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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국제 금융사에서 ‘검은 수요일’은 1992년 9월 16일 수요일을 의미한다. 이날은 영국 정부가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한 국제 투기 자금의 공격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유럽환율체제(ERM) 탈퇴를 선언한 날이다. 소로스는 하루 전인 9월 15일(이하 현지시각) 100억달러(약 14조57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동원해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했고 다른 헤지펀드들도 이에 가담해 1100억달러(약 160조2700억원) 규모의 파운드화 매도에 나섰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280억달러(약 40조7900억원) 규모의 외환을 풀어 파운드를 사들였고 금리도 10%에서 12% 그리고 15%로 하루에 두 차례나 인상했다. 그렇지만 환율은 하한선까지 하락했고, 결국 영국 정부는 항복했다.

문제의 시작은 독일의 고금리 정책이었다. 독일은 1990년 7월 1일 동서독 간 통화, 경제, 사회 통합을 단행했고, 10월 3일 정치적으로 완전히 통일됐다. 유럽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서독 기업과 경쟁하게 된 동독 기업은 6개월 만에 40%가 문을 닫았고, 실업률은 10.9%로 치솟았다. 독일 정부는 동독지역 재건과 주민 생활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동독지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년 만에 12.8%를 기록했고, 서독지역 물가도 목표 수준 2%의 두 배에 가까운 3.8%로 상승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물가를 잡고 해외 자금 유치를 위해 정책금리를 지속해서 인상하는 정책을 폈다. 통일 후 6개월 만에 분데스방크는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재할인율을 6.0%에서 6.5%로 올렸다. 같은 해 8월과 12월에는 각각 100bp(1bp=0.01%), 50bp씩 인상해 8.0%에 달했고, 1992년 25bp를 추가로 올렸다. 통일 이후 2년 새 기준금리를 네 차례에 걸쳐 225bp 인상한 것이다.

독일의 급속한 고금리 정책은 유럽에 충격을 야기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유럽통화제도(EMS)를 통해 상호 통화 정책 공조를 시행하고 있었다. 참여국 간 환율은 일종의 준고정환율제도인 ERM을 통해 일정한 변동 폭 안에서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있었다. ERM 가입이 오래된 나라들은 ±2.5% 변동 폭을 유지해야 했지만, 영국은 ±6% 변동 폭을 유지하는 대상이었다.

ERM 가입국은 금리 인상 압박에 내몰렸다. 독일과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금융시장 자본이 독일로 빠져나가 환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환율변동 폭을 유지하려던 국가들이 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에 빠지자 ERM 탈퇴가 잇따랐다. 1992년 9월 8일 핀란드가 먼저 독일 마르크화와 연동제를 폐기했고 이탈리아 리라화와 스페인 페세타화 가치가 폭락했다. 영국은 통화 가치 방어를 선언했지만 결국 헤지펀드의 공격을 이기지 못했다. 다른 국가에도 투기적 공격이 만연해지자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재무장관들은 ERM 환율변동 허용 폭을 ±15%로 확대했다. 최대 환율변동 허용 폭이 30%로 확대되면서 유럽의 환율제도는 준변동환율제도로 변경됐다.

10월 12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총재는 세계 각국 금융 수장들에게 달러 강세에 대항해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낭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돈을 쓰기보다는 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 정책적 대응을 권유했다. 현재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1990년대 초 유럽의 검은 수요일을 가져온 독일 고금리 정책의 글로벌판과 유사하다. 영국의 검은 수요일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그의 경고를 새겨들었을 법하다.

한국은행은 9월 말 우리나라 외화보유액이 전달 대비 197억달러(약 28조7000억원)가 줄어든 4167억7000만달러(약 607조2300억원)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원화 가치 급변동을 방어하기 위한 시장 개입으로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은 우리나라의 고금리 정책 또는 원화의 평가절하 수용이다. 게오르기바 총재의 경고처럼 시장 개입으로 환율을 방어하기는 어렵다. 물론 강달러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역수지 흑자를 회복해 달러를 벌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