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작년 12월 19일 국채 발행 잔액 1065조6000억엔(약 1경297조원) 중 일본은행 보유분이 535조6000억엔(약 5141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국채 발행 잔액의 50.26%로, 이 비율이 절반을 넘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10년 전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은 10%대 수준이었다.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가 늘어난 배경에는 지난 10년간 양적 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대변되는 ① 아베노믹스가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 국채가 발행될 때마다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강도 높은 양적 완화 정책을 펼쳤다. 시장에 통화를 풀어 오래 지속된 저물가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2022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심화로 미국을 포함,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렸지만,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0.1%)를 그대로 유지했다. 미국은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0.25%에서 4.5%까지 빠르게 올렸고, 이 때문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도 4.2%까지 올랐다. 반면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정책 상한선인 0.25% 이하에 머물러 있었다. 양국 간 기준금리와 채권 금리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엔저는 일본의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지난 11월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7%로,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 수장인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12월 20일 기존에 적용해 온 ②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을 일부 변경했다. 이 정책의 대상인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 상한선을 0.25%에서 0.5%까지 높이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은행의 변화된 움직임은 향후 일본의 통화 정책이 긴축으로 바뀔 수 있고, 금리도 인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웠다. 아베노믹스 정책을 뒷받침했던 구로다 총재가 올해 4월 퇴임하면 이러한 기대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관측된다. 필자 역시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 변경을 통해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상한선을 0.5%까지 확대한 것은 기준금리 인상에 버금가는 조치”라며, “2023년은 저금리와 초완화 통화 정책을 펼쳐온 일본의 정책 변화가 기대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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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일본은행 총재.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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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은 작년 12월 20일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상한선을 0.25%에서 0.5%로 확대했다. 발표 직후, 일본 엔화는 달러 대비 3% 절상됐고, 닛케이225지수는 2.5%까지 하락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투자자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채권 금리를 제로 바운드(zero-bound)에 가깝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채권 시장에 개입해왔다. 채권 시장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재임 기간이 끝날 무렵인 2023년 4월 초까지는 기존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구로다 총재가 10년물 국채 시장에 더 많은 융통성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구로다 총재의 이번 결정은 옳다고 본다.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의 변화는 장기적인 금리 인상에 버금가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 상한선 범위를 넓힘으로써 금리 인상을 하지 않고서도 물가 상승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을 수정한 것은 지난 10년간 시행해 온 초완화 통화 정책의 변화를 암시하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3년 구로다 총재 임명 이후 물가 상승률은 0~2%에만 머물렀고, 애초 목표치였던 2%를 넘지 못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은 심화됐고, 일본은행의 물가 정책은 실패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정책이 옳다고 믿었다. 일본은행이 목표치 이하의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견고하게 성장시키는 균형을 맞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크게 오른 상태다. 2022년 1월에는 0.2%였지만, 4월에는 2.1%, 11월에는 3.7%까지 상승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상승세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 통화 약세에 따른 것이다.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글로벌 공공정책학 교수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전 국제통화기금 수석연구원, 전 일본경제학회 회장,전 일본 재무성 차관보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글로벌 공공정책학 교수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전 국제통화기금 수석연구원, 전 일본경제학회 회장,전 일본 재무성 차관보

그럼에도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 11월 미국(7.11%), 영국(10.7%), 유로존(10.1%)보다 훨씬 낮았기에 일본은행은 12월 20일에도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데도 ③ 마이너스 금리 정책(-0.1%)을 고수한 것이다. 엔화 가치 역시 빠르게 떨어졌다. 일본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들은 2023년 물가 상승률이 1.6%로 다시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새해 물가 상승률이 2%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일본은행의 예측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첫째, 지난 11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고공 행진 중인 에너지와 식품 가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은 2.8%였다. 이는 2023년에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이 멈추더라도 물가 상승률이 2% 이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2022년의 높은 물가 상승률을 부분적으로 보완하고,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이익을 재분배하기 위해서 2023년에는 큰 규모의 임금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실질적인 임금 인상은 많은 가구의 상대적 소비력을 증가시켜서 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2023년은 일본 내 통화 정책 변화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2023년은 지난 10년간 지속해온 일본의 초완화 통화 정책이 끝나고, 정책 변화를 통해 행복한 결말을 가져올 해가 될지도 모른다. 새해가 일본은행이 자국 내 경제 성장을 위한 물가 상승 목표치를 달성하면서도, 평가 절하된 통화 가치를 안정화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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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는 통화 유동성 확대를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는 고(故)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 부양책이다. 아베 전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2012년 가을에 나온 말이다. 그는 20년간 계속된 일본의 경기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연간 물가 상승률 2%를 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 통화 공급 확대, 엔화 평가 절하, 인프라 투자 확대 등 경제 성장 정책을 추진했다.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은 중앙은행이 장기 채권 금리에 일정한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채권을 매수·매도하는 정책을 뜻한다. 특정 만기 국채 금리를 목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해당 국채를 사고파는 정책이다. 이는 일반적인 양적 완화보다 적극적인 통화 정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과다한 국채 발행으로 국채 금리가 상승하자 이를 낮추기 위해 1942년부터 1947년까지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을 펼친 바 있다. 일본은 2016년 1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작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변하자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이 정책을 다시 도입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예금이나 채권 등에서 금리 혜택을 볼 수 없는 정책을 의미한다. 금리가 0% 이하인 상태로 예금을 하거나 채권을 매입할 때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보관료’ 개념의 수수료를 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시중은행은 일정액 이상의 돈을 보유하고 있으면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는데, 중앙은행이 이에 대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정책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시중은행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실행하도록 유도해 경기를 부양하고, 물가 상승을 유인하기 위해서 시행된다. 마이너스 금리는 일반인과 기업 예금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고, 시중은행과 중앙은행 간 예금에 대해서만 적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