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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욱 맥킨지  한국사무소 부파트너 연세대 응용통계·국제학 학사, CFA, 2015년 맥킨지 한국 사무소 합류 후 한국, 유럽, 중동 등 다양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기관투자자 프로젝트 진행.
권대욱 맥킨지 한국사무소 부파트너 연세대 응용통계·국제학 학사, CFA, 2015년 맥킨지 한국 사무소 합류 후 한국, 유럽, 중동 등 다양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기관투자자 프로젝트 진행.

작년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국가 간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자발적 탄소 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VCM은 법적 규제와 무관하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수행해 얻은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숲 조성이나 신재생 발전 같은 다양한 탄소 감축 활동을 자발적으로 벌이고 여기서 감축한 탄소량을 인정받으면 탄소배출권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다른 기업들과 자율적으로 거래할 수도 있다. VCM을 통해 탄소배출권을 구입한 기업은 구매한 배출권의 양만큼 해당 기업의 탄소배출량에서 차감하는 형태로 탄소배출권을 사용할 수 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거래된 VCM 시장은 2020년 3억달러(약 4300억원)로 추산되며, 2030년까지 빠르게 성장해 500억달러(약 72조85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 바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은 크게 규제적 탄소 시장(CCM·Compliance Carbon Market)과 VCM으로 나뉜다. 정부에서 발행하고 교부한 탄소배출권을 기업끼리 사고파는 CCM은 아직 특정 국가들 내의 시장 참여자들 간에만 거래가 가능하며, 탄소배출권의 가격과 거래량이 시장 상황에 따라 큰 폭으로 널뛰는 특성이 있어, 탄소배출권 구매를 통해 탄소감축 실적을 인정받고자 하는 기업들에 비용 부담 및 목표 달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VCM의 경우 글로벌 기업 간 거래가 가능하고, 어떤 탄소감축 활동에 근거하고 있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배출권에 다양한 가격이 매겨지고 있으며, 그 공급량 또한 시장의 가격 시그널에 따라 유연하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탄소감축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VCM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권 거래가 실제 탄소감축으로 이어지는지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VCM에서 구매한 배출권이 실제로 탄소감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부가성(additionality), 영구성(permanence), 중복성(double counting) 등 다양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해당 탄소감축이 배출권의 판매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부가성)이라는 증명과 해당 탄소감축 활동은 매년 같은 양만큼 영구히 반복되며 한 번 감축된 탄소는 다시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거나 돌이켜질 수 없어야 하고(영구성), 한 번 배출권으로 판매된 감축량은 다른 감축 목표에 다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중복성)는 조건 등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생각보다 지키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숲 조성을 통해 배출권을 발행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숲이 수년 혹은 수십 년 후에도 발행 시점과 같은 양의 탄소를 흡수할 것인지 보장할 수 없다. 해당 국가 내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숲이 개발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산불로 훼손될 수도 있다.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배출권을 발행한 주체가 허위로 발행량에 준하지 않는 탄소감축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수도 있고, 보고된 탄소감축량에 실수나 과장이 있을 수 있으며, 여러 업체 혹은 국가기관에 중복으로 탄소감축을 인정받고 금전적 대가를 수취할 수도 있다. VCM이 기대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정확한 검증과 추적관찰 그리고 필요한 경우 이해당사자들의 개입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이런 부분들은 자발적 메커니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지난 수년 동안 VCM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들로 이러한 한계점들이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탈탄소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 증대와 전통 탄소배출권의 가격 상승으로, VCM 거래를 통한 탄소배출권 공급자와 이들에게 자금을 댈 용의가 있는 탄소배출권 수요자의 매칭은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탄소감축 활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따라서 위와 같은 우려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탄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20년에 출범한 ‘자발적 탄소 시장 확대를 위한 태스크포스(TSVCM)’는 배출권의 신뢰성을 높여 시장 참여자들이 안심하고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국제적 독립감시기구다. 영국의 보험중개 회사 하우든(Howden)은 탄소배출권 판매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판매된 탄소배출권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이를 금전적으로 보상해 주는 보험상품을 출시했으며, 세계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탄소배출권의 중복 발행 및 조작을 방지하는 솔루션을 연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VCM에 대한 관심과 투자활동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우리나라 업체들의 참여는 아직 제한적이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발행되는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양 자체가 미미하고, 국내 업체들은 아직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전통적 탄소배출권 시장을 통한 감축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탄소배출권 거래의 역사가 길고, 복잡한 금융파생 상품을 오랫동안 다뤄본 유럽이나 미국 기반의 금융기관 및 기업들 그리고 최근 아시아에서 숲 조성 등을 통해 탄소배출권 발행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한 동남아 기업들이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분위기다.

올해 들어 국내 몇몇 증권사들이 관련 사업에 뛰어들 의향을 내비치며 글로벌 VCM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KB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관련 팀을 꾸리고 해외에서 발행된 배출권에 투자하거나 이를 중개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VCM은 국내 금융기관들뿐 아니라,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체 및 에너지 기업에도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림 사업을 영위하는 SK임업의 경우 국내에서 첫 조림 기반 배출권 확보를 달성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올해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산림 훼손을 방지하는 REDD+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국내외 사업에서 획득한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연내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 COP26에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우리나라의 목표를 감안할 때, 향후 더 많은 국내 기업의 VCM 진출과 이를 통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