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지난해 12월 미국 증시는 여러 이유로 하락했다가 올해 들어 계속 상승세를 보인다. 다우지수는 지난해 12월 말 2만1800 수준에서 최근 2만6600 수준으로 올랐고, S&P500지수는 같은 기간 2300대에서 3000 수준에 근접했다. 나스닥지수는 6200에서 8100 수준으로 높아졌다. 여전히 증시 상승에 대해 긍정적 분위기가 많지만, 루비니 교수는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잠재돼 있기 때문에 증시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런 위험 요인이 발생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발생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도 했고, 여러 차례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제시해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얻은 루비니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증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스쿨 교수, IMF 학술자문위원회 자문위원, FRB 이코노미스트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스쿨 교수, IMF 학술자문위원회 자문위원, FRB 이코노미스트

금융시장은 우울증 환자 같은 사이클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은 그래 왔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에 따르는 리스크 선호적인 투자자가 강세장을 만들어내고, 그러면 거품이 끼게 되고, 때때로 노골적인 거품의 단계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어떤 부정적인 충격에 과민반응해서 너무 비관적이 되고 위험을 확산시켜 조정장이나 하락장으로 가게 된다.

2017년에 미국 등 세계 증시에서 주가가 크게 올랐다. 지난해인 2018년에 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작년 4분기에는 완전히 침체됐다. 이 같은 위험 회피 현상은 세계 경기 침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의 금리 인상과 양적긴축 지속 신호 등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1월 이후 다시 증시 랠리가 찾아왔다. 일부 고위층 자산 매니저들은 멜트-다운(melt-down)의 반대인 ① 멜트-업(melt-up) 시장을 예상하고 있다. 주가는 현재 높은 수준에서 계속 더 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위험 선호 사이클이 올해 내내 지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중국에서 성장률이 안정화하고 있다. 추가적인 거시경제 부양책 덕분이긴 하지만 경착륙(hard-landing)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역전쟁이 더 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합의에 곧 도달할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 미국과 세계 경제 성장률이 어느 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 협상 시한을 10월 31일로 연장함에 따라 하드 브렉시트의 혼란도 피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각국 중앙은행들(특히 미 연준)이 지난해 말에 위험 회피적 성향을 만들어 낸 ② 금융 긴축 정책을 되돌린 데서 보듯이 다시 수퍼-비둘기파가 됐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미국의 대통령 탄핵 가능성이 뮬러 특검보고서 발표로 크게 낮아졌다. 뮬러 특검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러시아와 공모 혐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지금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수사는 끝났고, 트럼프 대통령은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불안정한 멘트나 트윗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증시 상승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이게 다시 시장 가치를 더 높이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질 수 있다.

올해 남은 기간에 이 같은 진전이 순탄하게 이뤄질 수도 있지만,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긍정적인 잠재력은 이미 시장에 반영됐지만, 다른 요인들이 또 하나의 위험 회피 현상을 촉발할 수도 있다.

첫째, 각국 주식시장(특히 미국 증시)에서 주가수익비율(PER)이 높다. 이는 별것 아닌 부정적 충격조차도 조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 미국 기업들의 수익 마진은 이미 너무 높기 때문에 올해 성장률이 2% 수준일 경우 ③ 구인난을 겪고 있는 노동 시장 때문에 생산 비용이 증가해 수익이 떨어질 수 있다.

둘째, 미국 기업 부채의 규모·구성과 관련한 리스크가 커졌다. 사모펀드나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피인수 업체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레버리지론’이나 고위험 정크본드 그리고 투자 등급에서 정크 수준으로 떨어진 ‘추락한 천사’ 회사가 널려 있다. 게다가 상업 부동산 부문은 과잉 공급 부담을 겪고 있다. 부동산 개발 업자들이 과잉 개발을 했고 전자상거래 규모가 늘면서 오프라인 소매 매장의 매출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 둔화의 어떤 신호가 보이면 미국뿐 아니라 달러화 표시 부채 비중이 높은 이머징마켓에서도 차입이 많은 회사는 금융 비용이 갑자기 증가할 수 있다.

셋째, 미국 경제 성장이 지속된다면, 시장에서는 연준의 비둘기파적 성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증명될 것이다. 연준이 갑작스럽게 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증시가 조정될 수도 있다.

넷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해결에 대한 희망이 잘못된 전망일 가능성이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양국이 상대의 약속 이행을 의심할 경우 분쟁은 다시 고조될 것이다. 또 미국 의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비준하지 않거나 트럼프가 유럽 자동차에 대한 수입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다른 무역 긴장이 터져버릴 수도 있다.

다섯째, 유럽 경제가 매우 불안하다. 다가오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퓰리스트 정당이 득세하거나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또는 경제적 위기가 벌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유럽 선진국들이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유로존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확장적 통화·재정 정책이 강요되거나 유로존 통합이 정체되는 상황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섯째, 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터키·이란·베네수엘라 등 많은 이머징마켓 경제가 정치·정책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중국의 최근 경기 부양책은 이미 부채가 과도한 중국 기업에 추가 부담을 주면서 금융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이 같은 경기 부양책은 중국의 성장률을 높이는 데도 충분하지 않다.

일곱째, 트럼프 대통령은 뮬러 특검보고서 결과에 대해 신중한 방식이 아니라 고함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위해 그는 민주당과 싸움에 전념할 수 있고, 기습적으로 새로운 무역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으며,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④ 연준 이사회에 자격 없는 정실 인사를 추가 임명할 수 있다. 또는 정부 부채 한도나 이민 정책 문제 때문에 다시 정부 셧다운을 촉발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처럼 이란이나 베네수엘라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여덟째, 여전히 세계 잠재 성장률이 낮다. 높은 개인·공공 부채, 심화하는 불평등, 고조되는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새로운 평범(new mediocre·세계 경제가 평균 이하의 저성장 국면에 빠지는 것)’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화, 무역, 이민, 기술에 대한 포퓰리스트의 반발이 확산하면서 결과적으로 성장과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자의 증시에 대한 사랑은 올해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덕스럽고 불안한 관계일 것이다. 실망감이 급격한 시장 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일어날지 말지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다.


Tip

멜트-업은 투자자가 증시에 비정상적으로 몰려 증시가 단기 급등하는 것을 뜻한다. 폭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해 버리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더 널리 쓰이는 멜트-다운, 즉 투자자의 집단 이탈로 증시가 와해되는 현상의 반대 개념이다. 멜트-다운은 원전의 노심이 녹아내리면서 대재앙이 벌어지는 것에서 따온 것이다.
멜트-업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는 과잉 유동성으로 갈 곳을 잃은 자금이 시중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지목된다. 추가 상승 기조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후발 투자자가 계속 주식을 사들이면서 오름세가 증폭되고, 조정다운 조정이 없는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일이 나타나는 것.
멜트-업은 2010년부터 미국 월가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모건스탠리의 한 임원은 “2011년 말이면 주가가 상당히 올라갈 것”이라며 “멜트-업이 다가오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연준은 지난해 말부터 금융 긴축 신호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올해 기준금리를 동결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동시에, 시중의 달러화 자금을 흡수하는 보유 자산 축소 정책도 9월 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준은 미국 경제에 대해 고용 시장은 양호하나 경기 성장세가 둔화했고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낮다며 통화 정책 결정 시 ‘인내심’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완벽하게 접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 3월 미국 실업률은 전달과 같은 3.8%를 유지했다. 지난해 9~11월 미국 실업률은 1969년 이후 최저인 3.7%를 기록했다. 이같이 실업률이 낮고 노동 수요가 많기 때문에 고용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이사 후보로 트럼프 사람으로 꼽히는 허먼 케인과 스티븐 무어를 지명했다. 하지만 허먼 케인은 2012년 미 대선에 출마했다가 성희롱과 간통 문제로 낙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4월 22일(현지시각) 연준 이사 후보 자리에서 사퇴했다. 보수 성향의 논평가 스티븐 무어 역시 2000년대 초에 쓴 여성 비하 칼럼과 지난해 초 세금 미납에 따른 유치권 설정 등이 문제가 돼 연준 이사 지명이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