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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덜 알려진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은 1988년생으로 지난 2006년 세계적인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신진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10년 넘게 후원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10년 고객 2000여 명을 초청해 서울과 대전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열린 김선욱의 공연을 후원했다. 기업 메세나(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활동)에 밝은 클래식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정 회장은 김선욱의 팬으로 두 사람은 친분이 두터운 편”이라고 했다.

실제 소셜미디어(SNS)에는 2019년 12월 ‘현대차 필하모닉오케스트라(HPO)’ 10주년 파티 후 정 회장이 김선욱을 비롯한 예술가들과 함께한 뒤풀이 사진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정 회장은 올해 1월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김선욱의 지휘자 데뷔 무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선욱이 베토벤 교향곡 7번 등을 지휘한 이 자리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참석했다. 6월 5일(현지시각) 김선욱의 독일 베를린필 데뷔 실황 음반 녹음도 현차가 후원했다. 이날 김선욱은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의 곡을 연주했다.

현대차는 서울 강남에 대형 공연장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클래식 매니지먼트 업계에선 현대차가 세계 최고 수준의 관현악단인 베를린필의 주 공연장 ‘필하모니(베를린 소재)’에 버금가는 시설을 꾸릴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이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차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부지(옛 한국전력공사 본사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 부지는 지난 2014년 현대차가 약 10조5500억원에 매입해 당시 고가 매입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땅값이 두 배 이상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향후 현대차 콘서트홀(가칭)이 개관하면 1988년 설립된 예술의전당(서울 서초구), 2016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에 이어 서울 강남 지역에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장이 또 들어선다는 의미가 있다.

앞서 2016년 2월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들어설 GBC 개발 계획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를 보면 대략적인 상상이 가능하다. 현대차는 105층 그룹 통합사옥에 더해 문화시설 등 총 6개 건물을 짓겠다고 밝혔다. 당시 현대차는 ‘품격 높은 문화공간’을 강조하며 공연장을 짓겠다고 했다. 이를 지역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 1800석 규모의 대극장에 더해 600석 규모의 체임버홀(실내악 연주장)까지 갖추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핵심 지역에 품격 높은 문화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공연장 규모는 최초 사업 제안 당시보다 1.5배 확대했다는 후문이다. 이 밖에도 호텔과 컨벤션센터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다만 당초 이런 야심 찬 계획과는 달리 아직 착공하지는 못했다. GBC 통합사옥 층고(105층) 등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간 이견이 있어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외 투자자들을 모집해 컨소시엄을 꾸린 후 착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공연장 조감도.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공연장 조감도. 사진 현대차그룹
롯데그룹의 롯데콘서트홀 내부. 사진 롯데그룹
롯데그룹의 롯데콘서트홀 내부. 사진 롯데그룹

롯데콘서트홀과 경쟁 구도 형성할까

클래식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롯데그룹과의 경쟁 구도 형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 콘서트홀이 한국 최고층 건물인 롯데타워 롯데월드몰 10층에 있는 롯데콘서트홀에 강력한 경쟁 시설이 될 수도 있어서다.

롯데그룹은 2016년 8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정통 클래식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을 만들었다. 객석 수는 2036개로 현재는 롯데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은 국내 공연장 최초이자 유일한 ‘빈야드’식 공연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빈야드(vineyard)란 포도밭이라는 의미로, 중앙 무대를 객석이 언덕처럼 넘실대며 에워싸는 형상으로 배치된다. 무대 주변을 객석이 둘러싸고 있어서 관객이 느끼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확 줄어든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일본 도쿄 산토리홀 등 세계적인 공연장이 빈야드 형태다. 특히 롯데콘서트홀은 무대 뒤편 정중앙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한국 최초의 대형 콘서트홀이기도 하다.

이곳은 개관 후 예술의전당에 버금가는 클래식 공연 명소로 떠올랐다. 다만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성적표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경쟁 시설인 현대차 콘서트홀의 등장을 앞두고 롯데그룹 측이 긴장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클래식 업계 관계자는 “클래식 애호가 입장에서는 향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두 공연장의 흥행몰이가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재계 총수들의 클래식 후원

재계에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총수가 적지 않다. 1분 1초를 다투는 쉴 틈 없는 일정 속에서도 음악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경영 영감을 얻는 것. 연례 음악회를 진행하고 악단이나 공연장을 창설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클래식, 교향악 축제 등의 행사를 만들고, 매년 꾸준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비대면 공연을 계속 진행하는 등 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김 회장의 부인은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졌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만들었던 클래식 공연 명소 금호아트홀(현재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폐지, 신촌동 연세대 안에 있는 금호아트홀 연세는 유지)과 그의 젊은 음악인 양성도 유명한 사례다. 최근 활약 중인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2004년 제1회 금호음악인상을 받았으며 김선욱도 제3회 금호음악인상을 받은 바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우 부인이 이름난 플루트 연주가다. 신세계그룹은 예술의전당의 ‘마티네’ 공연을 정기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도 본인의 이름을 딴 ‘이건음악회’를 30년 넘게 꾸준히 개최하는 등 음악을 통한 사회 공헌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강영철 린나이코리아 사장도 클래식 애호가로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가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등도 이름난 애호가다.

한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클래식 음악은 물론 음향에도 관심이 많아 한때 오디오 사업을 영위하기도 했다. 지금도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삼성르네상스’와 ‘롯데매니아’ 브랜드의 제품이 그들이 만들었던 기기들이다. 고 이 회장은 초고가(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엠페러’를 만들기도 했다. 엠페러 브랜드 제품들은 현재도 고가에 중고 거래된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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