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이하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인플레 감축법)’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18개월 동안 (이 법에) 서명하기만을 기다려왔다”며 웃었다. 이 법안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기후 대응 투자, 의료 보장 확충, 법인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7400억달러(약 984조9400억원) 상당의 투자 패키지다. 인플레 감축법은 지난해 좌절된 3조5000억달러(약 4659조원) 규모의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의 축소판으로, 이번 법안 서명은 이렇다 할 입법 성과가 없었던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에 큰 정치적 승리로 평가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석 달 뒤에 열리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이어 인플레 감축법까지 통과시키며 미국에 대한 투자를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계기로 11월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인플레 감축법은 한국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이 되는 법안이기도 하다. 이 법에는 △미국에서 생산되고 △미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전기차만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는 전량 한국에서 생산된다. 이 법은 배터리와 소재 강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인인 필자는 인플레 감축법이 어떤 이유에서 통과됐든 미국의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과 맞닿아있다며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필자의 칼럼은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 감축법에 서명하기 전, 법안이 미 하원으로 향할 때 쓰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 국빈실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 서명식에서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 원내대표와 함께 웃고 있다. 로이터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 국빈실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 서명식에서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 원내대표와 함께 웃고 있다. 로이터뉴스1
마이클 스펜스스탠퍼드대 명예교수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현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전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마이클 스펜스스탠퍼드대 명예교수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현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전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최근 미국에서는 주요 경제 법안 입법이 유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1월 미국 내 도로와 교량, 광대역통신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1조2000억달러(약 1597조원)규모의 ① ‘인프라(기반시설)법(infrastructure bill)’과 7월 27일 미국 반도체 업계 활성화를 위해 보조금 520억달러(약 69조2100억원)를 지원하는 ② ‘반도체·과학법’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목록에 미 상원을 통과하고 미 하원으로 향하는 ③ ‘인플레 감축법’을 추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현재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상태다).

제로섬 사고방식으로 양극화한 현재 정치 환경에서 앞의 경제 법안들은 돌파구이자 기적과도 같다. 오랜 기간 투자를 줄여왔던 것과 대조돼서 더욱 놀랍다. 번외로 경제와 직접 관련 있지는 않지만, 첫 총기 규제 법안이 거의 30년 만에 의회를 통과한 것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다시 경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평론가들은 분명히 이런 경제 법안들이 통과된 것을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승리로 여기고 있다. 또 많은 이는 이로 인해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흐름이 바뀔지, 궁금해하고 있다. 

정치적 함의가 무엇이든, 인프라법과 반도체·과학법, 인플레 감축법은 미국의 성장 잠재력에 관한 장기 투자를 의미한다. 더불어 이 법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성장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플레 감축법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승인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는 미국이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또 인플레 감축법에는 미국 건강보험인 ‘메디케어’가 처방약값을 협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2025년까지 ‘건강보험개혁법(미국에서 저소득층까지 의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법안)’을 연장하며 최저 법인세를 도입하는 등 기후와 무관한 조항도 포함돼 있다. 

마찬가지로 반도체·과학법은 경제의 기술 기반을 늘리는 인적 자본을 포함해 미국 반도체 산업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법이다. 이 법은 반도체와 디지털 기술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투자금의 일부는 잠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국가(일반적으로 중국을 비유)에 대한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건 반도체·과학법은 중장기적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인다는 것이다. 경제 활동 고령자 의존율이 높아지고 노동 시장 상황이 긴축되면서 앞으로 10년 이상 균일한 성장을 달성하려면 디지털 방식의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공공 부문 투자가 확대돼 인센티브를 만들어내면 주요 분야에 민간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과학·기술·인력·인프라에 공공 투자가 잘 이뤄진다면 민간 부문과 금융 시스템이 이를 포착하는 기회를 만든다. 이는 곧 혁신과 성장, 고용을 촉진하게 된다.

의심할 것도 없이 미국에는 아직 소득과 부(富) 그리고 기회 분배에 관한 이견이 남아있다. 하지만 최근 통과된 법은 이런 해로운 추세를 반전시키려면 특히, 교육에 대한 공공 투자와 기회를 창출하는 공급자 측 의제(어젠다)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재분배는 무시할 수 없지만, 완전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이는 유·무형 자산과 인프라 투자 중요성에 관한 부분적 합의는 중국과 경쟁처럼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우려할 수 있다. 어쨌거나 냉전은 기초 과학과 기술 혁신에 관한 공공 투자를 급증시켰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은 디지털 혁명,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그리고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균형 잡힌 장기 경제 의제의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걱정을 하는 이에게 남의 호의를 트집 잡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새로운 냉전 의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 의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건 아니지만 중국과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공동의 관심사에 기반한 정책이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공동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책은 강력한 성장 의제에 관한 초당적 의견 수렴 부재를 보완하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긴밀하게 조정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의 입법 승리 역시 중도 성향의 의제와 타협하려는 의지가 여전히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원은 정당 표결에서 인플레 감축법을 통과시켰지만, 특히 민주당 내 ‘소수파’인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조 맨친 의원과 애리조나주의 키어스틴 시너마 의원 등으로부터 지지받기 위해 몇 조항을 조정하거나 삭제해야 했다. 일부 법안 지지자는 결과에 불만족했지만, 이는 타협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이런 법들은 사회적 문제에 관한 깊은 이견이 있었지만 경제, 과학, 기술, 환경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대중의 관심을 얻겠다는 의지를 시사한다. 쟁점과 목표를 분리하는 것 역시 미국의 정책 결정에 좋은 징조다. 전체 의제가 가장 논쟁적인 문제인 탓에 볼모로 잡히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공 투자 부활이 계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순 있다. 성공적인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경험은 주요 경제 전환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시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투자 프로그램의 혜택이 가시화하면 미래 경제 의제에 관한 대중의 지지가 커져 다시 투자금을 줄이기 어려워진다. 미국 정책 입안자의 결심이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일단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도 실용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리더십이 진정한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 자들을 칭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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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8년간 1조2000억달러(약 1575조원)를 들여 도로·교량·철도·항만·상하수도·광대역통신망 등을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법으로, ‘21세기 뉴딜법’으로 평가된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을 포함한 초당파 의원들이 제시한 절충안으로 마련됐으며 지난해 11월 15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했다.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법으로, 미국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2800억달러(약 366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520억달러는 반도체 생산과 연구에 투입되며 세제 지원에도 240억달러(약 31조9400억원)가 배정됐다. 미·중 패권 경쟁이 지속하는 가운데 새로운 냉전의 신호탄이 된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 법 영향으로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미국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힌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영향받을 것으로 내다본다.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을 얻을 수 있지만 두 기업 모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는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타격입을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애초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3조5000억달러(약 4659조원)의 예산 투입을 목표로 했던 것의 축소판 법안. 지난해 1월 취임 초부터 기후 변화와 의료 확충을 역점 국정 과제로 추진한 바이든 대통령의 입법 성과라는 평을 받는다. 7400억달러 지출안 중 우선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3750억달러(약 499조1200억원)를 투입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중국산 핵심 광물과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를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고 미국에서 조립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만 세액을 공제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