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웨이 얼음정수기. 사진 코웨이
코웨이 얼음정수기. 사진 코웨이

특허는 미래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게임 체인저’다. ‘잘 만든 특허 하나가 열 직원 안 부럽다’는 기업인들의 말처럼 특허는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무기다.

‘벨의 전쟁’으로 불리는 특허 분쟁은 특허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다. 미국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 특허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600회에 걸쳐 법정에서 투쟁했다. 이 특허를 기반으로 그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미국 통신 시장을 100년 이상 지배하고 있는 AT&T다.

국내에서도 특허 분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호나이스(청호)와 코웨이의 ‘얼음정수기’ 특허 소송이다. 두 기업은 2014년부터 정수기에서 얼음을 만드는 특허 기술을 둘러싸고 8년째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승기는 청호가 잡고 있었다. 1심은 청호가 코웨이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 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코웨이가 청호에 10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광만)는 최근 청호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코웨이의 얼음정수기가 청호의 특허를 침해한 게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전쟁의 판을 뒤집은 일등 공신은 법무법인 광장의 지식재산권(IP) 팀이다. 광장은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출신 김용섭(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와 대법원 지식재산권 전담조 연구관 및 서울고법 지식재산권 전담부 판사 출신 김운호(23기) 변호사, 서울대 공대 출신 곽재우(39기)·송기윤(변호사시험 6회) 변호사 등으로 소송 팀을 구성했다. 청호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법무법인 율촌을 선임해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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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이어진 얼음정수기 분쟁

두 회사의 특허 분쟁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호는 “코웨이가 출시한 ‘스스로 살균 얼음정수기’가 자사의 ‘이과수 얼음정수기’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권 침해 금지 및 255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과수 얼음정수기의 핵심 기술은 증발기를 이용해 물을 냉각시켜 얼음을 만드는 것인데, 코웨이가 비슷한 기능의 정수기를 출시했다는 취지였다.

1심은 코웨이가 청호의 특허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코웨이 제품에 사용된 기술과 청호가 보유한 기술에 차이가 있지만, 기술상의 핵심이 아닌 비본질적인 부분에서 두 정수기의 구성은 같다고 볼 수 있다”며 “코웨이가 청호에 10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고 스스로 살균 얼음정수기의 생산과 대여, 원자재 및 기계 설비를 모두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코웨이가 반격에 나섰다. 2016년 청호를 상대로 특허 등록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청호의 특허를 무효로 판단하면 청호가 더 이상 특허 침해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웨이는 청호의 특허가 진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허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청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반적인 기술자가 쉽게 따라 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기술적 차이점이 있고, 일부 요소는 구체적인 구성과 그 작동 방식이 선행 발명과 차이가 있다”며 청호의 특허를 인정했다. 법조계에서는 특허권 침해 소송과 특허 등록 무효 소송에서 연달아 승기를 잡은 청호가 항소심에서도 승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광장의 뒤집기

특허권 침해 소송과 특허 등록 무효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한 코웨이는 2021년 7월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했다. 광장은 즉시 앞선 소송 기록과 코웨이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특허, 선행 기술 등을 모아 검토했다.

이후 광장은 청호의 특허 명세서를 뜯어보고, 실제 출시된 정수기로 얼음을 만드는 실험을 통해 두 정수기의 핵심 작동 원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청호의 얼음정수기는 물의 온도를 먼저 낮춘 후 냉수로 얼음을 만드는 ‘선(先) 냉각 후(後) 제빙’ 방식이라면, 코웨이는 물의 온도와 상관없이 정수로 얼음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구분을 해냈다.

특허 침해는 ‘문언 침해’와 ‘균등 침해’ 두 가지로 구분된다. 문언 침해는 특허 청구 범위에 기재된 모든 구성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고, 균등 침해는 문언 침해에 따른 판단만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나타나게 되는 불합리성을 보완하기 위해 어느 정도 구성 요소가 다르다고 해도 특허 침해를 인정해주는 법리다.

청호는 문언 침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코웨이가 자사 제품을 유사하게 모방해 특허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광장은 두 제품의 작동 원리를 세밀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침해 대상 제품이 특허 발명과 과제 해결 원리’가 동일하다면 균등 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 것이다. ‘물로 얼음을 만드는 정수기’라는 점에서 두 제품이 유사해 보이지만, 얼음을 만들기 위한 선행 과정이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광장은 문구만으로 설명하기보다 두 제품의 ‘제빙 사이클’을 그래프로 만들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얼음의 투명도를 통해 작동 원리가 다르다는 점을 입증했다. 제빙 원수의 온도가 낮을수록 물속에 용존 기체가 많은데 제빙 과정에서 빠져나온 용존 기체가 얼음 내에 공극(孔隙)으로 남아 얼음을 불투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운호 변호사는 “코웨이는 정수로 제빙하기 때문에 투명한 얼음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항소심은 두 회사 기술의 핵심 원리가 다르다고 판단해 코웨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청호의 특허는 ‘냉수를 제빙 원수로 사용한다’는 것인데, 코웨이 정수기는 냉수가 아닌 12~16℃의 물로도 얼음을 만들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작동 원리 차이로 인해 청호 정수기는 외부 온도와 상관없이 일정하게 제빙량을 유지하지만, 코웨이 정수기는 외부 온도에 영향받는 등 작용 효과에도 차이가 있다고 봤다.

김운호 변호사는 “특허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기술 그 자체는 아니다. 특허는 기술을 문서화한 것인데 이는 법률과 기술의 접점에 있는 것이고, 그 접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문서의 바탕이 된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서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며 “이번 사건은 균등 침해의 법리를 정확하게 적용한 경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