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평양 행정소송팀.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법무법인 태평양 행정소송팀.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은 위법하다.”

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 문제를 둘러싼 ‘2차 자사고 소송전’의 1심 결과가 최근 나왔다. 2차 자사고 소송전은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시내 8개 자사고(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화여대사범대부속고·중앙고·한양대사범대부속고) 지정을 취소하면서 불거진 소송을 말한다. 지난 2014년 서울시교육청이 6개 자사고 지정을 취소해 불거진 소송은 ‘1차 자사고 소송전’이라 불린다. 2차 자사고 소송전에서 법무법인 태평양은 8개 자사고를, 법무법인 지평은 서울시교육청을 각각 소송 대리했다. 특히 태평양은 1차 자사고 소송전 때도 사건을 맡아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폐지를 막은 주인공이다.


‘비례의 원칙’ 어긴 서울시교육청

자사고 지정 취소처분이 법원에서 뒤집힌 배경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따라 자의적인 취소 기준을 소급 적용해 비례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법원이 판단한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비례의 원칙은 헌법에서 파생된 행정법상 원칙이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의 처분을 취소시킬 수 있었다. 비례의 원칙은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아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즉, 어떤 목적 실현을 위해 수단과 목적 사이에는 합리적인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절차적으로 무리한 수단을 썼다고 봤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9년 시행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교육청 재량의 평가 항목을 신설하고, 감점 점수도 늘렸다. 이러한 기준이 2018년 12월에 공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2015년부터 소급 적용했다는 점이 문제 됐다. 결국 8개 자사고는 재지정 기준 점수(70점)에 미달해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자사고들은 법원에 지정 취소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 상태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신설 항목 가운데 △학생 참여 및 자치문화 활성화 △안전교육 내실화 및 학교폭력 예방·근절 노력 △학부모 학교교육 참여 확대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 등은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라는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감점 요소가 많아져 감점 폭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은 전국 시·도교육청의 평가지표를 수집·분석해 이러한 신설 항목들이 평가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 평가 지침을 과거까지 적용한 것은 서울시교육청의 ‘재량권 이탈’이라고도 주장했다.

반면 지평은 신설된 지표는 문제가 없으며, 2015·2018·2019년 표준안을 통해 자사고 측이 2019년 평가 계획의 내용을 미리 인지할 수 있었다며 맞섰지만,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법원은 “신설·변경한 평가지표들이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 가능 여부를 심사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평가지표 신설과 소급 적용은 자사고들의 예측 가능 범위를 넘어 평가 결과에 큰 불이익을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 측이 언급한 자료들은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평가 계획 마련을 위해 시달한 내부 자료에 불과해 원고들에게 고지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건을 대리한 태평양의 유욱(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는 “행정법의 대원칙인 비례의 원칙, 즉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써야 하고 행정처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며, 공익과 사익이 균형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라며 “자사고 폐지라는 목적을 앞세운 나머지 절차적으로 무리한 지정 취소 처분을 했고 이는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축적 데이터·경험이 ‘승소 비결’

서울시교육청과 태평양의 ‘자사고 소송’은 2014년 교육감 선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된 조희연 교육감은 경희고·배재고·세화고·우신고·이대부고·중앙고 등 6개 학교의 자사고 지위를 박탈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이를 직권 취소로 무산시켰고,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교육감이 내린 서울 시내 6개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한 교육부의 행정처분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교육감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시행해 지정 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한 경우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해당 사건은 2018년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은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한마디로 서울시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취소가 무산된 것이다. 대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이 갑자기 평가지표를 바꾸고, 이를 적용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것은 신뢰보호원칙에 어긋난다며 교육부의 직권 취소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신뢰보호원칙은 행정기관의 행위에 대해 국민이 신뢰하고 행위한 경우 신뢰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태평양의 오정민(사법연수원 37기) 변호사는 “교육이라는 중대한 공익적 목적의 안정적인 달성을 위해 충분한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제도가 변해야 하는데, 그런 고려 없이 교육제도에 대한 신뢰가 침해되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 판결 취지”라며 “이는 이번 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태평양은 소송 당사자인 교육부의 소송 대리인은 아니었지만 ‘보조적 참가자’로 재판에 참가한 6개 자사고를 법정 대리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소송 상대방은 교육부였지만 소송 결과에 따라 자사고의 존폐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6개 자사고들이 교육부 측에 서서 소송에 보조적으로 참가했다.

당시 자사고의 법정 대리 역할을 수행한 태평양 행정소송팀은 대법원 재판 때까지 축적한 자사고 소송 자료들과 경험이 최근 2차 자사고 소송전을 승소로 이끈 비결이 됐다고 말한다.

유욱 변호사는 “나 자신이 서울시교육청이 지정 취소한 학교 출신이라 더 충실하게 임한 것도 있다”며 “과거 1차 소송전 때 경험을 토대로 자사고 설립 배경이나 정부 정책의 취지 등에 대해 아무래도 더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어 이번 재판을 이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