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9월 14일(이하 현지시각)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9월 둘째 주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2020년 3월 이후로 가장 적었다”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낼 위치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끝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WHO에 따르면 10월 첫째 주 기준 290만 명이 코로나19에 새로 감염됐는데, 이는 전주보다 6%가량 감소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코로나19 신규 사망자 수는 12% 줄어든 8300명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재유행 감소세가 지속하는 모양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 위험도는 10월 첫째 주까지 3주 연속 ‘낮음’을 유지하고 있다. 또 확진자 1명이 주변 사람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감염재생산지수는 7주 연속 1 미만을 이어 가고 있다. 이는 유행이 억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 코로나19 재유행과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전 같은 대유행은 없을 것이란 게 WHO의 설명이다. 이처럼 코로나19의 확산과 중증화를 억제한 데는 백신 공동 분배를 위해 출범한 ‘코백스’의 역할이 컸다.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10월 10일 기준 전 세계 인구의 68.2%가 코로나19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가 2021년 2월 처음으로 도입한 화이자 백신도 코백스를 통해 공급받은 물량이었다. 필자는 코백스 같은 국제 공조 프로그램을 활용해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글로벌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저소득 국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도 코백스의 모델이 적합하다며 신속히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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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누엘 바로소전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위원장 현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전 포르투갈 총리
호세 마누엘 바로소전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위원장 현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전 포르투갈 총리

2년 반 동안 이어진 도시 봉쇄와 자가 격리, 마스크 의무 착용 끝에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이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일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코로나19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올가을 직면할 대유행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코로나19가 조만간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팬데믹 이전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팬데믹 이전의 세계는 감염병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위기에 굉장히 취약했다. 만약 우리가 감염병 종식만을 유일한 목표로 여긴다면, 팬데믹 이후 사회도 과거처럼 위기에 위태로울 게 분명하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전조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는 중에도,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년 2%씩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팬데믹은 기후 위기, 전쟁, 식량 부족 등 글로벌 경제·사회 시스템을 뒤흔들 여러 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는 아직 위기에 맞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사태를 통해 사회 취약 계층이 제일 먼저 위기에 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약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장치가 없다면, 새로운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세계 최빈국이 도움 받는 것은 가장 마지막 순서가 될 것이다.

다행히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전 세계 지도자들은 저소득 국가들이 백신을 먼저 공급받을 수 있게 애썼다.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국제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① 코백스(COVAX)가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이유였다. 코백스는 전 세계 146개국에 코로나19 백신 17억5000만 도즈(1회 접종분)를 전달했는데, 이 중 15억 도즈가 92개 저소득 국가로 갔다. 2022년 1월까지 저소득 국가들의 백신 접종률이 20%가 넘을 수 있었던 것도 코백스 덕분이었다. 


만약 다시 한 번 전 지구적 위기가 닥친다면, 우리는 더 빠르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저소득 국가들이 자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각종 보호 장치에 자금 지원이 충분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국제적 대응책을 찾는 것은 사고방식을 바꿔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미래의 팬데믹에 대비하는 법을 준비하고 있지만, 저소득 국가에 어떻게 백신을 전달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백스 같은 프로그램이 저소득 국가를 지원하는 데 적합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코백스는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저소득 국가의 고령층 63%와 의료 종사자 73%가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저소득 국가들이 공급받은 백신의 76%가 코백스를 통해 전달받은 것이었다. 만약 코백스가 없었다면 수억 명의 사람이 고통받았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은 코백스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설립돼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았다면,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란 점이다. 물론 코백스가 모든 종류의 위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일례로 스트라이프, 알파벳, 쇼피파이, 메타(옛 페이스북) 등 민간 기업들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코백스의 ② AMC (Advance Market Commitment·선구매 공약) 모델을 기반으로 한 ③ 프런티어(Frontier)에 거액을 투자한 바 있다. 

미래의 글로벌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준비하든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다음 재난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를 준비하는 게 우리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돼야 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국제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를 말한다. 코로나19 백신을 각국의 경제 수준과 관계없이 빠르고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2020년 4월 출범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가비), WHO, 감염병혁신연합(CEPI) 등이 공동 운영한다. 한국을 포함해 190개국이 가입했다. 백신을 구입하고 싶은 국가들이 함께 제약 회사들과 대량으로 구매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구매력을 앞세워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여러 제약사와 접촉해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코백스의 한 축인 AMC는 선진국들이 기부한 자금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국가들에 백신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구매 방식이란 AMC의 뜻처럼 제약사들과 계약을 통해 사전에 백신 물량을 확보한 뒤, WHO로부터 사용 승인이 나오는 대로 대금을 지급해 저소득 국가들에 백신을 공급한다. 북한,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9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원 대상이다.

스트라이프, 알파벳, 쇼피파이, 메타 등의 민간 기업들이 CDR(Carbon Dioxide Removal·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2022년 4월 출범한 프로젝트다. AMC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지금까지 9억2500만달러(약 1조3477억원)의 자금을 모집했다. 프런티어는 이 자금을 CDR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들에 투자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