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코리포의 로고는 떨어져 있는 각각의 돌집이 모두 호텔임을 알 수 있게 디자인됐다. 사진 코리포
스위스 코리포의 로고는 떨어져 있는 각각의 돌집이 모두 호텔임을 알 수 있게 디자인됐다. 사진 코리포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도시재생은 선진국 대도시의 도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산업화가 도시 발전을 이끌던 시대, 개발하기 쉬운 도시 외곽 지역의 기능은 팽창하지만 기존 시가지는 쇠락하게 된다. 원래 도시재생은 쇠퇴한 구도심을 부흥시키는 것이었다. 대도시에 적용되던 개념이었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이 소도시와 작은 마을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도시재생은 도시 전체의 균형 회복이 목표이지만 소도시와 작은 마을의 도시재생은 목표 자체가 다르다. 마을이 사라질 수 있겠다는 공포심이 도시재생의 동기가 된다. 소도시나 작은 마을의 경우,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막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지역의 활력 감소의 대안을 찾는 것으로 재생 사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외지인이 많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도시 브랜딩의 외부 지향 목표가 도시재생의 목표와 같아진다. 도시 브랜딩에는 현재 사는 사람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내부 지향 목표도 있지만 다른 곳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하는 외부 지향 목표도 있다. 소도시나 작은 마을의 도시재생은 외부 지향 목표를 우선 달성하는 스몰타운 브랜딩과 결합하게 된다.

브랜드는 ‘특정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강렬하게 떠올리는 생각·연상·단어·문장·그림 등의 총합’이다. ‘이런 것을 떠올리도록 하겠다’며 목표로 삼은 것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브랜딩은 목표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전달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그래서 떠올리게 하고 싶은 것(브랜드 아이덴티티)을 잘 떠올릴 수 있도록 슬로건·로고 등을 만드는 것이다.

멀리 있는 작은 마을로 사람들이 애써 찾아오려면 ‘거기 하면 이거지’라는 강렬한 무언가가 떠올라야만 한다. 그래서 스몰타운 브랜딩은 목표 연상을 강력한 하나로 집중해야 한다. 브랜딩의 테마도 단순하게, 타깃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하여간 다 좁혀야 한다. 우선 좁혀야 나중에 넓어질 수 있다.

대도시는 ‘보편성’을 브랜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좁히면 배제되는 도시 구성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도시는 좁혀야 하기에 강렬한 테마를 선정할 수 있다. 좁혀야 한다는 제약 조건이 대도시에서는 주기 어려운 ‘신선한 개성(로컬리티)’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몰타운 브랜딩에는 거대 도시의 브랜딩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흩어져 있는 호텔, 스위스 코리포

코리포는 스위스의 작은 산골 마을로, 600년 역사를 지녀 역사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한 곳이다. 하지만 역사가 보존되는 지역이 그 땅에 사는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브랜딩을 시작할 무렵 코리포 인구는 단 12명, 평균 연령은 75세였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60여 개의 빈 건물은 무심히 방치돼 있었다.

코리포는 자신들의 자연 조건을 브랜딩 소재로 내세우기로 했다. 마을의 아담함, 600년이 넘은 돌집, 접근이 쉽지 않은 해발 558m의 위치 등 통제가 불가능한 조건을 오히려 ‘다른 곳에는 없는, 비(非)일상의 경험’을 충족시키는 곳으로 포지셔닝하기로 했다. 브랜딩의 테마는 트레킹·하이킹으로만 집중했다. 타깃도 좁혔다. 트레킹이나 하이킹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한정했다.

여기에 신의 한 수가 더해졌다. 트레킹·하이킹 애호가들도 밤에는 잠잘 곳이 필요하다. 코리포는 60여 개의 빈 건물을 호텔로 바꿨다. 호텔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호텔로 만든 것이다. 슬로건은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so)’라고 돼 있다. 분산된 호텔, 흩어져 있는 호텔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말이다. 이는 1980년대 초, 지진 이후 도시재생을 위해 마을의 집 여러 채를 객실이나 부대시설로 활용하는 이른바 ‘수평 호텔(Flat Hotel)’을 도입한 이탈리아의 카르니아에서 썼던 말이다.

2017년 9월 영국의 데일리메일(Daily mail)은 ‘아이가 없는 마을: 16명의 주민이 살고 그 대부분이 연금 수급자인 600년 된 스위스 마을이 생존을 위한 전투를 맞고 있다’라는 기사를 내면서 스몰타운 브랜딩으로 분투하고 있는 코리포를 부각했다. 이제 코리포는 트레킹과 하이킹의 성지가 됐다. 좁혔더니 성공한 것이다. 최근 들어 코리포는 색다른 숙박 경험을 즐기려는 여행객에게도 인기 높은 곳이 됐다. 좁혔더니 마침내 넓어진 것이다.


일본 유바리는 “돈은 없어도 사랑(no money but love)”이라는 독특한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사진 유바리
일본 유바리는 “돈은 없어도 사랑(no money but love)”이라는 독특한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사진 유바리

‘돈은 없어도 사랑’, 일본 유바리

유바리는 일본 홋카이도의 탄광 도시다. 석탄 산업의 쇠퇴는 도시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2007년에는 도시가 파산을 맞았다. 위기감에 휩싸인 유바리 사람들은 브랜딩을 통한 도시재생에 나섰다. ‘석탄’을 대체할 연상이 필요했기에 그들은 새로운 브랜드 에센스를 탐색했다.

결과는 심각했다. 특산품인 멜론 외에는 딱히 자랑거리가 없는 것이었다. 멜론만으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오게 만들기는 어렵다. 의성의 마늘이 유명하다고 서울 사는 사람이 의성까지 가서 마늘을 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민 끝에 그들은 특별한 통계 결과를 찾아냈다. 유바리는 ‘일본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도시’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를 근거로 유바리를 ‘사랑의 도시’로 브랜딩하기 시작했다. ‘돈은 없어도 사랑(no money but love)’이 슬로건으로 채택됐다. 캐릭터도 만들었다. 특산품인 멜론을 활용한 유바리 부부라는 뜻의 ‘유바리 후사이’라는 커플 캐릭터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스몰타운 브랜딩은 소재, 테마 그리고 타깃을 모두 좁히는 것이 핵심인데, 유바리는 타깃이 상대적으로 불명확하게 설정됐다.


미국의 스코틀랜드 넥은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을 도시 브랜딩의 테마로 정했다. 사진 스코틀랜드 넥
미국의 스코틀랜드 넥은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을 도시 브랜딩의 테마로 정했다. 사진 스코틀랜드 넥

아웃도어 천국, 스코틀랜드 넥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동부 내륙에 있는 스코틀랜드 넥(Scotland Neck)은 2000년대 초반에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넥의 인구는 불과 2400명. 그중 흑인 비중이 70%, 빈곤율은 32%에 육박하는 가난한 도시였다. 새로운 문을 열겠다는 염원을 담아 시작한 프로젝트의 이름은 ‘DOOR(Developing Our Own Resources)’였다.

스코틀랜드 넥은 어떻게 좁히면 사람들이 찾아올지를 고민했다. 그들은 브랜딩의 테마를 ‘아웃도어’로 집중했다. 브랜드 슬로건은 ‘An Outdoor Paradise’로 정했다. 가장 강렬한 아웃도어 활동은 사냥이다. 스코틀랜드 넥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사냥 가이드’를 제공했다. 디어 헌팅(deer hunting) 콘테스트도 시작했다.

그들은 자전거 여행에도 주목했다. 죽어 있던 시골길을 자전거 트랙으로 재개발했다. 현재 스코틀랜드 넥은 다양한 아웃도어 이벤트(Crepe Myrtle Festival, Classic Car Show)를 개최하는 곳으로 격상됐다. 아웃도어 활동 애호가들에게 유명한 곳이 됐다. 좁혔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