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브랜드팀장

유명해지고 긍정적 연상을 보유하게 되면 그 브랜드는 힘센 브랜드가 된다. 브랜드가 힘이 세졌다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브랜드 자산’이 잘 구축됐다고 표현한다. 잘 구축된 브랜드 자산은 마케팅에도 활용된다.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 전략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브랜드가 확보한 인지도와 충성도 등을 신제품에 그대로 전이시키기 위해 신제품 이름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기존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동일한 제품군 내에서 확장할 때는 ‘라인 확장’, 다른 제품군으로 확장하는 것은 ‘카테고리 확장’이라고 한다. 농심에서 신제품으로 볶음면을 출시하면서 ‘신라면 볶음면’으로 브랜드를 정한 것은 라인 확장이다. 반면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갤럭시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는 제품 카테고리가 다르다. 그러므로 갤럭시 디지털카메라는 카테고리 확장이다.

그런데 갤럭시 디지털카메라는 실패했다. 보통 브랜드 확장은 카테고리 확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렵다. 다른 카테고리로 확장하더라도 카테고리의 유사성이나 사용자 관련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1980년대 치약으로 유명한 미국의 콜게이트가 냉동식품 사업에 뛰어든 적이 있다. 당시 냉동 스파게티 등을 출시하면서 콜게이트를 브랜드로 사용했다. 높은 인지도와 기본적인 신뢰감을 얻겠다는 의도였다. 용감한 카테고리 확장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 사례에 이름을 남긴 채 사라졌다.

여성용 향수로 유명한 샤넬도 남성용 향수를 출시하면서 샤넬 브랜드를 확장해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샤넬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전달해 왔던 ‘트렌디한 여성’ ‘성공한 여성’ 등의 브랜드 정체성이 너무 확고한 탓에 남성 시장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닥스, 레노마, 엘르…브랜드 라이선싱의 시작

소비자는 유명한 브랜드를 좋아한다. 유명 브랜드를 선택하면 잘 모르는 브랜드에 비해 ‘실패할 가능성이 작다’고 추론해서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는 기본적인 신뢰도의 필요 조건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체 브랜드가 없거나 있더라도 유명하지 않으면 ‘라이선싱(Licensing·상표권 취득)’을 활용한다.

브랜드 라이선싱은 이미 성공한 다른 브랜드에 로열티(사용료)를 지불하고 해당 이름을 빌려오는 것이다. 높은 인지도가 확보된 브랜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1970년대 국내 주요 패션 회사들이 해외 브랜드를 도입한 것이 브랜드 라이선싱의 시작이었다. 당시 삼성물산, 반도패션 등이 선두 주자였다. 1973년 삼성물산은 ‘맥그리거’를 론칭했고, 이후 라이선싱을 통해 성장하자 국산 브랜드 ‘위크엔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반도패션의 만시라스, 롯데의 벨로즈, 신영의 와코루 등도 잇따라 선보였다. 1983년 LG패션(현 LF)은 ‘닥스’를 론칭했고, 가장 성공적인 라이선스 브랜드로 LF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그 뒤 레노마, 엘르 등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라이선스 브랜드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특히 엘르나 레노마의 경우 의류는 물론 잡화까지 서브(하위) 라이선스가 20~30종에 달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가 더 이상 작지 않은 것으로 인정받으면서 국내 업체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직접 진출하기 시작했다. 보통 패션 브랜드는 크게 수입 브랜드와 국내 브랜드로 나뉜다.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것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등장하고 있는 라이선스 브랜드다. 외국 브랜드지만 제품 생산은 국내 기업이 하는 식이다. 최근엔 패션 브랜드가 아닌 상표를 구매해 패션 브랜드로 변모시키는 것이 추세가 됐다.

 

1 최근 국내에서 라이선스 브랜드로 뜨고 있는 브랜드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LB, CNN, 코닥, UFC,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각 사 2 치약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의 콜게이트가 출시한 냉동식품. 사진 브랜다임앤파트너즈
1 최근 국내에서 라이선스 브랜드로 뜨고 있는 브랜드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LB, CNN, 코닥, UFC,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각 사 2 치약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의 콜게이트가 출시한 냉동식품. 사진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브랜드 확장과 브랜드 라이선싱의 결합

내가 아는 한 지인은 최근 미국인 친구로부터 “한국에 왜 이렇게 내셔널 지오그래픽 직원이 많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외투를 입은 사람들을 그 회사 직원으로 생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선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브랜드 전략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테고리 확장과 브랜드 라이선싱을 결합한 창의적인 마케팅이 등장한 것이다. 비(非)패션 글로벌 브랜드를 라이선싱으로 들여와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 버렸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이 같은 브랜드 확장과 라이선싱의 결합을 ‘K라이선스’라고 부른다. 시작은 1997년 론칭한 MLB였다. MLB는 미국 프로야구 리그의 이름이다. 국내 인기를 바탕으로 2019년부터 중국 시장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디스커버리의 성공이 K라이선스의 활성화에 밑바탕이 됐다. 2012년 론칭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의 라이선스 브랜드다. 디스커버리가 야생, 탐험, 생존 등을 다루는 채널이라는 점을 감안해 브랜드의 에센스(정수·精髓)를 ‘탐험의 즐거움’으로 정했다. 차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로 소비자 인식에 자리 잡은 배경이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디스커버리로 하지 않고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expedition·탐험)’으로 정했다. 영민한 전략이었다.

2020년 론칭한 ‘코닥 어패럴’은 2012년 파산한 미국의 카메라 필름 브랜드 ‘코닥’의 라이선스를 사 와서 만든 패션 브랜드다. 이젠 팬암(항공사), CNN(방송 채널), 빌보드(음악 잡지), 폴라로이드(필름 제조사) 등도 패션 시장에 진입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맞춰 피파(FIFA·국제축구연맹) 브랜드를 적극 활용한 기업도 있었다. 모두 인지도나 호감도가 높은, 즉 기존의 브랜드 자산이 탄탄한 브랜드를 국내에서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시키는 형태다.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인 ‘빌보드(Billboard)’도 최근 국내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사진 빌보드 어패럴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인 ‘빌보드(Billboard)’도 최근 국내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사진 빌보드 어패럴

K라이선스 브랜드의 성공 요인

유통 측면, 제품 특징, 헤리티지(heritage·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유산) 활용을 K라이선스 브랜드의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우선 온라인에서 출발해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유통 전략을 썼다. 글로벌 브랜드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기에 오프라인에서의 접점이 없어도 기본 인지도만큼은 탄탄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온라인에서 브랜딩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반응성이 좋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세대)와 교감을 중시했다.

둘째로 ‘로고 플레이’의 유행과 맞물렸다. 로고 플레이란 옷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브랜드 로고를 눈에 띄는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과감한 로고 플레이의 특징이 자신의 개성을 패션으로 드러내려는 소비자, 특히 MZ 세대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헤리티지, 즉 세계관을 잘 활용했다. 팬암은 브랜드 철학을 ‘라이프 저니 기어(Life Journey Gear)’라고 주장한다. ‘인생 여정에 필요한 도구’라고 브랜드 성격을 스스로 규정지은 것이다. K라이선스 브랜드 팬암이 ‘여행’을 에센스로 내세우는 것은 이런 브랜드 헤리티지와 연결한 것이다. 코닥은 필름 브랜드다. 사진 찍는 것과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여행과 연결해 브랜드를 풀어냈다. 다큐멘터리 채널인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디스커버리가 아웃도어 감성과 브랜드를 연결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