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푸른 바다와 교감하는 그 자체로 대자연에 동화되는 희열을 느낀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푸른 바다와 교감하는 그 자체로 대자연에 동화되는 희열을 느낀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나의 멘토 역할을 해주는 분 중 한 분으로 미국에 K 목사님이 계신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내게 바다낚시를 함께 가자고 권했다. “아니 목사님께서 사람을 낚아야지, 왜 진짜 물고기를 낚으려 하십니까?” 나는 초대에 감사하다는 대답을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대신했다. 

모터보트를 가진 선장을 위시해서 나까지 도합 6명이 한 팀이다. 목적지는 니어 베이(Neah Bay). 워싱턴주 서쪽 끝 인디언 보호구역 앞바다. 바로 건너편에 캐나다 밴쿠버가 지척이다. 조금만 서쪽으로 나아가면 바로 북태평양이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다다. 

8월 한여름이지만 워싱턴주의 날씨는 서울에 비하면 무척 시원하다. 바다에서는 풍랑이 거세어 점퍼를 입어야 한다. 나는 초대받은 초짜 낚시꾼이라 이번에는 내 한 몸만 챙기면 된다. 일행들은 분주했다. 아침 7시 약속 장소에 집결하여, 각자 가져온 준비물을 보트를 끌고 갈 픽업트럭에 착착 옮겨 실었다.

시애틀 시내에서 니어 베이까지는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보트를 견인하는 픽업트럭이 속도를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낮 12시에 중간 기착지이자 숙소가 있는 한 부두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픽업트럭이 니어 베이로 통하는 인디언 마을까지 육로로 직행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중간 부두에서 배를 몰고 1시간가량 가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려니 바다에 안개가 너무 짙다. 해무(海霧)가 걷히기를 기다렸지만 쉽사리 물러갈 기미가 아니다. 출항했다 돌아오는 배들이 먼바다로 일단 나가면 안개가 그리 많지 않다고 정보를 준 모양이다. 보트가 출항을 시작했다.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넘는 파도를 헤치는 난항이었다. 항해사 역을 맡은 분조차 뱃멀미를 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데다가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 한 탓에 몸살 기운까지 있던 나는 ‘괜히 먼 길을 따라나섰나?’라며 은근히 후회했다.

나는 어린 시절 고향 개울에서 대나무 낚싯대로 붕어를 잡아 본 기억밖에 없다. 바다 낚시에 대한 호기심에 따라왔을 뿐이다. 하지만 니어 베이에 도착하여 낚시를 시작하면서 이런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낚싯대를 내리자마자 선장님의 낚싯대에 건장한 어른의 팔 길이만 한 물고기가 잡혔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쾌조의 스타트. 프로 낚시꾼인 일행들은 정신없이 고기를 낚아 올렸다. 구경만 하던 내게도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일행들이 내게도 낚싯대를 주었다.

생초짜인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한 30분 지나자 내 낚싯대에 진동이 느껴졌다. 그냥 옆에 있던 아들이 시키는 대로 낚싯대를 살짝살짝 옆으로 당기면서 동시에 릴을 사정없이 감았다.

물고기가 워낙 힘이 세서 낚싯대를 잡고 있기도 힘든데 릴까지 감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마침내 60㎝가 넘을 것 같은 큰 민어가 잡혀 올라왔다. 월척(越尺)이 훌쩍 넘는 큰 물고기였다. 높은 파도에 밀리면서, 밀려오는 거대한 미역 무리를 피해 가면서, 갑판으로 들이치는 파도를 맞아가면서 보낸 6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비로소 왜 사람들이 바다낚시를 하는지를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 사두었다가 슬쩍 한 번 훑어보고 말았던 심리학자 폴 퀸네트의 책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를 다시 꺼내서 읽어 보면서 무릎을 쳤다.

낚시꾼들에게 왜 낚시를 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손맛’을 이야기한다. 살아 있는 물고기가 목숨을 걸고 치는 몸부림은, 역시 살아 있는 유기체인 인간에게는 가슴 뛰는 도전정신을 일으킨다. 그 반항의 몸짓은 엄청난 진동으로 인간에게 반사된다. 낚시꾼의 세포 하나하나를 흥분시키고 심장 박동을 촉진시킨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먹거리를 찾아서 낚시를 시작했을 것이다. 대체 왜 사람들은 매서운 바람이 불고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닷가로, 뭔가에 중독된 사람처럼 낚싯대를 들고 나가는 걸까?

해양생물학자인 월리스 니콜스는 이런 말을 했다. “시간에 관계없이 물 위, 혹은 물가에 있으면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고 행복감이 증가한다.” 그렇다. 우리는 푸른 바다와 교감하는 그 자체로 대자연에 동화되는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낚시를 하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낚시터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신체 활동을 한다. 낚시 동작은 대략 시간당 200칼로리가량을 태운다고 한다. 또한 물고기를 잡으려면 오랜 시간을 집중하면서 낚싯대에 진동이 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레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명상 효과를 낸다.

일상에서 벗어난 낚시꾼은 세상에서 겪었던 온갖 근심, 걱정이 일순간 사라진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고도의 집중과 몰입이 낚시꾼들에게는 자연스레 일어난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의 진동과 스릴은 우리 몸속의 열정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을 왕창 분비시킨다. 반면에 차분히 미끼 물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편안함은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증가로 바뀌는 것이다.

보트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가 미끼 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잠시 눈을 감아 보라. 파도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 배 위를 맴도는 갈매기의 울음소리, 감은 눈 위로 스며드는 밝은 빛, 철썩 소리를 내며 팔 등을 적시는 바닷물이 느껴진다.

시청각은 물론 후각에 촉각까지 총동원되지만, 반대로 우리의 논리적,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전두엽피질 수준에서의 활동 수준은 현저히 떨어진다.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 고리가 뚝 떨어져 나간다. 미국에서 참전 경험이 있는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에 낚시가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함께 낚시를 하게 되면 대자연과 교감 속에서 서로 간의 유대가 깊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낚시한 물고기를 요리해 먹으면 건강에 좋은 영양가 있는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나는 보트 위에서 일행 중 한 분이 손수 장만해준 생선회를 젓가락도 없이 바닷물에 씻은 손으로 초장에 찍어 먹었다. 그러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오! 인생 후반기 바다낚시는 필시 내 필생의 취미가 되겠구나!”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