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버블 사건을 주도한 존 로. 사진 셔터스톡
미시시피 버블 사건을 주도한 존 로. 사진 셔터스톡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미시시피 버블은 네덜란드 튤립 버블, 영국의 남해 버블과 함께 근대 3대 버블로 불린다. 18세기 루이 15세가 집권하던 프랑스 정부에서 통화 증발과 국영기업 미시시피 회사(Mississipi Company)의 주식 가격 인상으로 정부의 부채를 갚고 경제를 활성화했으나 지나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버블이 꺼지면서 정부 재정과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사건이다.

이 사건을 주도한 인물은 존 로(John Law)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은행가이자 경제학자다. 그는 물질 화폐인 금과 은을 기반으로 한 통화제도를 지폐 중심 화폐로 전환하는 것의 이점을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5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필리프 2세가 섭정하고 있었다. 선왕 루이 14세는 정부의 연간 재정 수입 1억4500만리브르의 20배가 넘는 30억리브르에 달하는 부채를 남겨 정부 재정으로는 이자도 갚기 어려웠다. 필리프 2세와 연이 닿은 존 로는 정부가 보증하는 지폐를 발행하면 정부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그를 설득해 은행 설립 승낙을 받아냈고, ‘방크 제너럴 프리베(Banque Generale Privee)’를 세웠다. 이 은행은 저축과 대출 외에 화폐 발행 기능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었다.

금 태환 통화체제를 지폐 기반 통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신뢰가 필요했다. 존 로는 프랑스령이던 미국 중부 미시시피 주변 루이지애나에 엄청난 황금이 매장돼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이 지역 개발 계획을 알려 지폐에 대한 신뢰를 갖게 했다. 정부 세금을 이 은행이 발행한 지폐로만 납부할 수 있게 해 화폐 수요도 창출했다. 존 로의 화폐 발행은 시뇨리지(seignorage·화폐 주조로 인한 이득)를 통한 재정 조달로 국가 부도 위기를 막았고 금융 확대로 인한 경제 활성화를 가져왔다. 

지금의 재무장관 격인 재무총감에 임명된 존 로는 루이지애나 지역 개발을 위한 기업을 설립해 국가 부채를 갚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는 미시시피 회사 경영권을 획득해 서방 회사(Compagnie d’Occident)로 고치고 정부로부터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의 독점 개발권과 무역권을 얻어냈다. 이 회사의 주식은 신대륙 개발의 막대한 수익에 대한 기대와 왕실의 지원 등을 배경으로 하루가 멀게 가격이 치솟았다. 국채나 은행권으로 주식 매입이 가능하게 해 왕실은 국채의 대부분을 회수했고 막대한 부채 부담을 털어냈다. 왕실이 이 회사를 국유화하고 더 많은 화폐를 찍어내자 1718년 500리브르였던 주가는 1719년 2만리브르까지 치솟았다. 

통화량 증가로 물가가 급등하고 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국민은 화폐를 금이나 은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금 보유량은 화폐 발행액의 2%밖에 없었고 미시시피 지역 금 생산도 확대하기 어렵다는 소문까지 퍼지자 화폐 가치와 주가는 폭락했고 버블은 붕괴했다. 통화체제가 무너지고 경제 불황을 맞으면서 결국 이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가 됐다.

존 로가 시도했던 중앙은행제도와 통화정책은 최악의 버블 사태를 초래하긴 했지만 불태환 화폐의 발행과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등의 개념을 도입해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활용하는 통화정책의 기초가 됐다. 당시와 다른 것은 지금 대부분 정부는 통화량 조절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막기 위해 각국은 적극적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경제 정상화에 따라 이제 각국은 인플레이션 저지에 나서고 있다. 국제 통화를 공급하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한 번에 0.75 %포인트씩 이자율을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거듭 시행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 침체 충격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기 방어 사이에서 확실한 우선순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애매한 정책 방향이 환율 급등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존 로의 성공과 실패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