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오하이오 주립대 정치학 박사,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부장, 외교안보연구원 소장, 국립외교원 기획 부장,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장, 국제군축연구실장 / 사진 김지호 기자
최강
오하이오 주립대 정치학 박사,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부장, 외교안보연구원 소장, 국립외교원 기획 부장,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장, 국제군축연구실장 / 사진 김지호 기자

“공화당, 민주당 인사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결렬시킨 것을 두고 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나쁜 거래(bad deal)보다는 노딜(no deal)이 낫다는 것이지요.”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겸 수석 위원은 미·북 정상회담 직후인 3월 초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 다양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만났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카네기국제평화단이 북핵 협상을 전망하는 3월 4일 토론회에는 미국 정부 및 공화당, 민주당 인사 등 100명이 몰렸다. 3월 22일 만난 최 부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자산이 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4월 15일 추가 인터뷰에서 최 부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탓에 한국은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미 공조 아래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북한 대(對) 미국’이라는 프레임을 ‘북한 대 국제 사회’의 프레임으로 바꿔야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4월 23~2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한국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한 국제콘퍼런스 ‘아산 플래넘 2019’를 개최했다. 이날 한·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 정세를 토론·논의했다.


2월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과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없었다.
“한·미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의 ‘노딜(합의 결렬)’ 가능성에 대해 사전에 귀띔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4월 11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공동 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이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적어도 한국 정부 입장을 ‘지지(support)한다’거나 ‘주목(notice)한다’는 발언을 얻어냈어야 했다. 청와대가 미·북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굿이너프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라는 비핵화 해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은 굿이너프딜이 ‘스몰딜’의 다른 버전이라는 오해를 만들었다. 한국 정부의 오판은 평화 담론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남북이 교류하면 평화가 정착되고 북한이 핵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단순한 접근, ‘바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잘될 것’이라는 도덕적 우월 의식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현 시점에서는 ‘빅딜’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빅딜이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톱다운(정상 간 담판)’ 방식을 제외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한국 정부의 복안을 대부분 거부했다. 트럼프가 톱다운 방식을 거론했지만, 섣불리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북 실무 협의를 통해 미국이 북한의 입장을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트럼프는 당분간 북핵을 해결하기보다는 관리하며 대북 압박 수단으로 제재를 계속 활용할 것이다. 무력 행동과 달리 제재는 (트럼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북한의 대응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을 통해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한국의 중재 노력을 ‘오지랖이 넓다’며 평가절하했다. 어설프게 중간에 있지 말고 북한 편을 확실히 들라는 것이다. 북한 사회는 대외 압박이 강해질수록 결속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방위적인 제재 국면이지만, 북한 주민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김정은이 베트남 방문을 위해 열흘간 평양을 비운 것은 이런 자신감에서 나온 행동이다.”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까지 북한에 유리한 협상 구도가 전개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내년에 본격화할 미국의 대선 국면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 나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은 ‘성자(聖者)’를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니다. 트럼프의 허물을 보고도 넘어간다. 미국인 상당수가 멕시코 국경의 장벽 건설에 찬성할 것이다. 미국 주력 언론이 모두 ‘반(反)트럼프’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 여론은 다를 수 있다. 낸시 팰로시 미 하원 의장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의 탄핵을 반대한 것도 이런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수용하지 않은 굿이너프딜을 포기해야 하나.
“한국 정부의 용어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인지, ‘북한 비핵화’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굿이너프딜을 거절했고 북한이 수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안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굿이너프딜의 본질인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은 향후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굿이너프’나 ‘조기 수확’은 수식의 화려함에 비해 다른 형태의 스몰딜로 오해받기 쉽다.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라는 말로 통일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이 미·북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나.
“이제 누구도 한국을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이 북핵의 일차적인 피해자라는 당사자 입장에서 북핵 문제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국제 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선(先) 한·미 공조, 후(後) 남북 관계 개선’ 전략을 썼다는 점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1998년 김 전 대통령은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대북 정책에 관한 한·미 공동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북한이 한국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한국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북한 대 미국’의 프레임을 ‘북한 대 국제 사회’의 프레임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유럽까지 대북 정책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미 연합 방위 태세도 강화해야 북한 핵무기의 정치·군사적 효용성을 상쇄해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촉구할 수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동맹의 가치를 낮게 본다는 점이다. 동맹도 ‘양자 간 거래’로 보며, 동맹국에 방위비를 분담하라고 압박한다. 이런 상황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