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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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국의 송(宋)나라 때 지어진 불교 서적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나오는 일화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영공(靈公)은 여인들이 남장하는 것을 보기 좋아해 궁정 내의 예쁜 여자들을 뽑아 남자 옷을 입고 다니도록 했다. 이런 취미가 궁정 밖에 알려지자 그 나라 여인들이 온통 남자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받은 영공은 남장을 금지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안자(晏子)라는 현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군주께서는 궁궐 안에서는 여인들의 남장을 허용하면서 궁 밖에서는 못 하게 하십니다. 이는 곧 문에는 소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후대에 소는 양으로, 말은 개로 바뀌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로 정착됐다. 겉으로는 좋은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실제 내용은 보잘것없거나 전혀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 대표가 이 사자성어로 여당 후보를 공격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2│소설가 전광용이 1962년 발표한 단편 소설 ‘꺼삐딴 리(이 대장·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비판한 현대소설)’는 변신의 귀재 의사 이인국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에 있던 그의 병원은 돈 많거나 일본인인 환자만을 우대하고, 철저한 친일로 처신했다. 해방 이후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돼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감방에서 이질 환자들을 치료하여 위기를 넘기며, 더 나아가 점령군 고위 장교의 얼굴 혹을 수술해주고 ‘꺼삐딴 리’라는 애칭도 얻게 된다. 이후 친소주의자가 되며 아들도 소련으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면서 이남으로 피난하고, 서울에서 큰 병원 원장으로 재기한다. 이번에는 친미주의자가 되며 미국 유학 간 딸이 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자 (당시 발급이 어려웠던) 미국행 비자를 받으려고 미 대사관 직원에게 뇌물을 바친다. 

#3│독일 대문호 괴테(Goethe)의 희곡 ‘파우스트’는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이 걸린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메피스토)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지옥으로 떨어지지만, 애인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줄거리다. 2001년 독일의 저널리스트 디르크 막스아이너는 ‘괴테의 메피스토의 법칙’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메피스토의 법칙’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모든 정책은 그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라는 뜻으로도 귀결된다. 예를 들자면 고용을 보장하려는 정책이 실업률을 높이는 경우다. 지난 정부에서 집값을 잡겠다고 총 27회의 부동산 안정책을 내놓았으나 오히려 집값이 거듭 폭등한 것도 그 대표적인 예로 추가돼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는 새 법이 제정됐다. 상·하원 모두에서 모든 민주당 당원은 찬성표를, 모든 공화당 당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양당이 법안 제정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했지만, 상원에서 1표 차이가 나며 간발의 차이로 통과됐다. 이 법안에는 기후 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 중에서 인플레이션 완화라는 법 이름에 직접적으로 부합되는 것은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시 주는 보조금과 가계에 대한 의료비 지원뿐이다. 이 법이 연방 재정적자를 줄여줘 장기적으로 시중금리 인하가 초래되고, 이 결과 기업 부담 등이 줄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다소 궁색한 주장도 있기는 하다. 또한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전기차가 북미에서 제조돼야 하며, 그 주요 부품인 배터리의 경우에도 중국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은 곳에서 제조되는 부품이 일정 비율 이하여야 한다는 것도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 법안의 내용은 인플레이션 감축보다는 중국에 대한 견제, 자국 기업 보호, 자국 내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 또는 강요 그리고 증세로 보인다. 

김경원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김경원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양두구육’과 ‘꺼삐딴 리’ 아른거리는 바이든 행보

이 법을 주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행정부의 의도와 기대에 따라 이 법에 대한 시각이 두 가지로 나뉠 수 있겠다. 법의 제목과 실질적인 내용이 다름을 알고도 이 법안을 추진했다면 전형적인 ‘양두구육’의 행태다. 증세와 보호무역, ‘중국 밟기’의 정책 의지를 인플레이션 감축이라는 명분으로 감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바이든의 변신도 눈에 띈다. 지난 대선 유세 중 트럼프 측은 중국 관련 사업에서 그의 아들이 특혜를 받아 큰돈을 벌었다는 의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개인적 친분 등 바이든의 여러 친중 행적을 문제 삼아 ‘베이징 바이든’ 등을 외치며 맹공을 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선 유세 중 바이든은 반중노선을 분명히 했고 지금까지도 그 기조를 유지해 오고 있다. 다분히 유권자들의 반중정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표를 의식하는 그의 행보는 한국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지난 방한(訪韓) 시에 여러 한국 기업들에 대미 투자를 약속받은 그는 수십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현대차의 정의선 회장에게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라고 공언을 했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에서 불리함이 예상되자 득표를 목적으로 이런 법안을 제정했고, 한국 기업들을 실망시키는 것을 넘어 ‘뒤통수를 쳤다’는 한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꺼삐딴 리’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이유다. 


의도와 다른 결과 나오는 ‘메피스토 법칙’

그런데 만약 인플레이션이 줄어들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국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 믿어 이 법안이 추진됐다면 어떨까. 이미 공화당이나 몇몇 언론 및 연구단체 등에서는 이 법이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값싼 중국산 배터리 재료를 금지하는 것은 전기차 생산 단가를 높일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조금이 중단될 경우 소비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미국의 국내외 기업들이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보다는 이 법안의 혜택이 적용되는 멕시코나 자원 확보 메리트가 있는 캐나다로 몰려들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런 규제를 받은 한국 등 주요 기업들이 이 법안의 상대적 피해를 볼 경우 이들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이를 틈 타 미국을 제외한 국제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약진을 허용해 중국 견제의 목적도 정반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또 보조금 지급으로 증세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는 훨씬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런 상황이 사실로 나타날 경우 모두 전형적인 ‘메피스토의 법칙’ 사례가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야당은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 정부가 사전에 대응하지도 못했고 대통령에게 늦장 보고됐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이미 대미 투자를 늦추거나 캐나다, 멕시코로 투자를 돌리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칩4(미국·한국· 대만·일본) 동맹 등 중국 견제에 한국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의 입장 때문인지 미국 내에서도 보완법 제정 움직임 등 한국의 비판여론을 의식하는 양상이다. 이번에도 지난 정부처럼 현 정부의 경제외교가 여전히 미숙한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과 힘이 판세를 뒤집을 만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업은 이류, 정치는 사류’라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말이 곱씹어진다. 단 바뀐 것이 있다면 이제 ‘기업은 일류’ 정도라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