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처음 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 당혹감을 넘어 충격과 불신, 혹은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처음 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 당혹감을 넘어 충격과 불신, 혹은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 3주째 머물고 있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두 곳만 둘러본 인상으로 미국 전체의 상황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곳 분위기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서 거의 벗어난 듯하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에서 각각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시애틀과 포틀랜드 도심지를 둘러보니, 길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올 1월 시애틀에 왔을 때 도심 전역의 상가가 문을 닫고 드라이브 스루(승차 주문) 방식의 판매만 하는 곳만 몇 군데 있었다. 그런데 8월 현재 거의 모든 상가가 문을 열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연방정부에서는 다시 경각심을 갖자고 강조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심은 쏟아져 나온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워싱턴주의 경우, 7월에 코로나19 백신 1, 2차 접종률이 대상자의 70~80%를 웃돌아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긴장감이 없다. 백신 접종률이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정을 생각하면 유유자적하는 저들이 부럽기도 하고, 아직 팬데믹 상황이 한창인데도 너무 조심성 없이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후배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치료받은 적이 있다. 난감했던 것은 그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어, 기존 직장에서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었고, 새로 다닐 직장 사람들과도 접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동선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 사실을 알렸다.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관에게도 동선 등을 상세히 알렸다. 다행히 잘 치료를 받아 그는 물론 주변의 관련된 모든 사람이 치료가 되거나 음성 판정을 받는 등 이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최빈국의 하나인 M국에서 NGO (비정부 기구) 활동을 하고 있는 내 동생 부부는 현지 고위 관리와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 그 관리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는 바람에 동서도 감염되었다. 설상가상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동서는 호흡기 계통이 약해져서 치료 과정에서 크게 혼쭐이 났다. 동서도 감염 사실을 신속히 주변과 당국에 알려 방역 조치에 혼선이 없도록 조치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연합뉴스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을 때, 모든 사람이 내 후배나 동서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참여한 어떤 학술 프로젝트에 함께 일하는 A씨는 어느 날,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당분간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다. 세상 바닥은 넓은 것 같지만 뻔하기도 하다. 알고 보니 그는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와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교회에서 알게 된 B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금융 관련 회사의 임원으로 교회 내 활동도 활발했다. 그런데 어느 날 B씨는 단체 카톡방 메시지를 통해 갑자기 일반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문제는 B씨 역시 코로나19 감염이 입원 사유였다는 것. B씨는 끝까지 일반 폐렴 환자인 양 능청스레 연기했다. 일반 사회 윤리로든, 종교적인 윤리로든 납득하기 힘든 경우였다.

A씨나 B씨 같은 이들은 왜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숨기는 것일까?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처음 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 당혹감을 넘어 충격과 불신, 혹은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걱정하기도 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수치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보기에 평소 내성적인 성격에 다소 소심한 A씨의 경우는 자신의 감염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것이 자신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만들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거나 거부하는 등 사회적인 낙인(social stigma) 효과에 따른 차별을 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감염 사실을 숨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B씨는 어떤 경우일까. B씨는 평소 열정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전형적인 외향형이다. 게다가 그는 타인의 평가에 극도로 민감한 편이다. 요즘 말로 그는 ‘관심종자’,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환장하는 유형에 속한다. 교회에서의 일 처리도 사회에서 하는 것처럼 한다. 일의 성과와 결과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업적 지상주의자다.

B씨가 확진 사실을 숨기는 이유는 A씨와 다르다. B씨는 A씨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거나 거부할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다. B씨가 두려운 것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평소 자신이 타인을 평가할 때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평가하고 대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자신을 그렇게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사실 B씨와 같은 확진자는 B씨 자신과 똑같은 ‘사회 일각의 비뚤어진 시각’과 싸워야 한다. 그러니까 B씨는 자신과 맞서 싸워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B씨는 ‘현실 회피’의 길을 선택한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고 부주의하여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걸릴 정도로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래 나는 코로나19에 걸린 것이 아니라 일반 폐렴에 걸린 것뿐이야!” B씨는 타인에게 비난보다는 동정과 위로를 받기 위해 거짓과 위선도 불사하는 길을 선택했다.

각설하고, 만일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후배나 동서처럼 행동할까? 아니면 A씨나 B씨처럼 행동할까?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런 경우 우리가 A씨나 B씨 같은 행동을 보이지 말라는 법도 없다. 확진자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유무형의 사회적 비난과 편견에 떨다가, 실제 맞닥뜨리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녹아웃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제대로 된 방역망을 구축하려면 확진자들이 A씨나 B씨 같은 회피 행동을 보이지 않도록 정책적인 대안도 필요하고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면서 회복할 때까지 지지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절실하다는 말이다. 혹시 주위에 확진자를 만나면 따뜻하게 위로해 주자. “완전히 회복되고 나면 예전처럼 멋진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말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