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페이 사용자는 돈이 부족해도 애프터페이를 통해 원하는 상품을 먼저 구매하고, 나중에 무이자로 갚을 수 있다. 사진 애프터페이
애프터페이 사용자는 돈이 부족해도 애프터페이를 통해 원하는 상품을 먼저 구매하고, 나중에 무이자로 갚을 수 있다. 사진 애프터페이

8월 1일(현지시각) 미국의 대형 모바일 결제 업체 스퀘어가 호주의 선구매 후 지불(BNPL· Buy Now, Pay Later) 서비스 1위 업체 애프터페이를 290억달러(약 33조176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90억달러는 스퀘어가 지금까지 추진한 인수 거래액 가운데 가장 크고 호주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다. 두 회사는 모든 인수 절차를 2022년 1분기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이자 스퀘어 최고경영자(CEO)인 잭 도시는 인수 발표 후 성명을 통해 스퀘어와 애프터페이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퀘어는 금융 시스템을 더 공정하고, 접근성 높고, 포용적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영위해왔다”라며 “애프터페이는 창립 이래 이런 원칙에 부합하는 신뢰성 있는 브랜드를 구축했다”고 했다.

BNPL 서비스 기업이 애프터페이만 있는 건 아니다. 스웨덴에는 애프터페이보다 더 큰 ‘클라나’가 있고, 미국에도 ‘어펌’이라는 회사가 있다. 스퀘어는 애프터페이의 어떤 점에 반해 33조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을까. ‘이코노미조선’이 애프터페이의 매력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 | 민첩한 창업자들

BNPL은 말 그대로 ‘지금 사고 결제는 나중에 한다’는 말로, 후불 결제를 의미한다. 소비자가 제품을 신용 구매하면 후불 결제사인 애프터페이가 구매 대금 전액을 소비자 대신 가맹점에 지불하는 구조다. 이후 소비자는 정해진 납부 기간에 맞춰 애프터페이에 상환하면 된다.

여기까지 보면 신용카드를 활용한 기존 신용 구매와 똑같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BNPL은 모바일 앱만 내려받으면 곧장 이용할 수 있는 간편결제 서비스다.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처럼 신용등급 조회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또 BNPL은 무이자를 기본으로 한다. 애프터페이 사용자는 연체만 하지 않는다면 수수료를 낼 일이 없다. BNPL 업체는 사용자가 아닌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가맹점이 순순히 수수료를 내는 건 판매 대금 전액을 곧장 받을 수 있고, 후불 결제 덕에 소비자 유입을 크게 늘릴 수 있어서다.

애프터페이 공동 창업자인 앤서니 에이젠과 닉 몰나는 2014년 호주 시드니 로즈베이의 한 주택에서 애프터페이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할부 결제가 활성화하지 않았고 신용카드 발급 기준도 엄격한 호주 결제 시장의 틈새를 BNPL 서비스로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들은 호주의 급여 지급 패턴이 대개 2주 단위인 것에 착안해 격주로 무이자 상환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신용카드 발급에 어려움을 겪던 사람, 주머니는 가볍지만 할부로라도 사고 싶은 게 많은 사람 등을 중심으로 애프터페이 수요는 빠르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애프터페이를 쓰는 소비자는 1600만 명이다. 애프터페이를 도입한 가맹점은 10만 곳이다. 연간 매출은 156억달러(약 17조8464억원) 수준이다.

두 창업자의 빠른 상황 판단은 미국 시장 공략 과정에서도 잘 나타났다. 올해 들어 호주 금융 당국은 후불 결제 산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애프터페이 경영진은 재빨리 아마존·나이키·CVS·세포라 등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굵직한 가맹점 13곳과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2 | MZ 세대 취향 저격

BNPL 서비스는 글로벌 경제의 소비 주체로 부상 중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 1981~2010년생)의 특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MZ 세대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상품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가 2020년 4월 발표한 ‘글로벌 명품 업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명품 시장의 주요 소비층은 1980~95년 출생자인데, 이들의 명품 시장 기여도는 35%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2025년이 되면 MZ 세대의 기여도가 60%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의 2020년 명품 매출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0.7%, 46%에 달했다.

문제는 상당수 MZ 세대의 경제력이 아직은 가치관대로 살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채워줄 도우미로서 간편결제·후불·무이자를 무기로 하는 BNPL은 제법 쓸 만한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두 애프터페이 창업자는 미래의 소비 주축 세력에게 가장 적합한 결제 모델을 창업 아이템으로 고른 셈이다.

호주 ABC방송은 패션 아웃렛 ‘어반아웃피터스’, 미국 배우 겸 모델 킴 카다시안이 만든 뷰티 브랜드 ‘KKW 뷰티’ 등 MZ 세대가 열광하는 많은 판매 플랫폼이 애프터페이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소비자의 온라인 구매와 후불 결제 건수를 크게 늘렸다. 작년 하반기 기준 애프터페이를 통한 결제 대금은 전년 동기 대비 115.2% 증가했다. 2020년 이후 주가 상승률은 350%를 웃돈다.

스퀘어가 여러 BNPL 서비스 업체 가운데 애프터페이를 선택한 것도 이 회사의 시장 내 입지를 인정해서다. 스퀘어는 애프터페이를 자사 내 ‘셀러 앤드 캐시 앱’ 사업부와 통합해 더 많은 소매점이 BNPL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스퀘어는 BNPL 기능을 추가해 자체 셀러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고, 애프터페이 가맹점을 통해 다른 국가로 결제 영역을 확장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3 | 규제 대응 위한 강력 자문위원단

정치권이나 규제 당국의 눈에 애프터페이 같은 기업은 마뜩잖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신용 구매의 벽을 너무 낮추다 보면 빚쟁이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젠과 몰나 창업자는 회사 설립 이후 여러 차례 의회 질의나 정부 미팅에 불려 나가 “일정 한도에 도달하면 소비자가 돈을 쓸 수 없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해야 했다.

애프터페이 경영진은 진출한 국가 정부와 의회를 잘 설득하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자문위원을 고용했다.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피터 코스텔로 전 호주 재무장관의 보좌관이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측근인 데이비즈 가자드, 데미안 카삽기 우버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이사 등도 애프터페이에 합류했다. ABC방송은 애프터페이가 자문위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