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에 담긴 쿠팡 주요 사업을 소개하는 사진들. 사진 쿠팡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에 담긴 쿠팡 주요 사업을 소개하는 사진들. 사진 쿠팡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물류 기업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을 신청했다. 쿠팡은 2월 1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클래스A 보통주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실제 상장하는 회사는 국내에서 온라인 쇼핑몰 등을 운영하는 한국 법인 쿠팡의 지주회사인 미국 법인 ‘쿠팡LLC’다. 이 회사는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쿠팡LLC는 이번 상장을 준비하며 사명을 주식회사 ‘쿠팡INC’로 변경했다.

쿠팡은 ‘CPNG’라는 종목 코드로 상장할 계획이다. 상장될 보통주 수량 및 공모 가격 범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향후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를 한 뒤 공모 가격이 결정될 예정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이르면 3월 또는 4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쿠팡의 기업 가치를 500억달러(약 55조원)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뉴욕 증시 상장 외국 기업 중 2014년 중국 알리바바에 이은 두 번째로 큰 기업공개(IPO)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 가치 55조원은 2월 17일 코스피 종가 기준으로 국내에서 쿠팡과 경쟁하는 유통·물류 기업인 이마트(5조2000억원), 롯데쇼핑(3조3200억원), CJ대한통운(3조9800억원)의 시가 총액을 모두 합한 금액의 4.4배에 달하는 규모다.


“글로벌 자금으로 세계에 우뚝 선다”

쿠팡은 그동안 글로벌 투자를 받으며 성장했다.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벤처캐피털인 알토스벤처스 등 해외 벤처캐피털로부터 약 4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쿠팡은 이 거대 자금을 바탕으로 고객이 밤 12시 이전에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받을 수 있는 로켓배송 등의 혁신적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며 고속 성장했다.

이번에도 쿠팡은 한국이 아닌 전 세계 투자 자금의 50% 이상이 몰리는 최대 자본 시장인 뉴욕 증시를 택했다. 이를 통해 추가 물류 시스템 구축 등 쿠팡이 그리는 계획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쿠팡의 결정은 ‘글로벌 자본을 한국으로 끌어들여 세계에 우뚝 서야 한다’는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경영 철학이 크게 반영됐다. 김 의장은 창업 이듬해인 2011년 나스닥 상장 계획을 밝혔고, 이후 꾸준히 글로벌 투자 유치를 강조해왔다.

조 단위 누적 적자도 쿠팡의 뉴욕 증시 선택 배경으로 풀이된다. 쿠팡의 누적 적자는 지난해 말 기준 41억1800만달러(약 4조5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4억7490만달러(약 5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19년 6억9880만달러(약 7000억원)보다는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 사업 이익 등을 평가하는 국내 증시 상장 요건을 맞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반해 미국에선 플랫폼 기업에 대한 평가 가치가 높다. 쿠팡 입장에서 뉴욕 증시를 선택해야 상장도 수월하고 몸값도 더 높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투자가 끊긴 상황도 작용했다. 쿠팡 최대 투자자인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3분기 쿠팡에 대한 투자금 회수(엑시트·exit)를 발표했다. 쿠팡은 상장 신고서에 이번 상장을 통해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의 차등의결권 부여 여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뉴욕 증시에는 있지만 한국 증시에는 없는 제도다. 쿠팡은 김 의장 보유 주식에 ‘일반 주식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을 부여한다고 SEC에 신고했다. 상장 후 김 의장은 지분 2%만 가져도 주주총회에서 지분 58%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김 의장의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쿠팡은 애초 창업주 지분을 차등의결권 주식으로 설정하고, 투자자들에게 이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 인프라 확대, OTT 등 신규 사업 강화

쿠팡은 상장을 통해 얻은 자금을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물류 인프라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췄다.

김 의장은 미국 SEC에 제출한 보고서(창업자 편지)를 통해 “새벽배송을 넘어 ‘당일배송’으로 물류 속도를 더 높이겠다”라고 밝혔다.

쿠팡은 풀필먼트 확대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풀필먼트란 판매자의 상품을 보관, 배송, 고객 응대까지 일괄 대행해주는 서비스다. 물류센터나 거점 캠프가 많을수록 당일배송·신선배송 등 쿠팡의 강점이 강화되는 구조다. 쿠팡은 현재 10여 개의 대규모 풀필먼트를 운영하고 있고, 추후 7개가량을 늘릴 계획이다.

새롭게 진출한 OTT(Over the Top·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와 실시간 방송 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지난해 말 월 2900원에 로켓배송과 OTT ‘쿠팡플레이’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올 1월에는 실시간 쿠팡 상품 판매 방송 ‘쿠팡 라이브’를 시범 운영했다.

쿠팡은 1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직원에게 무상 부여하는 계획도 내놨다. 대상자는 쿠팡 배송 직원과 물류센터 상시직 직원, 레벨 1∼3의 정규직과 계약직 직원으로, 1인당 약 200만원 상당이다.

쿠팡은 증권 신고서를 통해 “회사 역사상 (상장이라는) 중요한 이정표를 축하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속에서 고객을 위해 헌신한 것을 인정하는 의미로 일선 직원과 비관리직 직원에게 최대 9000만달러(약 1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Plus Point

손정의 회장, 쿠팡에 3조 투자 6년 만에 21조 ‘초대박’ 기대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사진 연합뉴스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사진 연합뉴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쿠팡 상장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쿠팡에 약 3조원을 투자했다. 쿠팡 지분율은 38%가량으로 알려졌다.

쿠팡이 상장하며 시장이 평가하는 500억달러(약 55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비전펀드가 보유한 쿠팡 지분 가치는 단순 계산하면 21조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손 회장이 쿠팡에 투자한 지 6년 만에 7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손 회장이 쿠팡에 처음 투자했을 당시 시장에선 ‘무모한 투자’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쿠팡은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의 선두주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라며 성공을 자신한 그의 투자 뚝심이 ‘초대박’으로 돌아오게 됐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