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수출하기로 한 K9 자주포. 사진 한화디펜스
폴란드에 수출하기로 한 K9 자주포. 사진 한화디펜스
김경원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김경원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1│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전에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둔 ‘존 윅’이라는 할리우드 영화의 부제는 ‘파라벨룸’이다. 총탄의 한 종류로서, 이 영화 중 여러 총격전에 사용되는 직경 9㎜짜리 탄환을 가리킨다. 1902년 독일의 총기 개발자인 게오르그 루거는 독일군의 요청을 받아 권총에 쓰일 새 탄환을 설계했고, 이를 DMV라는 총기 회사가 1903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회사 사훈에 파라벨룸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이 탄환에도 이런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사실 이 단어는 4세기 후반 로마의 군사 저술가인 베게티우스가 저술한 ‘군대 일에 관하여(De re militari)’라는 책에 나오는 ‘시비스파켐, 파라벨룸(Si vis pacem, para bellum)’이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는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뜻이다.

#2│그리스 신화의 아테나는 지혜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다. 단, 아테나가 대표하는 전쟁은 침략전이 아니라 방어전이다. 아테나의 출생 신화가 독특하다. 제우스는 어느 날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측근을 시켜 도끼로 자기 머리를 팼더니 투구와 갑옷을 모두 갖춰 입은 아테나가 거기서 나왔다. 훗날에 누구라도 그 눈을 보면 돌로 변하는 메두사라는 괴물을 영웅 페르세우스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처치한 후 괴물의 머리는 이 신의 방패에 박히게 됐다. 이 방패의 이름이 ‘이지스(aegis)’다. 그런데 이 이름은 미국이 1980년대 개발한 군함의 최첨단 대공 ‘방어’ 시스템의 명칭으로 사용됐다. 이 체계는 한국, 일본, 호주, 스페인 등 미국의 우방국들에도 수출돼 채택됐다. 지난 7월 한국의 정조대왕함이 진수됐는데, 이 구축함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이지스함으로 평가되고 있다. 

#3│앞서 언급된 ‘이지스’처럼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새로 만든 무기 시스템에 옛 신화에 나오는 이름 등의 고유명사, 또는 자주 나오는 사물의 이름이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신화에서 ‘바스테트(Bastet)’는 검은 표범 즉 ‘흑표’ 모습을 한 신이다. 이 신은 왕국의 수호신이자 이집트 최고의 신인 태양신 ‘라’의 경호를 맡고 있다. 제우스를 경호하는 아테나와 같은 역할이다. 한국의 최신 탱크인 K2의 이름이 바로 ‘흑표’다. 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K9 자주포의 이름은 ‘선더(thunder)’이며 요즘 뒤늦게 수출 대박 조짐이 보이는 FA-50 경공격기의 이름은 ‘파이팅 이글(fighting eagle)’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천둥은 침략자 등 악을 응징하는 제우스의 주요 무기이며, 독수리는 ‘이토스 디오스(Aetos Dios)’라는 이름으로 제우스의 권위를 상징하는 홀(笏)의 수호자다. 

요즘 한국의 방위산업(이하 방산)이 잘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시작 이후 자국 방위가 위기에 처한 폴란드가 최근 K2 980대, K9 670문, FA-50 48기 등을 주문했다. 이는 25조원 이상의 금액으로 한국의 방산 수출 역사에서 최대 규모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UAE)에 4조원 이상의 미사일 시스템을 수출한 데 이은 성과다. 지난 5년간 한국의 방산 수출이 세계 8위를 기록하고, 그 증가율은 세계 최고였지만 올해는 더 나아가 세계 5위권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2021년 방산 수출액은 70억달러(약 9조3170억원)를 넘어선 데다 올해는 폴란드 수출을 제외하고도 100억~150억달러(약 13조3100억~19조9650억원) 이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방산의 토대를 만든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주 국방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무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방산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70년 설립돼 지금까지 수많은 무기 체계를 개발해온 국방과학연구소(ADD)도 그의 산물이다. 오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업고 중화학공업과 방산을 동시 발전시켜 상호 간의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주도했던 인물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이런 초석 위에 시작한 한국의 방산이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다.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지난 70여 년간 꾸준히 남침 위협을 받아왔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서부터 전 세계 패권 장악 의지를 노골화한 중국과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이 새 위협이 돼 왔다. 역사상 타국을 침략한 적은 없지만, 베게티우스의 말처럼 평화를 위해 늘 전쟁에 대비해 온 한국은 역대 정부와 방산 기업들이 관련 산업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왔다. 전술한 대로 한국 무기에 붙는 이름도 수호, 방어, 경호를 뜻하는 무기 체계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둘째, 60만 명가량의 상비군 수를 유지하며 무기 수요가 대량으로 유지되다 보니 국내 방산 기업들의 가동률이 유지돼 관련 인력과 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또한 한국군은 구매한 무기를 현장에서 테스트하면서 그 결과를 방산 업체에 전달해 품질과 기술 발전을 끊임없이 촉진하였고, 대량 발주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로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했다. 

셋째, 미국 등 타국의 경우 방산 업체들의 대부분이 방산에만 특화된 기업이지만 한국 방산 업체들은 대기업 집단 산하의 민간 기업이어서 시장 경쟁으로 단련된 납기, 원가, 품질 3대 원칙의 DNA가 방산에도 반영돼 현재 같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넷째, 한국의 방산은 이 나라의 독특한 경제 구조에도 힘입은 바 크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욕을 먹고 있는 ‘재벌’들의 ‘문어발’ 경영으로 한국은 반도체 등 전자부터 자동차, 조선 등이 골고루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한 ‘세트(set)형’ 경제 구조가 됐다. 전투기, 장갑차, 군함 등 무기 체계는 이들 산업의 발전에 크게 의존하니 이러한 경제 구조는 자연스레 국내 방산 발전을 뒷받침하게 됐다. 특히 요즘 방산 제품들이 갈수록 정보기술(IT)화해 반도체 등이 필수 부품이 됐다는 점도 세계 최강의 반도체 산업이 한국의 방산 발전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것도 전선에 보충해줄 새로운 무기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가 서방 측의 제재로 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방증이다. 

방산은 이제 한국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산업이 됐다. 먼저 이 산업의 생산, 부가가치, 고용 등의 유발 효과는 모두 제조업 평균을 상당히 상회한다. 또 방산은 수출 효자 산업으로 올라서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올해 방산 예상 수출액인 150억달러(약 19조9650억원)는 15대 수출 품목에도 올려놓을 수 있는 규모다. 2021년 기준으로 섬유, 가전, 이차전지보다 큰 규모이며, 컴퓨터 바이오 헬스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향후 전망은 더욱 밝다.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 경제화로 안도에 빠진 세계가 앞다퉈 국방비를 줄여온 탓에 각국의 방산 기반이 크게 약화한 상태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침략 야욕이 구체화하고 있는 지금, 각국에 신속하고 저렴하며 우수한 무기를 공급해줄 나라는 한국 외에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레드백’이라는 장갑차가, 중동에서 ‘천궁’ ‘비호복합’등 지대공 무기 체계가, 말레이시아의 FA-50, 노르웨이의 K2 등의 수출 성사 전망도 매우 긍정적이다. 500여 대의 미국 공군, 해군의 차기 훈련기 사업에도 FA-50 선정 가능성이 크다. 

1960~70년대 당시 정부의 구호는 ‘싸우면서 건설하자’였다. 국방과 경제 건설을 동시에 챙기자는 의미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6대 군사 강국으로 올라서서 그 방산조차도 경제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니, 박정희의 혜안을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