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기 시절 장문의 유서를 써놓고 가출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고, 나가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엄포를 해놓았다. 초췌한 몰골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고, 어머니는 하염없는 눈물로 나를 맞았다. 며칠 지난 뒤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승하 네 편지 정말 잘 썼더라. 너는 글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권유하신 것도 어머니였다.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도 가장 기뻐한 이는 부모님이었고, 강사 생활 8년째 되던 해 대학에 자리잡았을 때도 진심으로 축하해 준 이 역시 부모님이었다. 혈연이 우리 사회를 지탱케 하는 가장 힘센 지남철임을 아는 데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가정의 파괴, 가족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존속살해와 비속살해의 뉴스가 들려온다. 불가(佛家)에선 전생의 원수가 이승에서 가족으로 만나게 된다고 한다. 전생의 업보를 풀라고 가족으로 만나지만, 이승에서 또다시 죽이고 죽는 관계가 된다면 그 업은 어떻게 풀릴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는 달리 말하면 물질 만능 사회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부모 형제간도 돈이 끼어들면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혼율 증가는 고아 아닌 고아를 양산하고 있고, 외국인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야기하는 가정의 파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가정 파괴는 결국 국가의 기강을 흔들고 사회의 기반을 흔든다. 무슨 해법은 없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많다. 이런 날은 백화점마다 대목을 본다. 어린이날에는 놀이공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어버이날에는 식당들이 톡톡히 재미를 본다. 가정의 달에 들어 있는 이런저런 날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어야만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어린이날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어야 한다. 자식이 학생이라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어디를 다니고 있어도 좋다. 몇반에 다니고 있는지를 알려면 자식의 방에 들어가 공책을 보면 된다.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난사람보다는 든사람이 되거라, 성실과 정직은 네 인생의 가장 큰 덕목이다, 사회로 나가게 되면 쓰임새 있는 인간이 되도록 해라….

 대학생인 자식을 매일 저녁 보면 어떤가. 학교로 편지를 한 통 띄우는 것이다. 얘야,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네 삶에 있어 큰 재산을 얻는 것이다, 술을 마시더라고 실수할 정도로는 마시지 말아라, 이번 주말에는 아빠랑 영화 한 편 보자…. 뭐 이런 내용으로 편지를 한 통 띄우면 그 어떤 값진 선물보다 자식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여! 어버이날이라고 없는 돈을 털어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편지를 한 통 올리자. 어머니한테 화냈던 일을 사죄하고 아버지를 소원하게 대했던 것을 사과하자. 제가 요즘 힘들어서 신경질을 냈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정말 걱정됩니다, 열심히 살아가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의례적인 말일지라도 부모는 자식의 친필 편지 한 통이면 모든 시름을 잊고 대견해 한다. 우표값 220원이면 자식은 효자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너를 사랑한다는,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가정의 달이 아니더라도 식구의 생일에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밝아지리라. 생일이 오면 편지를 쓰는 것이다. 군대 간 자식은 부모님에게, 군대에 보낸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용기를 얻고, 부모는 위안을 얻으리라. 가족 중 누가 내게 따뜻한 말을 해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면 된다. 힘을 내라고, 건강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