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대종상영화제 포스터. 사진 대종상영화제
제58회 대종상영화제 포스터. 사진 대종상영화제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힘 있는 브랜드를 우리는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구축된 브랜드라고 표현한다. 브랜드 분야의 세계적 석학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는 브랜드 자산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지, 연상, 지각된 품질, 충성도를 꼽았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브랜드가 힘이 세지려면 ‘안다, 들어 봤다→강력하게 떠오르는 게 있다→왠지 좋아 보인다→고집하게 된다’의 순차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출발은 인지와 연상이다. 브랜드 자산의 구성 요소는 학자마다 다르게 정의되지만 ‘인지도’와 ‘이미지’는 모든 이론에서 공통으로 거론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브랜드를 들어 봤는지, 알고 있는지, 떠올리는지를 알려주는 인지도와 사람들이 어떠한 연상을 통해 브랜드와 관계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이미지가 브랜드 자산의 두 가지 원천이다. 

아주 까다로운 브랜드 전략 작업은 브랜드 자산의 출발점이 되는 인지도에서 큰 문제가 없는 브랜드를 다시 살리는 작업이다.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다는 것은 대개 그 브랜드가 오래됐다는 얘기다. 누구나 이름을 아는 오래된 브랜드지만 강력한 연상이 없는 쇠락한 브랜드를 재활성화하는 것은 새로운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알지만 떠올리지는 못하는 브랜드, 들어 봤지만 특별한 이미지가 없는 브랜드를 ‘바로 떠올리는 브랜드’ ‘강력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브랜드’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오래됐으나 현재는 쇠락한 브랜드를 전통과 현재성을 겸비한 브랜드로 바꾸는 것, 레거시(legacy) 브랜드를 헤리티지(heritage)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다.



레거시와 헤리티지

브랜드에 있어 헤리티지란 오랜 세월 한 브랜드가 만들어 낸 탄탄한 유산을 말한다. ‘유산(遺産)’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헤리티지와 ‘레거시’가 있다. 유산이란 같은 뜻으로 해석되지만, 차이가 있다. 레거시는 ‘by will’ 즉 ‘유언에 의해’ 남겨진 재산이라는 뜻에서 ‘유산·유증(재산)’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헤리티지는 ‘출생으로 인해 누구에게 속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의 의사에 의해 그 상태(재산이든 문화적 유산이든)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5억원을 유산 받았다’고 할 때는 주로 레거시를 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때는 헤리티지가 맞는 말이다. 이처럼 레거시는 상대적으로 좀 더 물질적인 의미로 쓰인다.

중요한 차이는 또 있다. 레거시는 부정적 의미를 포괄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성은 있어도 현재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못 미치는 낡은 유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정보기술(IT) 용어로 레거시는 과거에 개발돼 현재에도 사용 중인 낡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일컫는다. ‘레거시 시스템’은 낡은 기술이나 방법론, 컴퓨터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현재까지도 남아 쓰이는 오래된 기술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쓰이지 않더라도 현재의 기술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포함한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낡은 걸림돌’의 의미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매체를 ‘레거시 미디어’라고 부르는 것도 일부 부정적 의미가 담긴 표현이다. 그러니 헤리티지 브랜드는 있어도 레거시 브랜드란 말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

제42회 청룡영화상 포스터. 사진 청룡영화상
제42회 청룡영화상 포스터. 사진 청룡영화상

대종상의 헤리티지 브랜딩

우리나라의 3대 영화상으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이 있다. 대종상은 3대 영화상 중에서는 역사가 깊지만, 헤리티지 브랜드는 되지 못했다. 외화 수입 이권을 둘러싼 잡음, 영화 단체들의 파벌 싸움, 공정성 시비 등 상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긴 세월이 이어지면서 3대 영화상 중 유일하게 ‘영화인’이 주관하는 시상식인 대종상은 부침을 거듭했다. 오히려 대종상보다 늦게 출발했고, 1974년부터 16년 동안은 시상식조차 없었던 청룡영화상의 위상이 더 높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년에는 57회 대종상 시상식이 열리지도 못했다. 굳이 구분하자면 대종상은 레거시 브랜드지 헤리티지 브랜드는 아니다. 

최근 대종상은 레거시 브랜드에서 헤리티지 브랜드로 혁신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춘사영화제 총감독을 맡았던 기획자 김우정이 대종상 총감독으로 오면서 많은 변화가 예고됐다. 몇몇 기사를 읽고 필자는 대종상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고 브랜드 재활성화에 양팔을 걷어붙인 총감독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브랜드를 재활성화하기 위해선 인지와 연상을 바꿔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브랜드를 새롭게 보게 해야 하고 강력한 새로운 연상을 떠올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단기간에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도록 스토리로 엮어야 한다. 재정비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화제성을 높이는 커뮤니케이션 모두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덴티티와 커뮤니케이션 모두 트렌드에 부합해야 한다.


재정비된 브랜드 아이덴티티, 브랜드 목적

김우정 총감독의 인터뷰에서 짐작된다. “대종상 트로피는 ‘에밀레종’, 성덕대왕 신종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대종상은 에밀레종의 종소리처럼, ‘영화를 세상 멀리멀리 퍼트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종상 영화제를 통해서 영화가 사회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이 결국 대종상의 헤리티지를 지키는 일이다.” 헤리티지 요소로 브랜드 이름의 의미를 부각하고 그것을 브랜드 목적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필자는 거기에 ‘울림’이라는 의미가 더해지기를 바란다. 종소리에는 울림이 있다. 깊은 울림이 있어야 소리도 퍼지는 법이다. 가장 울림이 있는 영화, 메시지가 깊게 울리는 영화, 한국적 정서에 기반한 울림이 큰 영화를 선정하고 널리 알리는 것을 브랜드 목적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화제성 높이는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경험은 브랜딩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기에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브랜드 경험 확산은 많은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목표가 되기 마련이다. 올해부터 대종상에는 국민 심사단이 구성된다.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신인상, 남우신인상 총 6개 부문 심사에 참여할 수 있다. 감독상이나 기술상 등은 특수 분야이기 때문에 영화 관련 전문가가 심사해야 하지만, 연기 분야는 대중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기 투표로 경도되지 않도록 국민 심사단과 전문 심사단의 점수 비율을 일대일로 맞춘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다. 국민 심사단을 모집할 때, NFT를 쓴다는 것이다. 대리 투표 논란 등에서 자유로운 방식을 찾다가 블록체인 기술과 NFT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NFT는 젊은층의 트렌드이기에 그들의 참여를 많이 끌어낼 좋은 수단으로 판단한 것이다. 전파성이 강한 젊은층을 많이 참여시켜 화제성을 제고하려는 남다른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