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 경쟁을 펼치면서 세계 경제가 새로운 국가 안보 시대에 접어들었다. 20세기 후반 냉전 체제가 막을 내린 지 30여 년 만에 이른바 ‘신냉전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에 새로운 시스템이 요구되고 있다. 발생 2년이 지난 코로나19는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발생했고, 나아가 미국과 중국은 경제 안보를 내세워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산업은 물론 에너지, 방산 등 전략 자원 분야에서 공급망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신냉전이 언제든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시에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와 중국·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반(反)서방 국가의 대립을 심화시켰다. 미국이 ‘프렌드 쇼어링’을 내세우며, 중국 견제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필자는 이런 대립 구조가 세계 경제의 쇠퇴를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기술, 자원, 시장이 있는 국가들이 이를 무기화하고 있어, 이런 자원 무기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 경쟁을 펼치며 세계 경제가 신냉전에 휘말리고 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연합뉴스·AFP연합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 경쟁을 펼치며 세계 경제가 신냉전에 휘말리고 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연합뉴스·AFP연합
라바 아레즈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 연구원 전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부사장, 전 세계은행(WB)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바 아레즈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 연구원 전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부사장, 전 세계은행(WB)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세계 경제가 새로운 국가 안보 시대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는 세계 경제의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보건 위기 대응 실패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새 국가 안보 시대 개막의 절대적 배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전쟁 희생자와 경제적 피해를 넘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와 중국을 주축으로 한 반(反)서방 국가의 지정학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 국가를 분열시키기 위해 에너지와 식품 수출을 무기화했고, 개발도상국에는 반서방 정서를 부추기려고 한다. 

중국은 러시아 측에 서서 크렘린궁의 안보와 관련한 양국 협력 강화를 밝힌 바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 산업을 선도하는 대만을 둘러싼 긴장감 또한 미·중 관계에서 화약고와 같다. 

이런 전개는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 정치 체제의 비대칭에 의해 일어나는 세계 경제의 양극화 여파로 봐야 한다. 최근 여러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지역 강대국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과거 냉전 시대의 소련과 달리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경제적 경쟁자다. 중국과 남반구 저개발 국가 사이의 교역 및 금융 교류 증가는 미국을 따르던 빈민국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지난 3월 많은 개발도상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UN) 총회 결의안에 대한 투표를 기권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과 유럽 관리들을 놀라게 했다.

초강대국 사이의 지정학적·경제적 분열이 커지면서 경제적 사고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국가 안보를 시장 분석과 거의 관련이 없는 별도의 연구 분야로 간주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의 상대적 안정 속에서 이런 분위기는 꾸준히 계속됐다. ① 브레턴우즈 체제와 세계무역기구(WTO)도 암묵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 성장을 도왔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고, 2030년에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GDP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갈등이 더 치열해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각각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양극화는 세계 경제를 여러 방식으로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이미 강력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②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중국과 관세 전쟁은 자유 시장 경제와 자유 무역에 큰 타격을 줬고, 현재 조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따르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최근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대응의 일환으로 ③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동맹국과 핵심 기술 및 공급망 협력)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프렌드 쇼어링은 친구(friend)와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는 의미인 쇼어링(sho-ring)을 합친 신조어로, 동맹이나 우방국끼리 똘똘 뭉쳐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 현안을 해결한다는 미국 의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어떤 국가를 ‘친구’로 간주할지가 어렵다. 그 기준을 민주주의 국가로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룹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모임) 가입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가 늘고 있다. 중국은 이 모임이 지지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④ 국제 금융 결제망 스위프트(SWIFT)를 대신할 결제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한다. 물론 결제 시스템이 기축 통화와 관련된 이슈로 뒤엉켜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역사적으로 무역 전쟁을 포함한 갈등과 분열은 많았다. 그러나 초강대국 사이에서 이런 갈등이 널리 급속도로 퍼지진 않았다. 현재 미·중 갈등은 증권거래소의 기업 상장 폐지와 반도체, 통신 기술, 방산, 에너지 등 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그러나 최첨단 기술 산업, 전략 자원 분야 등에서 국가 안보를 내세운 공급망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기존 세계 경제를 이끌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국가 안보는 상충 관계에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경제에 적용해온 비교 우위, 시장 통합 등 같은 접근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특히 기술, 자원, 시장이 있는 국가들이 이를 무기화하고 있어서, 자원 무기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공급망,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새롭게 도래한 국가 안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분열을 막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물론 비용 발생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초강대국과 그들을 둘러싼 국가들이 신뢰를 쌓고, 동시에 세계 경제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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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연합국 44개국 대표가 모여 금융 통화 회의를 열고 체결한 협정. 1945년 협정이 효력을 발휘했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구축됐다. 통화 가치 안정 등을 꾀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설립했다.

미국이 통상과 외교, 국방 등 국정 전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정책. 2017년 1월 20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오늘부터 미국의 새 비전은 미국 우선주의”라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지난 수년 동안 미국은 자국 산업을 희생해서 다른 나라를 부강하게 했고, 국방을 궁핍하게 만들며 다른 나라 군대를 지원했다”며 미국 우선주의 채택 배경을 밝혔다. 또 “미국의 사회간접자본(SOC)이 녹슬고 황폐해질 때 외국에 수조달러를 썼다”며 “앞으로 미국의 통상과 세제, 이민, 외교 등 모든 정책은 미국 근로자와 미국 가족들의 이익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맹, 우방국끼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전략. 미국이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도시 봉쇄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최근 추진하고 있다. 신뢰도 높은 동맹끼리 뭉쳐 보다 안정적으로 상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제조업의 본국 회귀’를 뜻하는 리쇼어링의 플랜 B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과 패권 경쟁 과정에서 리쇼어링을 추진했다.

세계 200여 개국 1만1000여 개 금융 회사가 돈을 지급하거나 무역 대금을 결제하는 데 활용하는 전산망이다. 세계 각국의 송금망은 스위프트를 거친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이 한국에 있는 기업에 돈을 보내기 위해 미국 거래 은행에 요청하면, 이 은행은 스위프트망을 통해 한국 기업의 거래 은행에 메시지를 보내 결제한다. 1973년 유럽과 북미의 240여 개 금융 회사가 회원사 간 자금 이동 및 결제 업무를 위해 만들었다. 현재 스위프트 지분은 3000개 금융 회사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