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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현 세종대 부총장, 전 대성 합동지주 사장,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현 세종대 부총장, 전 대성 합동지주 사장,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1│‘보드(board)’라는 영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널, 판자, 무대라는 뜻과 함께 위원회, 이사회라는 뜻이 나온다. 그 어원은 순수한 옛 영어인 ‘보드(bord)’로서 널, 판자란 뜻이었지만 이후 ‘탁자(table)’로 의미가 넓어진 후 16세 후반부터는 ‘회의가 열리는 탁자’로, 17세기 초에는 그 의미가 더 확장돼 ‘(주요 인사들 간의) 협의체’로 쓰였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이 ‘위원회, 이사회’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2│혀는 우리가 맛을 느끼고 말을 하게 하는 입안의 근육이다. ‘탈무드’에서는 어떤 임금이 두 신하에게 각각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찾아오라고 시켰더니 둘 다 돌아와서 사람의 혀라고 아뢰는 일화가 언급된다. ‘성경’에서도 혀에 관한 이야기가 여럿 나오는데 구약의 잠언에 나오는 “죽고 사는 것은 혀끝에 달렸으니”라는 구절은 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즉 ‘세 치’밖에 안 되는 혀가 가장 선하거나 악한 결과를 초래할 만큼 그 힘도 크다는 것이다. 경제에서도 그 예는 참 많으나 최근 우리나라의 한 예로 강원도지사의 ‘혀끝’이 나라 전체의 채권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3│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 그 공식 명칭에 ‘뱅크’ 즉 은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미국이 유일하다. 미국 중앙은행의 공식 명칭은 ‘페더럴 리저브 보드(Federal Reserve Board)’ 즉 ‘연방(지불)준비(금)위원회(또는 이사회)’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연방준비은행 또는 미(美) 연준 정도로 번역돼 불린다. 하지만 예전에 미국에서도 ‘은행’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중앙은행이 두 번이나 존재했었다. 첫 번째는 1791년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도로 설립된 ‘합중국 은행(Bank of United States)’이다. 그러나 이 은행은 20년의 인가 기간을 채운 뒤, 의회가 갱신을 거부하며 그 수명을 다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은 1816년 영국과의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조달을 위해 설립된 ‘합중국 은행’이다. 이 은행도 역시 20년의 인가 기간을 채운 뒤 의회가 갱신을 거부해 사라졌다. 당시 연방정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던 ‘제퍼슨 주의자’들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은 중앙은행의 부재로 여러 번의 금융 위기가 터질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곤 했다. 이에 중앙은행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여러 번 제기됐지만 ‘제퍼슨 주의자’들이 득세한 정치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1912년 금융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토머스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카터 글래스라는 하원의원과 헨리 파커 윌리스라는 학자가 중앙은행 설립 제안서를 새 대통령에게 제출했는데, 그 안은 제퍼슨 주의자들을 의식한 절충안으로 20여 개의 지역별로 상업은행들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분권형 중앙은행’을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 본 윌슨 대통령은 이들 은행의 행장들이 위원(이사)이 돼 각 은행 간의 조정을 담당할 위원회(이사회·Board of Governors) 하나를 두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이를 반영한 최종 법안은 의회를 통과했고, 1913년 12월 23일(현지시각)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중앙은행 이름에 ‘은행’이 없으며 그 수장도 ‘의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4│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한 신문(Saturday Evening Post)에서 “매파들은 공습을 선호하고 비둘기파들은 공습을 반대하고 경제봉쇄를 선호한다”라고 보도한 이후 ‘비둘기파’는 온건한 해법을, ‘매파’는 강경한 해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뜻하게 됐다. 이 비유는 중앙은행에도 적용돼 약간의 물가 상승 조짐에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사람은 매파, 금리 인상에 신중하되 불황 시에는 적극적인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한다는 사람은 비둘기파라고 부르게 됐다. 연준의 19명 위원도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뉜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정해지는 곳은 6주마다 개최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다. 11월 초 이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자이언트 스텝으로 불리는 0.75%포인트 인상을 네 차례 연속 단행한 것이다. 연준의 이런 ‘과도한 스텝’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좀처럼 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 창궐 기간에 억눌렸던 소비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끝나가면서 살아난 데다 대량 해고로 무너졌던 공급망의 복원이 지연되고 있던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에너지와 곡물값이 폭등한 탓이다. 그런데 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상황에는 연준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팬데믹 기간에 경기를 받치겠다는 명분으로 8조달러(약 1경1472조원) 이상의 통화를 ‘과도하게’ 공급해 현 인플레이션 상황의 ‘연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큼 과도하게 금리를 올리고 통화 공급을 죄고 있다. 이는 아직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큰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전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를 아래로 처박게 하는 데는 확실한 효과를 보여줬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자본 유출과 환율 방어를 위해 미국 연준을 따라 금리를 급격히 올린 탓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일부 국가는 국가부도나 그와 비슷한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영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마저 포함된다. 이런 ‘널뛰기’ 통화정책은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연준의 통화정책은 항상 적정한 수준을 지키지 못해왔다. 과잉 유동성 공급과 뒤이은 급격한 통화긴축으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및 리먼 사태를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단기적으로는 연준 수장의 ‘혀’도 전 세계 시장을 움직일 만큼 힘이 세다. 11월 초 FOMC 회의 이후 나온 성명서에는 향후 금리 인하 속도가 조절될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연준 안에서 ‘비둘기파’가 늘어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기자회견에 나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매파’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금리 인상 멈춤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최종적인 금리 수준이 예상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전 세계 주식시장은 모두 큰 하락세로 돌아섰다. 참으로 이런 ‘널’과 ‘혀’의 움직임에 세계 경제가 휘둘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미 연준의 금리 인상 행진은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이는 미국 내에서도 설왕설래의 이슈이긴 하다. 연준은 현재 두 가지 지표에 기초하여 금리정책을 편다고 알려져 있다. 물가 및 고용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물가는 2%, 신규 고용은 ‘0’에 수렴하는 것을 금리인상을 멈추는 기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물가 지표는 흔히 언급되는 소비자 물가(CPI)가 아니라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PCE)’ 물가지수를 본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이 지표는 전년 동기 대비 약 5% 상승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향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코노미스트들의 컨센서스는 내년 상반기 중에 이 지표 상승 폭이 2%대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 뜨거운 고용시장 상황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BOA (Bank of America)는 고금리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해 내년 1분기에 취업자 수가 월평균 17만5000명 정도씩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전망이 맞는다면 내년 초나 늦어도 상반기에는 금리 인상 행진이 마무리된다는 말이다. 조용필의 노래(‘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처럼 이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