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의 14배, ‘미나리’의 219배.

 

지난해 K게임이 거둔 수출 성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연간 기준 게임 분야 수출액은 94억3540만달러(약 12조7755억원)로, K팝(음악) 수출액 8855억원과 K무비(영화) 수출액 582억원을 크게 앞질러 한국의 콘텐츠 산업 수출의 69.5%를 차지했다. BTS가 미국의 저명한 대중음악 차트 빌보드 핫100 1위를 수시로 차지했던 것보다 하루 9000만 명이 봤다는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MV)보다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등이 해외에서 더 큰돈을 벌어들였다는 얘기다. 

K게임의 수출액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인 2019년(수출액 66억5778만달러)과 비교해 47%나 성장했다. 사람들은 팬데믹 기간에 오랫동안 집 안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즐겼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을 가장 많이 찾았다. 이는 한 방향 콘텐츠인 음악이나 영화, 방송에 비해 쌍방향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이 팬데믹으로 거리가 벌어진 사람의 틈을 메워준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2019년 ‘게임은 질병’이라고 규정하던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해법으로 게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게임은 오랫동안 ‘그저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취급을 받아왔지만, 지금 산업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주력 산업으로 분류되는 이차전지는 지난 2020년 75억달러(약 10조2600억원), 가전은 70억달러(약 9조5700억원)를 수출했는데, K게임(82억달러)이 주력 산업을 뛰어넘는 성적을 낸 것이다. 이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한국의 전통적인 수출 산업이 이제는 굴뚝 없이도 부가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선진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흐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K칩(반도체)이나 K디스플레이, K카(자동차) 못지않게 앞으로는 게임도 한국의 주력 산업에 포함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비욘드 게임(Beyond Game·게임 생태계 확장)’을 ‘이코노미조선’이 기획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IP 확보에 사활

게임 산업은 국경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K게임의 인기가 해외에서 높아지는 것만큼 국내 시장에서도 해외에서 만들어진 게임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2022년 11월 셋째 주 기준으로 국내 유통 중인 모바일 게임 중 매출 1위를 달성한 것은 중국 텐센트 게임 제작 계열사 레벨인피니트의 ‘승리의 여신: 니케’다. 매출 상위 10개 게임 중 무려 네 개가 중국 게임이다. 재미만 있다면 세계 어디서나 인기를 끌 수 있다는 뜻이다. 

게임 산업은 콘텐츠 싸움터다. 특정 게임의 내용이 얼마나 인기를 끌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다. 세계화라는 말이 정립된 1930년대 이후 콘텐츠는 세계 여러 곳에서 보편타당하게 이른바 ‘먹히는’ 것이 되어야 했다. 

미키마우스, 포켓몬스터, 마블 슈퍼히어로 같은 거대 지식재산권(IP)이 콘텐츠 산업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한 캐릭터 이상이다. BTS나 블랙핑크 또한 단순한 K팝 아티스트에서 전 세계 어디서나 소비되는 콘텐츠 IP로서의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다. K게임의 주역인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2K(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가 모두 이런 IP 성공 법칙에 따라 게임을 제작 중이다. 

모바일 게임으로 유명한 컴투스가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를 제작한 위지윅스튜디오의 경영권 확보에 2000억원을 투자한 일, 넥슨이 마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엔드게임’의 감독 루소 형제가 세운 영화·드라마 제작사 아그보(AGBO)에 약 6000억원을 투자한 일도 결국은 콘텐츠 확보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넥슨은 건담과 소닉, 삼국지, 드래곤볼 등의 인기 IP를 보유한 해외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넥슨의 사업 목표 중 하나가 ‘K디즈니’라는 점은 게임에 있어 IP 확보가 K게임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는 인터뷰에서 “한국 개발자는 이미 개발과 운영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IP를 확보해 큰 기회를 도모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글로벌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고 했다. 

물론 K게임의 한계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직된 장르와 모바일 위주로 제한된 플랫폼은 K게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한 게임의 수익 모델(BM)이 성공을 거두면, 후발 주자는 모두 그 성공 공식을 따른다는 점도 K게임의 단점 중 하나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일색의 K게임은 다채로운 장르로 채워진 해외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엔씨소프트가 만든 ‘리니지라이크’ 장르가 대표적이다. MMORPG에 기반한 리니지라이크는 게임 본연의 재미보다는 이용자의 과도한 경쟁 심리를 자극, 수익성 확보가 극대화한 기형적인 형태의 게임으로 여겨진다. 이런 부분은 K게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K게임 모두가 리니지처럼 만들어 리니지처럼 돈을 벌어온 것은 아니나, 대체로 그런 흐름 속에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 들어 K게임 업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시장의 변화가 가져다준 결과다. K게임 수출액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 시장이 닫힌 것이다. 결국 K게임은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려야 했고, 콘솔게임(모니터나 TV에 연결해 즐기는 게임)과 PC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입장벽이 낮은 모바일 게임 대신 전통적인 게임 이용자가 다수 몰려있는 콘솔에 관심을 두는 건 지금은 전혀 이상한 흐름이 아니다. 이는 K게임의 새로운 영역으로 여겨지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콘솔 게임 비중이 각각 40%, 50%에 달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고 모바일 게임에 인색한 것도 아니다. 한동안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하나의 게임을 모바일과 PC, 콘솔에서 모두 이용하는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또 나아가 게임이 담긴 팩(pak)을 이용하거나 게임을 다운로드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게임에 연결할 수 있다. 바야흐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를 만끽하는, 신 게임 생태계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진우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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