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학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학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투자 유치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기대 물질도 없는 것이 바이오 업계의 요즘 현실이다. 기대주가 없다는 것은 다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바이오 업계로 돌릴 수 있는 메시아의 출현 가능성도 당분간 희박하다는 이야기다. 미력하나마 필자의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는 만남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언제 이 어둠이 걷힐 것인가와 이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른다’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지금까지 바이오 업계가 누렸던 호황의 이유를 필자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이오 업계의 활황을 불러온 것은 엄청난 미실현 미래 가치가 주장된 기술 수출이었으나 대부분이 반환되거나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어떤 의도된 목적이 의심되는 것들이었다. 상용화의 쾌거(?)를 거둔 물질도 시장에서 거품이 입증됐다. 왜 그렇게 바이오 업계에 투자금이 몰렸었는지, 그리고 학습 효과로 충분했다고 여겨지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판박이 같은 투자가 계속되었는지 지금도 의문스럽다. 자연히 기대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기업들의 홍보에 대한 시중의 반응은 냉정하고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필자의 철학과 소신은 확고하다. 지금의 시기는 고통스럽지만 언젠가는 우리들이 겪고 극복해야 할 옥석 가리기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곳에 염증이 농양(膿瘍)을 이루면 의학적으로 두 가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하면 패혈증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치료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외과적인 제거를 하지 않고 고름만 짜내면 계속 재발하여 나중에는 치료하기 힘든 만성 병변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종사하는 바이오 업계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원인을 근치(根治)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체력과 맷집의 슈퍼맨을 탄생시킬 기회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타성에 젖어서 산다. 특히 과거부터 해오던 방식이 계속해서 통한다는 통념은 넘기도, 바꾸기도 힘든 두껍고 높은 벽이다. “모두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잘해 왔는데 왜 새삼스럽게 평지풍파를 일으키려고 하느냐”라는 준엄한 반발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유아독존(唯我獨尊)과 독야청청(獨也靑靑)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는 ‘어부사’에 실린 말이 있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그 꼴이 됐느냐고 물었을 때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고 답한 데서 유래했다. 

민주주의의 장점인 다수결의 법칙이 단점으로 화(化)하는 이치다. 아무리 옳은 이치라도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면 선택받을 수 없다. 우호적인 주위 환경을 조성하고 주변의 동료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앞선 혜안을 갖고 있어도 실력만 믿고 설치며 잘난 척하는 속물로 몰릴 수 있고 결국은 왕따의 대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 대세가 아닌 물결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대로 가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는 지금의 환경은 오히려 우리의 체질을 개선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다른 길에 도전해 보기를 설득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시기일 수도 있다.

생황을 불 줄 모르는 남곽이라는 사람이 악사들 가운데 끼어 있다가 한 사람씩 불게 하자 줄행랑을 놓았다는, 무능한 사람이 재능 있는 척하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이 어떤 지위에 붙어 있다는 남우(濫竽)라는 고사성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환경을 변화시키고 도전하는 방식을 바꾸면 자연히 생태계는 정화되고 생물체는 우성으로 진화한다. 우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자탄이 나올 정도로 인사 적체가 심한 자리들이 충분한 경험과 지식 있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고 새롭고 참신한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져서 후학들이 양성되어야 한다. 또 설익은 물질을 기술 수출이라는 구색 갖추기로 밀어내거나, 임상시험 승인을 홍보하거나, 조건 지정을 승인으로 포장하거나 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실체와 내실이 있는 연구개발(R&D)을 하면서 대중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작은 변화부터 일으키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곧 큰 물결이 일고 바이오 업계는 젊은 심장이 박동하고 대중은 지금까지보다 더 큰 투자와 기다림이라는 선물로 화답할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옥석 가리기와 열성을 도태시키고 우성만 살아남는 진화를 해서는 안 된다. 우성과 열성의 조화가 존재하는 생태계만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바이오 업계에서 우열이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단순 용역 연구 계약이 아닌 ‘자문 연구’를 통해 우열이 균형을 이룬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의뢰된 물질에 대한 우선적인 권리를 보장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자문을 전제로 한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넓은 의미로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경우가 이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순한 용역 실험이 아니므로 보다 적극적인 개발을 한다는 기대가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공동 연구 개발이다. 초기부터 물질에 대한 권리를 공유하는 사업 모델로 서로의 장단점을 메꾸어 주고 개발 능력의 시너지를 최대화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얼마나 진심으로 욕심을 버리고 서로를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느냐에 성공의 열쇠가 달려 있다.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기대 가치가 큰 모델이지만 관련된 회사 내부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통제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활발한 인수합병(M&A)이다. 주로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이나 신생 벤처들을 대상으로 한 M&A를 생각하지만 투자 주체에 따라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인수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환경을 바꾸고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철학, 다른 방법, 다른 정책과 전략으로 바이오 업계의 R&D를 이끌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 동일한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 같은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도 더 어둡고 깊은 고난의 시간이 또 올 것이고 그 시간은 훨씬 길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그른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내야 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