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미국 재무부는 글로벌 암호화폐 규제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공개했다. 프레임워크는 암호화폐 규제를 위한 외국 규제 당국과의 협력 방안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암호화폐의 잠재적 불법 금융 및 불안정성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자세한 규제 내용이 나오진 않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상자산 분야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각 부처를 포함한 연방기관들이 조율하도록 직접 지시한 것만으로도 암호화폐 시장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그러나 불과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암호화폐 시장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 11월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가격이 올 들어서만 평균 60% 이상 폭락했고 미국의 대표적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를 비롯해 비트코인 채굴업체와 암호화폐 은행, 심지어는 세계 최다 비트코인을 보유한 상장사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의 주가마저 모두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이사회 의장인 마이클 세일러는 CNBC 인터뷰에서 “FTX 거래소의 붕괴는 투명성 부족에서 비롯됐다”며 “암호화폐 시장에서 계속되는 재앙은 (암호화폐 시장 내) 필요한 규제 시행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암호화폐 규제 권한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두 기관 모두 암호화폐 규제 도입의 시급성을 깨닫고 있다. 이번 FTX 몰락은 암호화폐의 첫 번째 겨울이 아니다. 지난 2018년, 2020년, 2021년 여름에도 암호화폐 시장은 대규모 조정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FTX 붕괴 사태가 주는 교훈은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아니며 논란의 여지도 없다”면서 “투기적 성격의 카지노(암호화폐 거래소 등)는 사기의 징후가 있는지 감시돼야 하고 규제 당국은 게임이 조작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투자자들은 도박 손실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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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르 비베스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교수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상과대 대학원 박사,미 UC 버클리 경제학 박사
사비에르 비베스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교수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상과대 대학원 박사,미 UC 버클리 경제학 박사

급격한 금리 상승을 계기로 최근 암호화폐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는 모습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에서부터 사기의 우려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몰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FTX의 붕괴는 테라 블록체인의 기본 토큰인 루나의 폭락 사태, 암호화폐 전문 헤지펀드인 스리 애로우스 캐피털(3AC·Three Arrows Capital)과 암호화폐 대출업체인 보이저의 파산 등 암호화폐 시장에서 발생한 잇따른 실패에 뒤이어서 발생했다. 이번 사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놀랐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서 우리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 new thing under the sun)”는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바하마 지역 태양 아래에 있는 FTX 본사의 광고에는 “블록체인 기반의 통화이자, 금융상품이자,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로 대표되는 ‘차세대 큰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말처럼, 암호화폐 위기의 서사는 사실 오래전부터 정립돼 왔다고 본다.

일반적인 금융 붕괴가 그렇듯이, 거품이 꼈을 때 붕괴는 시작된다. 투자자들의 수요는 암호화폐가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합리적 기대치를 앞질러 왔다. 초창기에는 (화폐와 같은) 교환 수단으로는 실용적이지 않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금융 투기나 불법 행위에 국한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를 계기로 암호화폐 열광이 시작됐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야 치솟는 암호화폐 시장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저렴하게 빌릴 수 있는 돈은 기업들이 과도한 빚과 최대치의 레버리지를 일으키도록 만들었고, 이는 곧 더 많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연결고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거품이 불가피하게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 수익률은 맥을 못 추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바닥까지 가게 된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일부 암호화폐 기업의 경우 사기를 통해 숨기는 듯했지만, 한 기업이 몰락하면서 드러난 실체는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 감염병처럼 충격의 여파가 크다. 

FTX 사태로 돌아가 보자. FTX의 설립자인 샘 뱅크먼프리드는 암호화폐 주류가 되기를 원했고,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세콰이어캐피털과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같은 큰 펀드들이 이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톰 브래디와 래리 데이비드와 같은 유명인들은 슈퍼볼 광고에서 FTX를 홍보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같은 전직 국가 원수들은 뱅크먼프리드와 손을 잡기도 했다. 결국 새로운 금융 시대가 시작됐으나,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것’은 빼먹게 됐다.

암호화폐의 대패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2년 초 금리 인상을 시작한 직후 ① 스테이블코인의 생태 시스템인 디지털 화폐의 고정환율제가 무너지며 시작됐다. 감염병은 가장 먼저 (현재는 사라진) 암호화폐 헤지펀드인 스리 애로우스 캐피털로 향했다. FTX는 암호화폐 대출 플랫폼 보이저와 블록파이와 같은 회사들을 구제하면서 감염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어떤 사람들은 뱅크먼프리드를 지난 ② 1907년 공황을 억제한 인물로 유명한 전설적인 JP 모건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여름, 암호화폐 투자사이자 FTX 자회사인 ③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가 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146억달러 자산 가운데 대부분이 FTX 토큰(FTT) 혹은 FTT 담보대출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계열사 간 자전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여기에 FTX와 함께 세계 양대 암호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바이낸스 설립자인 자오창펑(趙長鵬)과의 공개적인 불화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도미노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이낸스 측이 불안정성을 이유로 보유 중인 FTT 코인 5억2900만달러(약 6800억원)어치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하자, FTX 고객들은 플랫폼에서 자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FTX는 엄청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곧 파산의 길을 걷게 됐다.

투자자들은 갑작스러운 FTX의 붕괴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헤지펀드의 40% 가까이가 FTX에 투자했는데, 많은 사람은 세쿼이아와 같은 큰 펀드들이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적절한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만 할 뿐이었다. FTX의 붕괴가 탈중앙화가 핵심인 암호화폐 시장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었지만, 혼란의 원인이 기술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형태의 디지털 금융 및 블록체인 기술은 여전히 기존의 결제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고 여러 금융 혁신을 할 수 있다. 많은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으며,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체 디지털 통화를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당국은 난제를 안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의 위기에 과잉 대응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유익할 수 있는 기술 응용 프로그램에 부수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 시장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불안정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 붕괴의 교훈은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아니며 논란의 여지 없이 확실하다. 암호화폐 관련 기관들은 투기적 성격을 가진다면 사기의 징후가 있는지 감시받아야 한다. 규제 당국은 카지노 같은 게임이 조작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투자자들 역시 도박으로 인한 손실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가격 변동성이 최소화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 미국 달러나 유로화 등 법정 화폐와 1 대 1로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데, 보통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다. 테더(Tether, USDT) 코인이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이며 이외에도 HUSD, PAX, GUSD, USDC 등의 다양한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됐다. 다른 암호화폐와 달리 변동성이 낮아 암호화폐 거래나 탈중앙화 금융인 ‘디파이(DeFi)’ 같은 암호화폐 기반 금융상품에 이용된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가 한 번 신뢰성을 잃게 되면 투매가 발생하고 시장 가격은 0으로 수렴한다. 루나 사태가 대표적이다.

1907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세계적인 금융 위기. 이전까지 경제가 급성장했지만 금융 시스템이 부재했다. 일부 투자업계에서는 금융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에 배분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같은 리스크 관리 관행이 쌓이다 대규모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이 일어났고 당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50% 가까이 폭락했다. 그 당시 위기를 해결한 사람은 JP모건이었으며, 연방준비제도 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됐다.

샘 뱅크먼프리드가 2019년 FTX 거래소 설립에 앞서 2017년 세운 가상자산 블록체인 투자기업(운용사). 알라메다리서치는 그동안 가상자산의 OTC(장외거래), 차익거래, 유동성 서비스 등을 제공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알라메다리서치의 성공을 바탕으로 2019년 FTX를 설립했지만 결국 몰락하게 됐다.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 중 FTT가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가 나오면서 자전거래 의혹이 불거지고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한 것이다. FTX 파산 전인 지난 6월 기준으로 알라메다리서치는 146억달러(약 18조9300억원) 상당의 자산을 확보 중이었고, 이 중 36억6000만달러(약 4조7400억원) 규모의 FTT와 21억6000만달러(약 2조8000억원) 규모의 FTT 담보대출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