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상하면 모든 국가가 자국 화폐 가치가 떨어질까 우려해 같이 금리를 올린다. 그런데 결국 이것이 경기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지난 10월 초 조지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EU 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며, 미국의 금리 인상을 비판했다. 같은 시기 파이낸셜타임스(FT)도 “미국이 경기 침체를 수출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그리스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은 미국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 추진으로 나타난 강달러 현상과 각국 화폐 가치 하락 여파 때문에 나온 것이다. 연준은 11월 2일(이하 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는 초유의 조치를 한 것이다. 올해 1월 0~0.2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3.75~4%까지 급격히 올랐다.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0.75~1%포인트로 더 벌어져 달러 대비 원화 가치 추가 하락이 우려된다. 한국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기며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 국내 기준금리를 3%까지 올렸지만 미국의 기준금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자본의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한국처럼 수입 물품 가격이 크게 올라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적지 않다. 지난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입 약품 가격 급등으로 약품 수입이 급격히 줄면서 이집트 카이로 일대 약국에서 약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의 금융 정책이 전 세계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미국의 달러 패권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그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본 흐름에 장벽을 세워 각국의 경제를 미국 달러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적으로 구조적인 금융 탈세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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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브라운대 글로벌 개발센터선임 연구원 인도 아마다바드 경영대학원 MBA, 옥스퍼드대 박사, 전 인도 정부수석경제고문,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브라운대 글로벌 개발센터선임 연구원 인도 아마다바드 경영대학원 MBA, 옥스퍼드대 박사, 전 인도 정부수석경제고문,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미국 연준의 매파적인 금리 정책은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개도국의 경기 불황이 심각하다. 대부분의 개도국은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강달러’ 기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금리를 빠르게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이미 몇 차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 개도국 정책 입안자들은 빠른 금리 인상이 자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금리 인상을 강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양적완화(QE) 프로그램을 가동했을 때 신흥국과 개도국으로의 투기 자본 유입을 부추기고 위험한 자산 거품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 있다. 당시 미국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고, 다른 나라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도 연준을 향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자국 내 물가 급등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는 연준의 금융 정책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으로 해외 자본이 흘러드는 흐름을 가속화하고, 미국 밖으로 인플레이션 여파를 전가시켜 다른 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세계화’ 현상에 힘입어 자국 경제를 글로벌 자본 흐름과 정책에 노출시켜 왔다. 글로벌 자본 흐름은 기축통화인 달러 종주국 미국의 통화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돼 왔다. 일부 개도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을 향해 다른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달라고 간청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미국 국익에 더 도움 될 것이라고 설득해 봤지만 허사였다. 이렇게 글로벌 정책 공조를 원하는 정책 입안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의 상황을 잊은 것 같다. 일례로 과학자들이 팬데믹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 인구 대부분에게 코로나19 예방 백신을 접종시키는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다른 부유한 국가는 글로벌 협력을 거부하고 백신 비축에 급급했다. 그 결과는 백신 공급의 양극화로 이어졌고, 가난한 국가들은 백신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세계가 세계화나 ① 다자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공조 추구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무역 장벽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국제 무역 시스템은 얼어붙은 상황이며, 미·중 경쟁 격화는 향후 세계 경제가 분열되고, 지정학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국내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정권 교체 때마다 새로운 행정부가 기존 경제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개도국의 경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개도국 정책 입안자들이 금융 세계화의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본다.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정치대학원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인 다니 로드릭(Dani Rodrik)과 필자가 진행한 연구뿐 아니라 다른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민간 금융 자본의 국경을 넘나드는 흐름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하진 않는다는 것이 입증됐다. 신흥국과 개도국들은 글로벌 협력에 대한 환상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다. 대신 정책 입안자들은 ② 브레턴우즈 체제 시기처럼 ‘상대적으로 제한된 자본 이동성의 시대’로 회귀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과도한 세계화 정책이 지난 40년간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자본주의는 금융 임대업자들로부터 구해져야 하며, 금융 탈세계화는 좋은 출발점이다. “지식이나 과학은 글로벌 기준으로 정의돼야 하지만, 금융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한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브레턴우즈 회의 고문이었던 ③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충고를 귀담아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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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주의는 국제 무역에서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범세계적 협의체를 통해 규범이나 절차를 정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는 방식을 뜻한다. 도쿄라운드나 우루과이라운드가 대표적이다. 1979년 도쿄라운드를 통해 미국과 100여 개국이 추가적인 관세 삭감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특히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선 국제 무역 분쟁을 해결할 중재 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44개 연합국 대표가 참석해 국제 통화 질서를 규정하는 협정을 체결한 것을 지칭한다. 핵심 내용은 미국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국제 결제 시스템인 달러 금태환제 도입이었다. 금과 달러가 연동되기 때문에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 글로벌 유동성은 금과 달러의 공급량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미국이 재정 부실 우려를 이유로 1971년 달러 금태환제 정지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

1944년 열린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국제청산동맹(ICU)의 창설을 주장했다. 일종의 세계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ICU를 통해 가맹국들을 대상으로 국제 무역 대금 결제용 화폐인 ‘방코르(bancor)’를 발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각 가맹국의 무역 과정에서 수출이 줄고 수입이 누적되면 방코르 보유분이 부족해지는데, 이때는 각 가맹국이 이자를 물고 ICU로부터 방코르를 빌리는 방식으로 환율을 내려 방코르 대비 자국 화폐 가치를 올릴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해외 자본이 유입돼 무역수지 적자분을 채울 수 있다고 케인스는 주장했다. ICU가 아니라 각국이 금융 정책 판단을 통해 자국 화폐 가치를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케인스는 이 시스템으로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는 불균형한 자본 유출과 금융 변동성 문제를 줄이고 국제 무역 시장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달러 금태환제에 밀려 브레턴우즈 체제에 반영되진 않았다. 방코르 대신 달러가 기축통화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