 대한 컴플라이언스의 측면이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교육과 예방 활동, 모니터링 시스템 그리고 적절한 대응 프로세스 구축 모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