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지난 8월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 사례다. IRA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확대하기 위해 7400억달러(약 1070조7800억원)의 재원을 기후 변화 대응 등에 쓰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 법안의 실상은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위한 도구라는 해석이 나온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IRA가 그대로 시행되면 한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단 하나의 친환경차 모델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돼 관련 산업계를 비롯한 정계에서도 이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9월 27일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 참석차 방문한 도쿄에서 한덕수 총리와 만나 “한국 전기차 생산이 미국 내에서 시작되기 전까지 과도 기간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한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 지속해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직후 연간 약 6000억 달러(약 868조2000억원) 규모의 연방정부 조달에서 미국산 구매 비중을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으며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품목의 미국 내 공급망 확보를 강조했다. 이 후속 조치로 지난해 7월에는 연방정부 조달에서 미국산 비중을 높이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이나 한국 등 동맹에 부과한 관세를 “무모하다” “재앙적이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었지만, 이를 철회하지도 않았다. 일각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기조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필자는 이 같은 바이든 행정부의 이중적 행보를 사례별로 지적하고 달라질 것을 촉구한다.
윤석열(가운데) 대통령과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시각)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가운데) 대통령과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시각)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앤 크루거미국 경제학회 회장 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 대학원 교수, 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전 국제통화기금(IMF) 및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앤 크루거미국 경제학회 회장 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 대학원 교수, 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전 국제통화기금(IMF) 및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요 국내외 정책 목표와 행정부 무역 정책 사이의 모순이 커지고 있다. 임기 중반에 접어든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 의제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진정시키고, 빈곤을 퇴치하고, 생산성과 성장을 유지할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 정책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 외교 정책 목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동맹국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초당적 합의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캐나다산(産) 목재에 부과하는 관세를 인상하고, 더 엄격한 ①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HO) 의무와 충돌하고 미국 동맹국에 피해를 주는 무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정책들은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악으로 치솟은 시기에 비용과 가격을 낮추기는커녕 더 인상시켰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E)는 정책 보고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과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없애면 소비자 물가를 1.3%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태양광 패널 정책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모순을 확인할 수 있다.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태양전지를 대규모로 생산해 태양광 패널 제조 시 이를 내장한 후 설치해야 한다.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입산 태양광 패널에 30% 관세를 부과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미국 제조업과 ‘좋은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 정책을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경론자들과 태양광 패널 관련 업계에서는 2019년 기준 태양광 산업계에서 25만 명을 고용했는데, 태양광 패널 제조 인력이 3만4000명에 그친 반면, 설치 업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정책 유지를 반대했다. 더욱이 2019년 미국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약 80%와 태양전지 대부분이 수입됐는데, 이는 미국이 (태양광 패널의) 자국 내 생산 능력을 키우더라도 여전히 태양광 산업이 수입에 의존할 것을 시사한다. 즉, 완전한 ‘태양광 자급자족’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태양광 패널 생산 업체들은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에 그들은 자신의 사업체를 보호해주길 요구했고, 이는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와 상충한다. 다만, 다행히도 지난여름 바이든 행정부는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태양광 패널에 대한 관세를 없앴고,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수입하는 태양광 패널에 대한 관세 부과를 2년간 미루기로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호주의를 수용하기보다 태양광 패널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친환경, 인플레이션 감축, 고용 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미국이 태양전지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가 부족한 것을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에너지) 국가 안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불일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②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태도다. CPTPP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11개 환태평양 국가와 맺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한 이후 일본 주도로 형성한 거대 경제 동맹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결과 미국 수출업체들은 CPTPP 회원국 시장에서 회원국 면세품과 경쟁해야 한다. 또 이들 국가는 대부분 미국 동맹국이다. 때문에 궁극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엄격한 이민 제한 또한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정책 목표와 어긋난다. 일례로 숙련 기술자 비자 부족 문제는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R&D)을 제한하고 있다. 관련 업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로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숙련 기술자의 이주를 제한하는 미국의 장벽은 결국 반도체 생산·개발 가속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외식 업계 등도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 다른 예시로 바이든 행정부는 철도 노조의 파업에 대응해 물자 수송 대안을 찾아야 했을 당시 미국 해안에서 외국 선박의 물자 수송을 금지하는 ③ 존스 법(Jones Act)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지도 않았다. 존스 법은 미국 해안의 선박 사용을 제한하고 자국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존스 법을 철회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는 운송비, 항만 혼잡, 인플레이션 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면서 트럭과 철도를 통한 물자 수송을 수상 수송으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경제는 강력하며, 경쟁을 통해 번성한다. 정책 입안자가 패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면 오히려 미국 경제를 약화시킨다. 더 나은 미국과 세계 경제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CPTPP에 가입하고 이민 제한을 완화해야 하며, 필요 시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 생산 업계를 위한 보조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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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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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자국 물자 우선 구매 정책으로, 1933년 대공황 때 미국 정부에 미국산 제품만을 쓰도록 했던 ‘BAA 법(Buy American Act)’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최근 미국은 금융·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 시 미국산 철강 등 미국산 제품만을 써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경기부양법안에 넣어 논란을 낳았다.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일본, 캐나다, 호주, 브루나이, 싱가포르, 멕시코, 베트남, 뉴질랜드,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기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빠지면서 환태평양 국가 간 경제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2018년 12월 30일 발효했다. 다양한 분야의 제품에 대한 역내 관세를 전면 철폐하는 것을 주요 원칙으로, 전자상거래에서 역내 데이터 거래 촉진,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관세 부과 금지, 금융 서비스와 외국 자본 투자에 대한 규제 완화, 고급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등 내용을 담았다.

미국 내 연안 운송 관련 국내법. 미국 내 연안 운송을 미국이 소유·등록·건조한 선박, 미국인이 승선한 선박에 한정 허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국가 간 무역 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앤 크루거

정리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보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