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의 ‘나날들: 첫 5000일’ NFT는 6930만달러(약 796억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사진 비플
비플의 ‘나날들: 첫 5000일’ NFT는 6930만달러(약 796억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사진 비플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 시장이 혼돈에 빠지고 있다. NFT는 그림, 영상, 음악 같은 디지털 창작물이나 자산에 고유한 표식을 부여하는 암호화 기술이다. NFT 예술품 경매는 올해 초 급격히 인기를 끌며 ‘디지털 예술의 시작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지만,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함께 흔들리고 있다. NFT와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자산화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NFT 전문 분석 사이트인 논펀저블닷컴에 따르면, NFT 일 거래액은 5월 3일 1억175만달러(약 1170억)에 이르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6월 22일 현재 98% 줄어든 199만6417달러(약 22억원)로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렇자 NFT 시장이 거품이라는 우려와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부딪히고 있다.


암호화폐·메타버스 덕분에 NFT도 ‘붐’

NFT는 올해 블록체인 업계가 주시하는 키워드였다. NFT는 당초 2017년 스타트업 대퍼랩스가 개발한 디지털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를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주목받았다.

특히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시장이 커지고, NFT가 예술, 스포츠,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자 NFT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비대면 경제 전환에 디지털 바람이 거세지면서 디지털 자산 소유권, 판매 이력 등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되는 NFT가 각광을 받은 셈이다.

NFT 붐은 올해 3월 일론 머스크의 동거녀이자 팝가수 ‘그라임스’가 불을 붙였다. 그가 온라인 경매에 올린 ‘전쟁의 정령’이라는 디지털 그림 10점은 20분 만에 580만달러(약 66억원)에 판매됐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만든 작품 ‘나날들: 첫 5000일’은 디지털 작품 역사상 최고가인 6930만달러(약 796억원)에 낙찰됐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 잭 도시가 작성한 ‘최초의 트윗’ 소유권은 NFT 경매를 통해 290만달러(약 33억원)에 팔렸고, NFT가 적용된 르브론 제임스의 10초짜리 덩크슛 영상은 20만8000달러(약 2억원)에 거래됐다. 올해 4월 비트코인 가격이 8000만원을 넘고, 5월 이더리움 가격이 500만원을 웃돌면서 NFT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NFT 열풍이 뜨거워지자 대기업, NGO(비정부기구) 등도 마케팅으로 활용하거나 사업에 뛰어들었다. NFT를 만드는 데 비용과 시간이 크게 들지 않는데, 마케팅 효과가 좋고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타코벨과 피자헛, 프링글스 등은 지난 3월 자사가 판매하는 제품을 바탕으로 만든 NFT를 판매했다. 수백만원에 팔리거나 전량 매진 기록을 세워 주목받았다. 이베이는 5월 자사 온라인몰에서 NFT 판매를 허용했고 포르쉐는 6월 디지털 부문 자회사 포워드31을 통해 NFT 스타트업 팬존을 출범했다.

미국 월드비전은 NFT 스타트업 도어랩스와 손잡고 휠체어 기부에 나섰다. 도어랩스가 선보인 휠체어 그림을 기반으로 한 NFT가 하나 팔릴 때마다, 미국 월드비전이 다른 나라에 있는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기부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건호 도어랩스 창업자는 “NFT가 사회공헌, 기부의 유인이 될 수 있는지 확인 중”이라며 “향후 장애인에게 NFT 제작법을 가르치는 교육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벤처투자자들 역시 NFT 시장의 스타트업 기업들에 주목했다. 미국의 암호화폐·NFT 개발업체인 알케미는 올해 4월 8000만달러(약 920억원)를 투자받았다. 해당 펀딩에는 삼성전자 투자전문회사 삼성넥스트도 참여했다. 블록체인 축구게임 스타트업 소라레는 2월 4840만달러(약 556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NFT 거래소 오픈시는 2300만달러(약 264억원)를 모금했다. NFT 플랫폼 라리블도 올해 2월과 6월 두 차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시들해진 관심에 기대감도 엇갈려

NFT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으나, 점차 관심이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특히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가치가 하락한 것이 NFT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올해 1월부터 6월 22일까지 전 세계 월별 거래 건수는 7만→10만→17만→12만→9만→7만 건으로 다시 줄어드는 상황이다. 반 토막 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 추세와 궤를 같이한다.

제프 오슬러 S!NG 최고경영자(CEO)는 “NFT 열풍은 암호화폐 가격 상승으로 축적된 부를 과시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프레드 에르삼 코인베이스 창업자도 “3~5년 내에 NFT 10개 중 9개의 가치가 0에 수렴할 것”이라며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NFT의 장기적인 가치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IT 기술에 능통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온라인 아이템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NFT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어서다. 예술가, 게임 아이템 소유자 등도 쉽게 판매할 수 없었던 자산을 NFT를 통해 손쉽게 판매할 수 있어서 시장이 활성화될 거란 기대도 나온다. NFT는 디지털 작품이 거래될 때마다 제작자에게 수수료가 가도록 설정할 수 있어 원작자의 수익 창출을 더욱 쉽게 만든다.

NFT 대출 시장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NFT를 맡기면 대출해주는 NFT 담보 대출 플랫폼 ‘NFTfi’도 운영되는 상황이다.

라틀리에의 나디아 이바노바 최고운영책임자(COO)는 “NFT의 장기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며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기술이 성숙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시간과 돈을 소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티에 주핑어 논펀저블닷컴 공동창업자는 “NFT 사업에 진출하려는 전 세계 대기업, 은행으로부터 매일 연락을 받고 있다”며 “NFT가 죽지 않았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NFT, 환경·저작권 문제도 도마

NFT는 탄소 배출, 저작권 문제로도 도마에 올랐다. NFT가 과도하게 많은 전기 사용을 유발해 전 세계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추세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터키의 예술가 메모 아크텐은 평균적으로 NFT 거래 탄소발자국이 48㎏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예술품을 발송하는 데 드는 이산화탄소(2.3㎏)의 14배에 가까운 셈이다.

일부 창작자는 허가 없이 캐릭터나 그림을 NFT화하는 움직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앞서 ‘@tokenizedtweets’가 글쓴이의 허가 없이 트윗을 NFT화해 논란을 빚었다. 배우 윌리엄 샤트너는 “내 트윗이 토큰화되고, 내 허가 없이 판매됐다”고 반발했다. 국내에서도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NFT 예술품으로 탄생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저작권자와 유족의 허가가 없었다는 문제가 제기돼 경매가 중단됐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NFT는 매력 있고 가능성 있는 시장이지만 지식재산권(IP) 문제는 꼭 풀어야 한다”라며 “슈퍼맨, 배트맨 등 캐릭터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DC 코믹스가 NFT 시장 진출을 모색하면서, 작가들에게 DC 코믹스의 지식재산권을 임의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