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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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성균관대전자전기공학부 교수 현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전 삼성전자 상무
김용석 성균관대전자전기공학부 교수 현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전 삼성전자 상무

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로 비유된다. TV·스마트폰·자동차·컴퓨터 등 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 대부분에 핵심 부품으로 들어간다. 또한 항공우주·양자컴퓨터 등에도 쓰이는 민군 겸용 핵심 부품이다. 미국이 반도체를 놓고 중국을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핵심은 중국의 빠른 경제적, 기술적인 성장에 있다. 미국은 중국을 위협의 상대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이 미국에 맞설 카드가 없지만,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구형 공정에서는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되면서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다.

막강한 중국 내 제품 시장을 기반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팹리스(반도체 설계)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엄청난 제품과 부품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낸드 플래시는 양쯔메모리가 2019년 64단 양산을 시작했고, 애플이 중국에 판매하는 중저가폰에 채용을 검토 중이다. 또한 현재 대만의 TSMC의 성장은 무섭다. 삼성전자는 2021년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4분기 연속으로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지난 3분기에는 TSMC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대만 인재 몰린 국민기업 ‘TSMC’

TSMC는 대만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보호하는 기업이다. ‘대만반도체생산회사(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라는 뜻의 영문명에서 알 수 있듯이 TSMC는 국력을 총결집한 국민기업이다. 삼성전자가 TSMC라는 기업이 아닌 대만 국가와 경쟁하는 셈이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핵심 전략산업으로 삼고 법인세를 비롯한 세제 감면, 연구개발(R&D) 보조금, 인프라 투자, 인센티브 등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만은 대학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들이 반도체 분야에 많이 지원하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발생한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우수 학생의 공대 진학이 줄어든 지 벌써 20년이 됐다.

기업은 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은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도전을 막아야 하고, 대만을 추격해야 한다. 투자관점에서는 세제 혜택,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지만, 인력 양성은 반도체 사업을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이지만 인력 부족이 미래 경쟁력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일정은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방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였다. 이후 두 달쯤 지나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반도체 인력 양성 논의가 시작됐다.


윤 정부, 구체성 결여 반도체 인재 양성안

정부는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 명을 양성하는 내용의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을 내놓았다. 대학 정원 확대 등을 통해 키워내겠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 전공자, 기업 재직자도 재교육하고, 시간이 걸리는 학위 과정, 6개월~1년짜리 단기 과정도 만들겠다고 한다. 목표는 거창한데,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 위기 상황인데 느긋하게 10년 뒤를 준비할 때가 아니다. 최소한 올해부터 내년, 3~4년 후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한다. 반도체 학과와 대학원 등 신설과 증설에 대해 몇 년에 몇 개 대학에 지원하고, 이를 통해 몇 명의 인원을 배출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7월 초에 이러한 내용을 발표했고,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후속 계획이 나온 게 없다.

정부는 교원만 충분히 확보하면 반도체 학과 신·증설을 허용하겠다고 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교수 인력 부족이다. 학계뿐 아니라 기업의 최고 전문가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산업체 출신을 전임교수로 확보해서 교육 전담 교수로 선발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정년퇴임 교수 혹은 산업체 경험자 중 65세 이상 전문가도 초빙교수로 적극 활용하면 된다. 유능하고 경험 많은 반도체 인력이 주변에 많이 있다. 단지 대학이 활용을 못 하고 있을 뿐이다.

인력 양성에 있어서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 각 대학은 실무형 반도체 교육을 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또한 전체 대학 차원에서 교육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 반도체학과라 명시된 학과만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교육은 전자공학·소프트웨어·물리학·화학·신소재·산업공학 등 많은 반도체 관련 전공 분야 학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대학 학부 4년만으로는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을 충족시킬 순 없다. 석·박사급 전문인력을 키워야 하는데, 석사 인력 육성을 위한 방안으로는 5년짜리 학석 과정(학사+석사)을 강화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교육 커리큘럼은 새롭게 시스템, 소프트웨어, 반도체를 모두 포함한 필요한 교과목들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 설계부터 반도체 구현을 해서 칩을 직접 만들어 보고, 칩 테스트까지의 실전 프로젝트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에서 제대로 활용 가능한 인력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별로 전문대학원을 별도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반도체 설계 인력을 위한 아키텍트 대학원, 소자 및 공정 인력을 위한 공정 대학원, 패키징 전문인력을 키우기 위한 패키징 대학원이 반도체 전문대학원에 해당한다. 커리큘럼도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고 실습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당장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장학금 등 많은 혜택을 줘서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우수 학부생들이 전문대학원에 진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인재 양성 산학 협력으로 완성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설계, 공정, 소재, 테스트, 패키징, 생산장비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반도체는 설계-제조-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 단계를 거친다. 따라서 반도체 관련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두 회사는 칩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다. 반도체는 그 이상의 많은 분야 회사들의 노력이 있어야 완성된다.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가공된 웨이퍼를 절단해 패키징을 하거나 가공이 완료된 웨이퍼 또는 칩을 검사해 불량 여부를 판단하는 기업,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하는 기업,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생산하는 기업들로 구분된다. 따라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들의 인력 양성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의 공정 양산에 돌입한 데 이어 2027년까지 1.4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운드리 공정에서 미세공정 전환이 어려워지면서 구형공정에서 생산된 칩을 모아서 가공하고 최고의 성능을 만들어 내는 패키징(후공정)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후공정을 맡고 있는 중견·중소기업의 도움 없이는 대기업의 파운드리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지방에는 후공정인 패키징, 테스팅, 장비 분야 등 우수한 기업이 많다. 공정의 미세화로 인해서 후공정 분야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대학은 지역 강점 분야의 기업과 대학이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때 지방자치단체-기업-대학이 연계해서 인력을 키우는 것이 좋은 방안이다. 예컨대 1년 단위의 반도체 아카데미를 만들어 실습을 위주로 교육하고 기업과는 인턴 과정을 통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논산시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논산시는 건양대와 함께 지역 특성에 맞게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교육 과정을 통해 반도체 인력 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선도적인 모범사례다. 많은 프로젝트 기회를 통해 반도체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이 양성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국가 경제와 안보 등에서 위협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인력 양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빠르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