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양희진 변호사 연세대 생화학, 사법시험 46회, 사법연수원 36기, 법무법인 광장 지식재산권(IP)팀 / 김일권 변호사 서울대 생명과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6회 변호사 시험 합격 / 토종 반도체 ‘소부장’ 기업 지켜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왼쪽부터
양희진 변호사 연세대 생화학, 사법시험 46회, 사법연수원 36기, 법무법인 광장 지식재산권(IP)팀
김일권 변호사 서울대 생명과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6회 변호사 시험 합격 / 토종 반도체 ‘소부장’ 기업 지켜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반도체 생산공정에 사용되는 핵심 기술인 연마 패드(CMP패드)는 불균일한 웨이퍼(wafer·원판)를 매끈하게 갈아주는 ‘지우개’ 같은 소재다. 너무 딱딱하면 웨이퍼에 과한 힘이 가해져 알갱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너무 말랑하면 웨이퍼가 갈리지 않는다. 따라서 매우 적절한 ‘점탄성’을 가진 소재로 연마 패드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여기에는 고난도 기술이 수반된다.

이 연마 패드 기술은 세계적 화학 기업인 ‘다우케미칼’이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 강자에 ‘도전장’을 내민 국내 중견 화학 회사가 있다. 우수한 폴리우레탄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연마 패드 제조까지 확대한 KPX케미칼(이하 KPX)이 그 주인공이다. KPX의 확장세에 긴장감이 커지자 다우케미칼의 자회사인 ‘롬앤하스(Rohm and Haas)’ 법인이 김앤장법률사무소를 내세워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KPX는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해 맞서는 동시에, 별도로 다우케미칼의 연마 패드 2건의 특허를 무력화하는(특허무효 심판)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KPX-광장이 모든 소송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국내 토종의 화학 중견기업이 광장을 등에 업고 해당 분야 세계 1위 기업을 무릎 꿇린 셈이다.


특허 소송에 ‘특허무효’로 맞불 놓은 광장

롬앤하스 법인이 KPX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7년 10월로, KPX가 연마 패드를 만들어 반도체 업체에 본격 납품을 시작한 때다. 롬앤하스의 주장은 “KPX의 연마 패드(IC1000) 제품이 다우케미칼의 연마 패드 특허를 침해했다”는 게 요지였다. 광장은 다우케미칼의 연마 패드 특허를 무효화하는데 집중했다. 같은 해 11월과 12월에 롬앤하스 법인을 상대로 두 가지 연마 패드 제품에 대한 특허무효 소송을 특허심판원에 제기했다. 통상 특허출원을 하려면 실제 실험한 결과를 특허명세서에 기재해야 한다. 발명자들이 어떠한 논리적·과학적 추론을 통해 발명을 완성했는지 엿볼 수 있는 게 ‘실시 예’인데, 광장은 이를 꼼꼼하게 따져봤다. 그 결과, 다우케미칼의 연마 패드 제조 방법과 성분이 과거 선행 문헌에 제시된 것과 별다를 게 없다는 점을 포착했다.

광장의 양희진 변호사는 “실시 예를 보면 점탄성뿐만 아니라 경도라든지 많은 물리적 특성이 기재돼 있는데 분석해보니 기존의 다른 특허 성분과 특성이 유사했다”면서 “또 지금의 IC1000 제품이 과거와 스펙이 달라졌다면 당연히 고객 회사에 통지를 하고 모델명을 바꿨어야 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롬앤하스 법인과 김앤장은 “스펙 변경은 통지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해 고지를 안 했다”면서 “실제로 과거 IC1000과 현재 IC1000은 다른 제품”이라고 반박했다.

따라서 관건은 과거 제품을 공수해 현재의 제품과 성분이 같다(특허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 내는 것이 됐다. 하지만 설사 과거 제품이 있다 해도, (플라스틱 소재도 시간이 지나면 성분이 변화되는 것처럼) 해당 성분을 현재 시점에서 측정하면 더 이상 ‘과거의 것’이 아니게 되는 모순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광장은 굴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옛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서 근무했던 직원들로부터 “다우케미칼로부터 단 한 번도 (제품) 스펙이 변경됐다는 통지를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진술서를 받았다. 통상 반도체 제조공정에 쓰이는 소재들은 성질이 달라지면 반도체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공급 계약 체결 시 해당 내용이 계약서에 들어간다. 제조 방법 등이 바뀌면 통지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광장의 주장이었다.

아울러 광장은 과거 IC1000 제품을 찾을 수 없다면, 당시 제품의 특성을 기재한 문서를 찾기로 했다. 카이스트(KAIST) 석·박사 논문은 물론 1990년대에 발간된 IC1000 관련 논문과 학술지, 서적 등을 모조리 뒤졌고, 급기야는 관련 기술 연구진 중 일본어에 능통한 학자들을 찾아 일본 현지 도서관에 가서 관련 문서를 찾기까지 했지만 아쉽게도 의미 있는 결과는 얻어내지 못했다.


美 플로리다대에서 발견한 ‘결정적 한 방’

그러던 중 광장은 마침내 미국 플로리다대 도서관에서 단서가 될 만한 논문을 발견했다. 하지만 “직접 찾으러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민 끝에 광장은 플로리다대 한인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한 학생의 연락처(이메일)를 받았다. 그 학생은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고, 광장은 해당 논문을 두 손에 얻었다. 2000년 4월에 발간된 이 논문에는 1999년도에 존재했던 IC1000의 점탄성, ‘특허 물성’이 기재돼 있었다. 양 변호사는 “그땐 정말 당장 비행기 타고 날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면서 “그 유학생의 헌신 덕분에 해당 논문을 공수할 수 있었고, 해당 논문의 내용이 우리가 승소한 결정적 한 방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롬앤하스 법인과 김앤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논문에 기재된 제품이 당시 한국에 납품됐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냐”고 따졌다. 해당 제품이 한국에 납품된 제품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특허법은 한국에서 판매·제조된 제품에 대해서만 적용됐다는 ‘허점’을 이용해 반박한 셈이다(이후 관련 규정이 개정됐다). 또 IC1000이 한가지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크기와 모양 등 스타일이 다양해 한국에 납품된 제품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광장은 앞선 재판 과정에서 김앤장이 스스로 “IC1000 가운데 한 타입이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다”고 발언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해당 제품이 바로 플로리다대 논문에 있던 제품과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특허심판원은 특허무효 소송을 제기한 두 가지 제품에 대해 모두 “발명의 특허를 무효로 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다우케미칼은 두 가지 제품 중 한 가지에 대해서만, 항소심 격인 특허법원에 항소했지만, 또다시 패소했다. 이처럼 다우케미칼 연마 패드 제품의 특허가 무효판결을 받자, 당초 롬앤하스 법인이 KPX에 제기했던 특허침해 소송도 서울중앙지법 민사담당 재판부에서 기각됐다. 이후 롬앤하스 법인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KPX-광장이 ‘완승’을 거뒀다.

KPX를 대리한 광장의 지식재산권(IP)팀 변호사들은 모두 화학 분야를 전공한 이공계 출신들로 구성됐다. 권영모(사법연수원 16기)·양희진(36기)·여인범(43기) 변호사와 포항공대 화공과를 졸업한 강이강(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 서울대 생명과학 박사 과정을 밟은 김일권(6회) 변호사 모두 해당 기술 분야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전문가다.

이들은 처음부터 다우케미칼 측 특허기술을 철저히 분석해 허점을 파고들었고, 다우케미칼 특허명세서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점을 찾아냈다. 소송을 지휘한 권 변호사는 “화학 분야 이공계 출신인 광장 변호사들은 특허법원 판사들과 기술심리관이 법정에서 즉흥적으로 하는 질문들에 바로바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았다”고 했다. 양 변호사도 “사건에 대한 열의와 집중력이 원동력이 됐다”며 “국내 토종기업인 고객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승소가 가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번 승소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술인 연마 패드 시장에서 경쟁을 유발하고 외국계 회사들의 독점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광장은 설명했다. 광장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에 연마 패드를 납품하는 회사는 대부분 외국계 회사들”이라며 “이들은 비싼 값을 주고 연마 패드를 팔면서도 애프터서비스(AS)에도 충실하지 않아 국내 업체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벤더 경쟁자들이 많을수록 품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롬앤하스 법인은 소송 당시 다우케미칼의 자회사였다. 통상 미국 법인들은 운영을 통합적으로 하고 실제 비즈니스도 같이한다. 법률적 소송 주체는 롬앤하스 법인이지만, 미국과 한국 쪽에도 모두 다우케미칼이 해당 소송에 관여했다. 다만 현재 롬앤하스 법인은 다우케미칼에 속해 있지 않다.

이미호 조선비즈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