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포도밭의 꽃과 표피 작물은 토양을 보호하고 이로운 벌레의 유입을 돕는다. 사진 캘리포니아와인협회
캘리포니아 포도밭의 꽃과 표피 작물은 토양을 보호하고 이로운 벌레의 유입을 돕는다. 사진 캘리포니아와인협회

미국 와인은 국내 시장에서 프랑스, 칠레, 이탈리아에 이어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점유율이 높다.

미국 와인의 90%는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이곳은 지역마다 자연환경이 달라 와인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중부 해안지대는 남다른 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유가 뭘까?

450㎞나 되는 긴 해안선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뻗은 산맥은 해발 고도가 다양한 지형을 형성한다. 저지대에서는 달콤한 포도가, 고지대에서는 상큼한 포도가 생산되기 좋은 조건이다. 태평양도 한몫한다. 차가운 바다 공기가 육지의 더운 공기와 만나면 오후 늦게 서늘한 안개가 만들어지며 밤 기온을 뚝 떨어뜨린다. 큰 일교차는 맛있는 포도를 생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다. 포도가 천천히 익으면서 풍미의 집중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주목할 만한 산지와 와이너리를 차례로 만나 보자.


리버모어 밸리와 웬티

리버모어 밸리(Livermore Valley)는 샌프란시스코만에서 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곳에 있다. 바닷바람이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고 차가운 밤안개가 큰 일교차를 만드는 이곳은 맛의 균형이 탁월한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리버모어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라면 단연 웬티(Wente)를 꼽을 수 있다. 웬티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경영 와이너리이자 미국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가문이다.

1912년 프랑스에서 샤르도네를 들여온 웬티는 1936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레이블에 ‘Chardonnay’라고 품종명을 기재했다. 이를 본 많은 와이너리가 삽목용 샤르도네 가지를 얻기 위해 웬티를 찾아왔고, 그 결과 지금은 캘리포니아 샤르도네 와인의 75%가 웬티 클론으로 생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원조 샤르도네를 맛보고 싶다면 웬티의 모닝 포그(Morning Fog)를 선택해 보자. 풍부한 과일 향과 상큼한 신맛이 포도밭에 자욱하게 내려앉은 새벽안개를 연상시킨다.


산타크루스 마운틴스의 릿지 빈야드

산타크루스 마운틴스(Santa Cruz Moun-tains)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와인 산지다. 실리콘밸리를 내려다보는 산악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풍미가 신선한 와인을 생산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는 릿지 빈야드(Ridge Vineyards)가 있다. 해발 700m 산속에 있는 이 와이너리는 1885년에 설립됐지만 1920년부터 13년간 이어진 금주법을 이기지 못하고 긴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와 가까워서일까. 이 와이너리를 다시 일으킨 것은 네 명의 스탠퍼드대 출신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이 1960년대에 만든 몬테 벨로(Monte Bello) 와인은 지금도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꼽힌다.

산악지대에서 생산된 와인을 맛보고 싶다면 릿지 빈야드의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을 추천한다. 풍부한 검은 베리 향과 은은한 삼나무 향의 조화가 나파 밸리 와인과는 또 다른 신선한 맛을 선사한다. 릿지 빈야드가 생산하는 가이서빌(Geyserville) 진판델도 주목할 만한 와인이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알렉산더 밸리의 서늘한 기후에서 느리게 익은 진판델은 체리와 자두 등 과일 향이 풍성하고 섬세한 꽃향기가 우아함을 더한다.


로다이의 랭 트윈스

진판델로 유명한 곳이라면 로다이(Lodi)를 빼놓을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30분, 차를 달리면 닿는 이곳은 진판델 고목이 많기로 유명하다. 진판델은 나이가 들수록 좋은 포도를 생산하며 진면목을 발휘한다. 로다이에는 진판델 고목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랭 트윈스(Lange Twins)다.

1870년부터 로다이에서 농사를 지어온 랭 가문은 현재 5대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랭 트윈스라는 이름은 4대손인 쌍둥이 형제가 와이너리를 운영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센테니얼(Centennial)은 이들이 1903년에 식재된 고목의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로다이 진판델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품이다. 수령이 118년에 달해 수확량이 적고 작황이 우수한 해에만 와인을 만들다 보니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센테니얼의 유일한 흠이다. 맛을 보면 탄탄한 질감과 화사한 풍미가 명품 와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부담 없이 즐길 와인을 찾는다면 랭 트윈스가 네로 다볼라(Nero d’Avola) 포도로 만든 레드테일(Redtail)도 좋은 선택이다. 과일 향이 화사하고 매콤한 향신료 향이 맛깔스러운 이 와인은 피자, 파스타,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샌타바버라의 캠브리아와 브루어 클리프턴

샌타바버라 와인 산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겨우 두 시간 거리지만 기후는 완연히 다르다. 남북으로 흐르던 산맥이 동서로 방향을 꺾는 이곳은 태평양의 바닷바람을 깔때기처럼 빨아들여 한여름 기온이 섭씨 21도에 불과하다. 서늘한 기후에서 천천히 익은 포도는 열매에 섬세한 풍미를 가득 채운다. 이곳을 대표하는 포도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이 두 가지 품종의 우아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와이너리로는 캠브리아(Cambria)와 브루어 클리프턴(Brewer Cli-fton)이 있다.

캠브리아는 와이너리 경영과 와인 양조를 모두 여성이 맡고 있는 와이너리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와인에는 섬세한 매력이 가득한데, 1971년에 식재된 고목의 포도로 만든 캐서린 빈야드 샤르도네는 남다른 상큼함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브루어 클리프턴은 샌타바버라 안에서도 최고의 산지로 꼽히는 산타 리타 힐스(Sta. Rita Hills)를 개척한 선구자적 와이너리다. 이곳의 자연을 워낙 잘 이해해서일까. 이들이 만든 피노 누아 와인에는 야생 베리, 야생화, 허브 등 건강한 자연의 풍미가 한가득 담겨 있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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