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미 아이오와대 노동경제학 석·박사, 전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전 국가인적자원개발단장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미 아이오와대 노동경제학 석·박사, 전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전 국가인적자원개발단장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의 사무·기술직 노동조합(노조)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직무와 성과에 따른 공정 보상을 요구한다. 네이버 등 IT(정보기술) 서비스업에서는 2018년 노조가 만들어졌고,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은 최근 들어 기존의 생산직 노조와 별도의 사무·기술직 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대해 여론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듯하다.

기대하는 사람들은 현대자동차처럼 툭 하면 파업을 벌이는 대기업 강성노조에 질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만들어진 586 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중심의 ‘87 노사관계체제’를 허물기를 바라고,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준 MZ 세대의 표심에 고무된 것 같다.

우려하는 사람들은 MZ 세대가 보상의 공정성을 내세우지만, 이 또한 집단이기주의 논리로 이용되고 결국 임금을 과도하게 올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노동 시장을 양극화시켜 ‘87 노사관계체제’의 모순이 유지될 수 있다는 우려다.

MZ 세대는 대학가의 전통을 무너뜨렸다. 학번순이 아니라 1학년이라도 조예가 있으면 동아리 회장을 맡고 2~3학년 선배도 시험을 보고 가입하게 했다. ‘이념형 동아리’는 문 닫았고 취업과 재테크 중심의 ‘지식 동아리’가 대세가 됐다. 학연과 지연으로 뭉친 폐쇄형 동아리 대신 취미나 관심에 따라 연결된 개방형 동아리를 만들었다.


MZ 세대가 주축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무·연구직 노조가 4월 26일 출범했다. 김건우(왼쪽) 노조위원장이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한 노조 설립신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17년 6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 노조가 진행한 임단협 투쟁 출정식. 사진 연합뉴스
MZ 세대가 주축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무·연구직 노조가 4월 26일 출범했다. 김건우(왼쪽) 노조위원장이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한 노조 설립신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17년 6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 노조가 진행한 임단협 투쟁 출정식. 사진 연합뉴스

MZ “노조는 투쟁의 도구 아냐”

집단 사고보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이들의 성향을 보면 MZ 세대는 그들의 부모에 속하는 586 세대가 만든 노조와 다른 가치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를 투쟁의 도구로 보고 대립적 노사관계를 추구하기보다 노조도 경력 개발과 네트워크 개발 등 인적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MZ 세대는 보상에 대한 욕구가 더 크고 노조의 결속력과 기업에 대한 충성심은 약해 기성 세대의 노조처럼 임금만 올리고 생산성 향상에는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세대의 특성상 노조와 거리가 먼 MZ 세대가 노조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자동차가 제조업에서 자율주행 모빌리티 기업으로 바뀌고, 네이버가 글로벌 IT 플랫폼 기업으로 나아가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술 변화에 따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단순 노동보다 문제 해결과 소통이 강조되는 창의적 노동이 더 필요하지만 보수체계는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또 창의적 노동을 하는 고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는 산업 전반에 늘고 있지만 인력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고 노동 강도는 세지고 있다. 기술 개발의 속도까지 빨라져 숙련 인력의 스트레스는 커지는 반면, 기업의 문화는 경직적이다. 현대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은 생산직 중심의 노사관계 때문에 사무·기술직은 성과 배분에서 소외된다. 노동 시장의 환경 변화와 보수체계의 괴리가 지속되는 한 MZ 세대의 노조 설립은 이어질 것이다.

기업은 기술 혁신만큼 노조와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근로자의 스트레스와 불만은 줄이고 직장생활의 만족도를 높이도록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대표적인 IT 기업이자 선망받는 직장인 구글은 ‘20% 룰’을 도입했다. 모든 직원에게 주당 근로 시간의 20% 이상을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쓸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글은 창의적인 노동을 촉진하고 근로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했고, G메일과 구글 맵을 개발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기업인 보쉬는 전 직원을 팀으로 편제해 보쉬를 이길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도록 했다. 아이디어가 채택된 팀은 일상 업무에서 8주 동안 벗어나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노사관계를 안정화하고 숙련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된다. 기술 혁신에 맞게 조직 혁신과 인적 자본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고임금-고생산성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한 것이다.


노동 정책도 기술 전환에 맞춰 혁신해야

정책이 기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87 노사관계체제’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노조 중심의 정책은 기술 변화와 노동 시장이 괴리되도록 했다.

그 결과, 제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대기업의 고용은 줄어 10%의 대기업·공공 부문 정규직·조합원과 나머지 90%의 비(非)노조 근로자로 단절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대로 정년만 연장하면 불평등은 더 커진다. 기술 혁신은 숙련에 따른 임금·고용 격차를 벌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숙련 인력을 대폭 양성하도록 정책을 혁신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커진다.

미국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한 비결은 숙련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교육의 경쟁력에 있다. 그런데도 기술 혁신의 속도가 너무 빨라 불평등이 커지자 직업교육 훈련을 국가적으로 강화했다. 노동수요 측면에서도 불평등을 억제했다. 고소득 근로자에 대해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외해 임금 인상의 압력을 줄였고, 노사는 자유 계약에 따라 경쟁 금지 조항을 도입해 고숙련 인력 빼가기를 막았다.

MZ 세대의 노조 설립은 기술과 산업의 대전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법제도가 환경 변화와 역행하고 경직적으로 될수록 노사 불신과 불평등은 커진다. MZ 세대는 이런 문제로 아픔을 경험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졸업이 실업으로 되고,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며, 운 좋게 대기업에 입사해도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환경 변화와 제도의 괴리로 피해를 보는 계층은 MZ 세대만이 아니다. IT 기술과 서비스가 경제를 이끄는데 제조업·공장 노동 중심의 제도를 고집해 자본과 일자리는 해외로 유출되고 중산층 일자리는 줄었다. 뒤늦은 한류에 힘입어 IT 서비스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이 또한 쇠락하는 제조업의 길을 밟기 십상이다. 거대 시장에다 기술 혁신을 등에 업은 중국의 급성장으로 한국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 위협받고 있다.

MZ 세대의 노조 설립은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또 기업의 경영 혁신과 정부의 정책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