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마트 그랜드스테이지 명동점. 사진 ABC마트
ABC마트 그랜드스테이지 명동점. 사진 ABC마트

수집과 재테크 열풍으로 운동화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신발 편집숍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신발 편집숍은 2010년대 캐주얼한 옷차림의 부상에 맞춰 다양한 신발을 골라 사는 구매처로 주목받았으나,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성장세가 꺾였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일본 신발 편집숍 ABC마트코리아는 국내 진출 20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이 역성장했다. 국내 신발 편집숍 시장 점유율 1위인 ABC마트는 2019년 일본 상품 불매 운동에도 매출이 전년 대비 7% 성장했지만, 지난해 코로나19와 신발 소비 트렌드 변화로 매출(4553억원)과 영업이익(45억원)이 각각 17%, 89% 감소했다.

슈마커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7% 줄어든 914억원에 그쳤다. 영업손실은 7억원이었다. 에스마켓도 매출(1051억원)이 12% 줄고, 영업이익(4억9000만원)은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이랜드의 폴더도 매출이 소폭 줄었다.

신발 편집숍들은 주로 오프라인 중심 상권에 대형 매장을 내고 고객을 모았다. 초기엔 국내 미도입된 해외 브랜드 신발을 단독으로 팔아 이목을 끌었지만, 신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판매사가 생겨나고 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도 판매에 뛰어들자 입지가 좁아졌다. 특히 강남이나 명동 등 금싸라기 땅에서 장사하던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최근 한정판 운동화가 주목받고 있지만, 신발 편집숍은 영향을 비껴갔다. 한정판 운동화 구매 채널이 브랜드 공식 온라인몰이나 재판매(리셀) 전문점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레스모아는 나이키가 상품 공급 계약을 중단하자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했다. 사진 레스모아
레스모아는 나이키가 상품 공급 계약을 중단하자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했다. 사진 레스모아

브랜드 몰·리셀 매장에 신발 마니아 빼앗겨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들이 직접 판매(D2C·Direct To Consumer)를 강화한 것도 신발 편집숍 경쟁력 약화에 한몫했다. 신발 편집숍에서 나이키가 차지하는 비중이 40~50%에 달해서다. 나이키는 D2C 판매를 강화하기 위해 초대형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가로수길에 ‘조던 서울’을 개장한 데 이어, 올해 명동 눈스퀘어에 2644m²(약 800평) 규모의 ‘나이키 라이즈(Nike Rise)’ 매장을 열 예정이다. 디지털 체험과 서비스를 극대화한 공간으로, 중국 광저우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콘셉트 매장이다.

유명 브랜드의 D2C 강화는 금강제화 계열사 갈라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레스모아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레스모아는 2019년까지만 해도 12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며 1000억원대 매출을 거뒀지만, 지난해 6월 말 매장을 모두 철수하고 온라인 편집숍으로 전환했다.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하던 나이키가 공급 계약을 종료한 것이 이유였다. 나이키는 2019년 말부터 유통 거래처를 줄이는 대신, 직영 매장과 자체 모바일앱을 통한 직접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이후 레스모아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쇼핑몰로 새 판을 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갈라인터내셔널의 지난해 매출은 1363억원으로 전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영업이익은 49억원으로 200% 감소했다. 이는 애플 대리점인 프리스비를 포함한 수치로, 레스모아의 매출이 부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통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최신 신발을 사기 위해선 신발 편집숍을 찾아야 했지만, 이젠 다양한 채널에서 신발을 살 수 있다”며 “특히 한정판 등 인기 운동화를 브랜드 온라인몰이나 리셀 매장에서 구매하는 게 보편화하면서 신발 편집숍은 특색 없이 신발만 모아 파는 곳으로 전락한 모양새”라고 했다.

아디다스, 크록스 등도 D2C를 강화하는 추세여서 향후 신발 편집숍의 경쟁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랜드 폴더 관계자는 “아직 글로벌 브랜드들이 상품이나 수량 공급을 줄이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레스모아와 같은 사태가 언제 닥칠지 모르기에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폴더는 공식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오찌, 클라시코 등 PB 판매를 강화한 결과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5% 성장했다.

ABC마트는 의류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를 비롯해 스트리트 브랜드 커버낫과 널디, 레깅스로 유명한 젝시믹스, 워터 스포츠 의류 브랜드 배럴 등 20개 이상의 의류 브랜드를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ABC마트 관계자는 “고객들이 원스톱 패션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의류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모든 신발 편집숍이 위축된 건 아니다. 글로벌 브랜드 상품 구매 능력이 뛰어난 해외 신발 편집숍은 꾸준히 사세를 키우고 있다. 앞서 2018년 영국 JD스포츠가 국내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최대 신발 편집숍 풋락커가 서울 홍대, 신촌, 명동, 신사에 매장을 내고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다. 풋락커는 28개국에서 3000개 매장을 운영하는 신발 업체로, 나이키의 ‘조던 브랜드’ 등 프리미엄 상품군에 대한 경쟁력이 높다는 평을 얻고 있다.


Plus Point

나이키의 D2C 전략
“아마존 필요 없다, 우린 직접 판다”

디지털 혁신으로 직접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는 나이키. 사진 나이키
디지털 혁신으로 직접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는 나이키. 사진 나이키

미국 스포츠 의류용품 브랜드 나이키는 2019년 11월 소비자 직거래 판매 방식인 D2C에 주력하기 위해 세계 최대 이커머스 아마존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한때 3만 개에 달했던 유통 거래처도 향후 40개 파트너까지 줄일 방침이다. 존 도나호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소비자와 직접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기존 소매 업체와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나이키가 매출이 보장된 거대 유통망을 등지고 D2C를 택한 이유는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서다. 유통 중개사를 통한 판매로는 브랜드 경험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조품의 범람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직접 판매는 유통사에 마진을 줄 필요도, 복잡한 규칙이나 일방적인 조건을 따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D2C 전략의 핵심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나이키는 멤버십 서비스인 ‘나이키 플러스’와 ‘SNKRS(스니커즈)’ 앱(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고, 마니아와 수집가들과 깊게 소통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전 세계 거점 지역에 체험형 직영점을 개설해 고객과 직접 관계 및 경험을 향상하는 데 주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소비가 줄었던 지난해 국내에 조던 브랜드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를 열었고, 올 하반기에는 명동에 초대형 매장을 개장할 예정이다.

나이키는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4.4% 감소한 가운데도, D2C 매출이 84% 증가했다. D2C 비중은 33%에 달했다. 나이키는 고객 경험을 강화해 향후 D2C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